녹지마, 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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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름이 가기 전에 반드시 정복해야 할, 오직 네 가지 빙수만 골랐다.

1 동빙고 팥빙수 동빙고의 팥빙수엔 얼음, 연유, 팥, 떡 외엔 어떤 재료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맛이 심심하고 허술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거칠지도 그렇다고 혀에 닿자마자 녹아 사라지지도 않을 만큼 적당히 사각거리는 얼음, 우유와 함께 끓여 달콤하고 고소한 연유, 생산자와 직거래 방식으로 구해와 직접 삶는 국내산 팥, 그리고 큼지막한 떡까지. 각각의 재료들이 내는 맛이 어지럽지 않으면서도 풍성해, 팥빙수 본연의 맛을 즐길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동빙고에서는, 한여름에 무슨 죽이냐고 손사래치지 말고 단팥죽을 맛봐야 한다. 삶은 후 곱게 체에 내린 팥과 투박하게 씹히는 통팥을 함께 섞어서 끓여내, 한입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팥과 고소하게 씹히는 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용산 이촌동 금강아산병원 맞은편.

2 비 스위트 온 말차빙수 비 스위트 온의 말차빙수를 맛볼 계획이라면, 그전에 두둑이 배를 채워서는 안 된다. 일단 빙수만 해도 곱게 갈아 어떤 시럽이나 고명 없이도 그 자체로 눈처럼 포근한 맛이 나는 얼음, 일본에서 들여오는 말차로 직접 만든 시럽과 아이스크림, 올해 유난히 작황이 좋았다는 경기도 연천에서 가져와 삶은 팥을 가득 쌓아 마치 쏟아져 내릴 듯 풍성하게 등장한다. 여기에 역시 직접 만든 말차롤, 찹쌀로 만든 경단, 그리고 입안이 얼얼해질 때면 입안을 데운 후 다시 빙수에 도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따뜻한 녹차까지. 둘이 먹기에도 벅찰 만큼 한 상이 차려지기 때문이다. 다만 매일 아침 한정 수량만 만들어내는 경단이 떨어지면 말차빙수 또한 주문이 불가능하니, 주말 또는 유난히 더운 평일에는 조금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마포구 서교동 339-3 새봄빌딩 2층.

3 오시정 딸기빙수 흔히 과일 빙수라 하면 얼음 위에 온갖 과일을 가득 얹은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오시정의 딸기빙수는 단아한 모양새와 정갈한 맛이 특징이다. 얼음이 촉촉하게 느껴질 만큼 충분한 연유와 우유, 직접 만든 딸기 시럽뿐만 아니라 설탕에 재워둔 블루베리와 라즈베리까지 모두 달콤하지만, 신기하게도 커다란 빙수 한 그릇을 다 비워도 질리지 않을 만큼 그 달콤함이 과하지 않다. 딸기가 제철인 봄에는 생딸기를 가득 올려 상큼함이 더하지만, 그렇지 못한 여름에도 충분히 청량하게 느껴지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직접 유기농으로 키워 보내준다는 팥은 굳이 빙수에 넣지 않고 그냥 숟가락으로 떠서 꼭꼭 씹어먹어도 담백하고 고소하다. 가로수길 스타벅스끼고 좌회전해서 세 블록 직진.

4 퀸즈파크 로얄 밀크티 빙수 아이스크림, 견과류, 과일 등이 풍성하게 올려진 빙수를 보면 그 고명에 먼저 손이 가는 게 당연하지만, 퀸즈파크의 로얄 밀크티 빙수라면 맨 아래 얼음부터 숟가락 가득 떠서 입안에 넣어야 한다. 혀에 닿는 순간 쌉싸래하고 달콤한 밀크티 향이 가득 퍼져, 빙수의 바닥이 보이기도 전에 미리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진한 바닐라 아이스크림부터 바삭한 그라놀라, 캐러멜을 입혀 쫀득한 견과류, 신선한 과일까지, 모두 매장에서 직접 만들어낸 재료들이 가진 풍미를 꼼꼼히 맛볼 차례다. 그 과정도 모두 끝이 났다면? 이제 그 모든 재료를 고루고루 섞어, 한여름의 로얄 밀크티 빙수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시원하고 향긋한 조화를 만끽하는 일만 남았다. 청담동 분더숍 맞은편.

에디터
에디터 / 김슬기
포토그래퍼
엄삼철, 김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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