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북의 시대에도 종이 책의 수요는 유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HD와 3D 영상의 공습 아래서도 성실하게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10주년을 맞은 MBC FM의 DJ 콘서트 현장에서 비디오가 죽이지 못한 라디오스타들을 만나고 왔다.

요즘 TV는 거의 모든 채널에서 전쟁 중이다. 치열한 경쟁, 눈물의 탈락, 최후의 승자 같은 자막이 화면을 비장하게 채우는 걸 주말 저녁마다 지켜보게 되곤 한다. 윤도현, 정엽, 그리고 김연우는 MBC <서바이벌 – 나는 가수다>의 청중평가단 앞에 섰던 뮤지션이다. 당시 출연자들의 긴장감은 브라운관 밖의 시청자들까지 마른 침을 삼키게 할 정도로 팽팽했다. 하지만 지난 6월 22일, 셋을 다시 만나게 한 는 성격이 사뭇 다른 무대였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이 행사는 MBC FM의 DJ와 그들이 직접 초대한 가수가 청취자들과 다감하게 만나는 자리다. 객석에 배포할 투표용지도 없었고, 참가자들의 순위 발표가 이어지지도 않았다. 앞서 언급한 셋 외에도 성시경, 장기하와 얼굴들, 강산에, 이상은, 데이브레이크, 옥상달빛 등이 모였으니 <나는 가수다> 못지않게 화려한 라인업이었지만 현장 분위기는 동문회의 2차 술자리처럼 편안했다. 소주잔 대신 생수병을 하나씩 손에 든 백스테이지의 출연자들은 두 셋씩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반가운 말을 교환했다. 특히 강산에의 기타연주에 장기하가 흥얼흥얼 노래를 보태던 장면은 기습적인 즐거움이었다. 아무래도 2011년의 후크송으로는 스윗콧소로우의 ‘정주나요’와 더불어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렇고 그런 사이’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윤도현과 강산에는 틈만 나면 ‘너랑 나랑은 말하자면은 그렇고 그런 사이니까’라고 정겹게 이 후렴구의 무시무시한 중독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TV라는 네모반듯한 콜로세움에서 검투사처럼 겨뤘던 가수들은 라디오 덕분에 다시 친구가 됐다.

물론 출연진이 서로 어깨만 두드리고 돌아가진 않았다. 이기고 지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좋은 공연을 하고 싶은 뮤지션들의 욕심은 유효하니까. 텅 빈 객석 앞에서의 리허설이라도 맹물에 만 밥처럼 건성으로 해치우는 이는 없었다. 성시경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꼼꼼히 음향을 확인했다. YB 역시 매니저의 의견을 물어가며 몇 시간 뒤의 무대를 신중하게 예상하는 모습이었다. 질문과 요청, 답변과 대응이 출연자와 스태프 사이를 탁구공처럼 분주하게 오가고 나자 시곗바늘이 약속한 시각에 닿았다. 이날 콘서트의 공동 MC를 맡은 배철수와 장윤주가 관객 앞으로 걸어 나와 오프닝 멘트를 건넨다. 천장으로 높게 치솟는 환호에서 이어질 공연에 대한 기대가 솔직하게 드러났다. 의 ‘프렌즈’는 DJ들이 초대한 가수와 객석을 채운 청취자 모두를 뜻하는 단어였다.

우리 모두는 라디오와 친구로 지냈던 기억을 공유한다. 이미 30년 전에 밴드 버글스가 ‘비디오가 라디오스타를 죽였다’고 노래했다지만 더 수긍이 가는 쪽은 (다소 낯간지러운 애정 고백인) 퀸의 ‘Radio Gaga’다. “곁에 있어줘. 라디오, 누군가는 널 아직 사랑하고 있어.” MBC FM의 DJ와 그들의 초대 손님에게 라디오와의 우정에 대해 물었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콘서트는 윤도현이 프런트맨을 맡은 YB의 무대로 마무리됐다. 협소한 한국 록 시장에서 예외적일 만큼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밴드가 특유의 건강하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객석에 전염시켰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콘서트는 윤도현이 프런트맨을 맡은 YB의 무대로 마무리됐다. 협소한 한국 록 시장에서 예외적일 만큼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밴드가 특유의 건강하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객석에 전염시켰다.

 

윤도현

<두 시의 데이트 윤도현입니다> DJ

최악의 방송 사고, 혹은 특히 기억에 남는 실수가 있었다면?
생방송에 노브레인이 출연했을 때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며 티격태격하던 중 보컬 이성우가 그만 기타리스트에게 욕을 해버렸다. 그 이후에 피디는… 어떻게 됐을지 상상해보시길.

요즘 일상의 주제곡이라 할 만한 걸 하나 꼽아준다면? 좋아서 자주 듣는 곡, 혹은 지금의 본인 상황과 딱 어울린다 싶은 곡으로.
파리돼지앵의 ‘순정마초’! 언젠가 록 버전으로 꼭 한번 리메이크하고 싶은 곡이다.

DJ는 (낮술)이다.
낮술을 같이 먹으려면 정말 친한 사이여야 한다. 난 정말 이미지 관리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친구가 되고 싶다!

 

이날 대기실에선 코러스 가수들이 피아노 연주에 맞춰 연습하는 소리가 내내 들려왔다. 무대에 오르기 전, 이한철은 그들 옆에 서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리허설 땐 홍은희의 등장을 돕는 파트너 역할을 싱글거리며 맡아주기도 했다. 편안하고 따뜻한 이한철의 노래는, 딱 그의 모습을 닮았다.

