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북의 시대에도 종이 책의 수요는 유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HD와 3D 영상의 공습 아래서도 성실하게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10주년을 맞은 MBC FM의 DJ 콘서트 현장에서 비디오가 죽이지 못한 라디오스타들을 만나고 왔다.

‘없는 게 메리트’라고 속삭이는 옥상달빛의 노래는 목청을 키우지 않고도 충분히 씩씩하다. 친구이자 동료인 박세진과 김윤주는 무대의 앞과 뒤에서 두 사람만 아는 외국어가 있는 것처럼 두런두런 의견을 주고받았다.

‘없는 게 메리트’라고 속삭이는 옥상달빛의 노래는 목청을 키우지 않고도 충분히 씩씩하다. 친구이자 동료인 박세진과 김윤주는 무대의 앞과 뒤에서 두 사람만 아는 외국어가 있는 것처럼 두런두런 의견을 주고받았다.

 

옥상달빛

보이는 라디오 시대를 맞은 게스트의 고충이 있다면? 보이는 라디오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방송에 대한 준비가 달라지나?
사실 보이는 라디오인지 모르고 갔다가 낭패를 당한 적도 있다. 하지만 꾸민다고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진 않기 때문에 이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박세진)

요즘 일상의 주제곡이라 할 만한 걸 하나 꼽아준다면? 좋아서 자주 듣는 곡, 혹은 지금의 본인 상황과 딱 어울린다 싶은 곡으로.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 함께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는 십센치의 목소리로 접한 후, 원곡이 주는 또 다른 느낌이 너무 좋아 요즘 매일 듣고 있다.(김윤주)

처음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억하나?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의 코너 중 하나인 ‘일요야설 무대’였다. 늘 라디오에서 듣던 로고송이 흘러 나오던 순간부터 사실 너무 행복해서 마이크 붙잡고 자랑하고 싶었다.(김윤주)

라디오는 (아주 사교적인 친구)다. 비록 처음 만난 사이일지라도 어색함 없이 즐겁게 해주기 때문.(박세진)

성시경

DJ

꼭 한번 초대하고 싶은 게스트가 있다면?
라디오는 사적인 공간이 아니니까,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청취자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을 초대하고 싶다. 처음엔 손석희 교수를 모시려 했는데, 일정이 잘 맞지 않았다. 아, 해외에서 오는 스타들. 이제 ‘음악캠프’에만 가시지 말고 우리 프로그램에도 들러주면 좋겠다.

라디오를 통해 결정적으로 좋아하게 된 뮤지션이나 노래를 꼽는다면?
얼마 전에 듀란 듀란의 ‘Ordinary World’를 오랜만에 들었는데, 듣는 순간 그 노래가 옛날 녹음 테이프 안에 들어 있었던 기억이 났다. 누나가 좋아했던 아하, 신디 로퍼, 데비 깁슨과 같은 팝 뮤지션들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따라 들었던 것 같다. 그때 초등학생이었으니, 꽤 조숙했던 셈이다.

요즘 일상의 주제곡이라 할 만한 걸 하나 꼽아준다면? 좋아서 자주 듣는 곡, 혹은 지금의 본인 상황과 딱 어울린다 싶은 곡으로.
언제나 스팅이 좋았다. 오늘은 ‘When We Dance’를 들었는데, 우리나라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운율 때문인지 가사가 정말 한 편의 시 같더라. 사실 어렸을 때부터 팝을 들을 때 가사를 제일 중요하게 여겼다. 대부분 록부터 듣기 시작하는 선배들과 음악 취향이 달랐던 건 그 이유 때문이었을 거다. 나에겐 사운드나 편곡과 같은 요소보다, 멜로디와 목소리의 연기 그리고 가사가 더 와 닿았으니까.

DJ는 (필터)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인데, DJ 자리에 앉으면 마치 필터가 사이에 있는 것처럼 수많은 청취자와 이야기하면서도 단 한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기분이다. 다만 모두에게 ‘여러분 사랑해요’라고 말하기보다는, 그게 연애 문제든 술에 관한 취향이든 심지어 정치색이든 나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할 수 있는 디제이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만의 색깔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음을 털어놓으면, ‘그래? 그럼 이 음악이 듣고 싶겠네” 라며 필요로 하는 음악을 틀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을 이해하는 척하며 ‘다 내 품에 안아드리겠어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라디오는 내가 힘을 얻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죽을 것 같아도, 라디오는 할 수 있는 이유다. 힘든 일 있다고 친구랑 술 못 마시나? 대신 나 오늘 힘들다고 속을 털어놓고, 위로해달라고 하지.

 

무대 위에서도 아래서도, 정엽은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조곤조곤 말했고 나긋나긋 노래했다. 그렇게 감정을 격하게 몰아붙이지 않아도, 그의 무대엔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도 아래서도, 정엽은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조곤조곤 말했고 나긋나긋 노래했다. 그렇게 감정을 격하게 몰아붙이지 않아도, 그의 무대엔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정엽

<푸른밤, 정엽입니다> DJ

오늘밤 청취자들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주면 좋을까?
마빈 게이의 ‘The Shadow of Your Smile’. 오래된 재즈곡을 마빈 게이가 다시 부른 건데,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 딱 맞을 것 같다.

꼭 한 번 초대하고 싶은 게스트가 있다면?
‘여배우들’이란 코너에 많은 여배우들, 그리고 가끔 남자 배우들을 초대하고 있다. 다음엔 고소영, 장동건 커플을 모시고 싶다. 이유는, 최고니까(웃음).

DJ는 (청취자와 데이트 하는 사람)이다. 청취자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 라디오는 매일매일 마치 둘만 있는 것마냥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감성을 지닌 이상은에게, 매일 아침 11시 같은 자리에 앉아야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구속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 프로그램은" 이라며 웃는 모습에서, 그 구속마저 즐겁다는 게 전해져왔다.

자유로운 감성을 지닌 이상은에게, 매일 아침 11시 같은 자리에 앉아야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구속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골든디스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 프로그램은” 이라며 웃는 모습에서, 그 구속마저 즐겁다는 게 전해져왔다.

 

이상은

<이상은의 골든디스크> DJ

최악의 방송 사고, 혹은 특히 기억에 남는 실수가 있었다면?
최악이랄 거 없이, 매일 위태위태하다. 방송 말미에 시간을 못 맞춰서, 마지막 말 끊기는 게 내가 제일 잘하는 짓이다.

받아 본 청취자 사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
미역 불리는 법을 몰랐다는 새댁의 사연이 떠오른다. 미역을 잘못 불려서 꼭 귀신 머리칼처럼 넘쳐흘렀다는 이야기에 엄청 웃었다.

방송을 하면서 생긴 특별한 징크스가 있는지?
이런 것도 징크스라고 할 수 있나? 라디오를 시작한 이후로 늘 배가 고프다. 언제나 허기가 져서, 마치 곧 천하장사 대회 나갈 사람마냥 어마어마하게 먹어대고 있다. 특히 고기류. 다이어트? 그렇게 먹어대도 한 시간만 하고 나면 살이 쫙쫙 빠진다.

라디오를 통해 결정적으로 좋아하게 된 뮤지션이나 노래를 꼽는다면?
글쎄. 중학교 때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를 너무 좋아했는데, 아마 그때 한참 인기였던 F.R.데이비드의 ‘Words’ 아니려나.

 

사람이 음악을 닮는 건지 음악이 사람을 닮은 건지 모르겠지만 최근 EP 를 발표한 강산에의 표정은 전보다 눈에 띄게 부드러웠다. 문득문득 섞이는 경상도 억양은 대화에 흥겨운 추임새가 됐다.

사람이 음악을 닮는 건지 음악이 사람을 닮은 건지 모르겠지만 최근 EP 를 발표한 강산에의 표정은 전보다 눈에 띄게 부드러웠다. 문득문득 섞이는 경상도 억양은 대화에 흥겨운 추임새가 됐다.

 

강산에

라디오를 통해 결정적으로 좋아하게 된 뮤지션이나 노래를 꼽는다면?
산울림의 ‘아니 벌써’. 어린 시절, 방과후 집에 들어서는데 라디오에서 이 곡이 흘러나오더라. 음악의 정서가 ‘아니, 이게 뭐지?’ 싶게 나를 때렸다. 이후로 산울림을 많이 찾아 듣게 됐는데 그때마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흔히 듣던 가요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으니까.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을 거다.

요즘 일상의 주제곡이라 할 만한 걸 하나 꼽아준다면? 좋아서 자주 듣는 곡, 혹은 지금의 본인 상황과 딱 어울린다 싶은 곡으로.
앨범에 들어 있는 노래들이 내 일상을 그대로 말해준다. 공연이나 연습이 끝나면 대략 밤 10시고, 늦은 저녁을 먹으면 11시쯤 된다. 그때부터 반주로 시작한 술을 좀 많이 마시면? 밤 새고 난 뒤 그날 아침’에 ‘떡 됐슴다’, 이래 버리는 거지.

라디오는 (죽었)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가? 순수하게 들으면서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우리가 점점 빼앗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결국 음악이란 보이지 않는 소리의 톤을 만들고, 그걸 공간적으로 배치하는 작업이다. 오히려 청각에만 온전히 집중해야 더 많은 내용을 보고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게 시각 위주가 되다 보니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감각이 자꾸 퇴화하는 건 아닐까 싶다.

 

장기하는 엇박자다. 멀끔한 외모와 멍하고 떨떠름한 표정, 어눌한 듯 정곡을 찌르는 가사, 예스럽지만 세련된 음악, 진지한 태도와 엉거주춤한 무대 매너가 사람들의 눈을 끌고 귀를 잡아챈다. 정직한 박자로는 쫓기 힘든 매력이다.

장기하는 엇박자다. 멀끔한 외모와 멍하고 떨떠름한 표정, 어눌한 듯 정곡을 찌르는 가사, 예스럽지만 세련된 음악, 진지한 태도와 엉거주춤한 무대 매너가 사람들의 눈을 끌고 귀를 잡아챈다. 정직한 박자로는 쫓기 힘든 매력이다.

 

장기하와 얼굴들

라디오를 통해 결정적으로 좋아하게 된 뮤지션이나 노래를 꼽는다면?
군대에서 일과를 마친 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자주 들었다. 미카나 씨저시스터즈,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이 그 무렵 라디오를 들으며 메모해둔 뮤지션이다. 최신 곡뿐 아니라 유명 아티스트들의 예전 음악을 재발견하게 해준 것도 라디오였다. 스티브 밀러 밴드와 탐 웨이츠의 몇몇 노래들, 그리고 딥 퍼플의 ‘Fools’처럼.

TV보다 라디오가 좋은 점이 있다면?
시청각을 동시에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할 여지를 많이 확보할 수 있다. 가만히 있는 건 아닌데 또 가만히 있는 것이기도 한, 그런 상황을 만들어준다. 듣다가, 멍도 때리다가, 내 생각도 하다가, 지금 라디오에서 말하는 사람은 어떤 표정일까 상상도 하다가, 그런 게 좋다.

라디오는 (부담 없는 친구)다.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는 늘 어느 정도의 부담이 있다. 그런데 적적할 때 라디오를 켜두면 리액션에 대한 강박은 내려놓을 수 있고, 그러면서 약간의 위로도 얻고, 또 누군가와 같이 있는 느낌도 들고, 뭐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