이날 대기실에선 코러스 가수들이 피아노 연주에 맞춰 연습하는 소리가 내내 들려왔다. 무대에 오르기 전, 이한철은 그들 옆에 서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리허설 땐 홍은희의 등장을 돕는 파트너 역할을 싱글거리며 맡아주기도 했다. 편안하고 따뜻한 이한철의 노래는, 딱 그의 모습을 닮았다.

 

이한철

본인을 열성적인 청취자로 만든 첫 번째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억하나?
‘전영혁의 FM 25시’. 아, MBC 프로그램으로 해야 하는 건가? 그러면 ‘별이 빛나는 밤에’. 대부분 별밤지기 하면 이문세 형님을 떠올리겠지만, 지역마다 다른 진행자가 있었기 때문에 난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대구 MBC 별밤지기 목소리를 통해 들었다. 특히 지역별로 열리는 별밤 공개방송의 인기는 대단했다. 94년 처음 가수가 되고 나서 그 공개방송 때문에 전국을 돌았는데, 마치 전국 투어 콘서트처럼 설레었다.

처음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억하는지?
아마 ‘박소현의 FM 데이트’가 아니었나 싶다. 그땐 CD가 아니라 릴 테이프를 사용했고, 지금처럼 컴퓨터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DJ가 직접 판을 틀어야 했다. 사실 소리는 거의 똑같다. 하지만 디제이가 음반을 직접 만지다 보면, 그 부클릿 안에 담겨 있는 뮤지션의 모습 혹은 텍스트를 보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DJ가 가수의 감성을 함께 공유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TV보다 라디오가 좋은 점이 있다면?
이제 가수로서 사람들과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로는 몇 개 남지 않았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을 직접 보지 못하고 무대 뒤 대형 화면으로 봐야 하는 대형 공연이 아닌 정말 작은 규모의 공연, 그리고 라디오가 전부다. 음악 프로그램이 없어졌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래도 라디오엔 그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몸에 밴 PD, 작가와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이 노래 요새 뜨더라’가 아니라, 청취자들이 이 음악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을 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말이다.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강산에와 바비킴이 함께 부른 ‘친구여’라는 노래를 들었다. 라디오가 아니면 그렇게 숨어 있는 좋은 노래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1 보컬 이원석의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그래서 부르기로 했던 노래 중 한 곡을 줄였다. 그래도 데이브레이크 멤버들은, 무대 뒤에서 연신 피아노를 뚱땅거리거나 기타줄을 튕겼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연습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생활 같아 보였다. 2 김연우가 무대에 등장하자 "와!" 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이 함성이  때문은 아니다. 라디오를 즐겨 듣는 사람들에게, 그의 맑고도 단단한 음성이 전해주는 울림은 이미 익숙하기 때문이다.

1 보컬 이원석의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그래서 부르기로 했던 노래 중 한 곡을 줄였다. 그래도 데이브레이크 멤버들은, 무대 뒤에서 연신 피아노를 뚱땅거리거나 기타줄을 튕겼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연습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생활 같아 보였다. 2 김연우가 무대에 등장하자 “와!” 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이 함성이 <나는 가수다> 때문은 아니다. 라디오를 즐겨 듣는 사람들에게, 그의 맑고도 단단한 음성이 전해주는 울림은 이미 익숙하기 때문이다.

 

데이브레이크

본인을 열성적인 청취자로 만든 첫 번째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억하나?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런데 이건 누구나 다 그렇지 않으려나? (김선일) ‘배철수의 음악캠프’. 당시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팝음악을 많이 틀어줘서, 테이프에 녹음하려고 정말 많이 들었다. (김장원) 나는 ‘김현철의 디스크쇼’ 많이 들었다. 그냥 학교 끝나고 돌아와 자기 전이 아니면 라디오 들을 시간이 없었는데, 그 시간에 그 프로그램이 나왔으니까. (정유종)

처음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억하는지?
‘박경림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별밤 7분 초대석’이 우리의 첫번째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7분이 지나면 마이크가 꺼지는 초대석이었는데, 정확히 10시 30분부터 37분까지 나흘간 7분씩 출연했다. 그것도 생방송으로 말이다. 그때 욕은 아니었지만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용어를 몇 번 쓰는 바람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방송에 맞는 말만 골라 쓰게 되었다. 우리 어휘력이 좋아진 건, 다 라디오 덕분이다.

라디오는 (휴게소)다.
지친 몸을 잠시 쉬었다 갈 수 있게 해주니까. 우리 정말 어휘력 많이 늘었구나. (웃음)

 

뮤지션, MC, 그리고 DJ까지, 최근 장윤주의 걸음은 런웨이 위에만 머물 때보다 더 기운차고 보폭도 넓다. 한국 패션계에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꼽힐 자격이 충분한 이 모델은 배철수와 함께 MBC FM DJ 콘서트의 공동 진행을 맡았다.

뮤지션, MC, 그리고 DJ까지, 최근 장윤주의 걸음은 런웨이 위에만 머물 때보다 더 기운차고 보폭도 넓다. 한국 패션계에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꼽힐 자격이 충분한 이 모델은 배철수와 함께 MBC FM DJ 콘서트의 공동 진행을 맡았다.

 

장윤주

<오늘 아침, 장윤주입니다> DJ

최악의 방송 사고, 혹은 특히 기억에 남는 실수가 있었다면?
‘띄어 읽기’ 실수를 곧잘 한다. ‘예비역 병장’을 ‘예비 역병장’이라고 한다든지, ‘평창 동계 올림픽’을 ‘평창동 계올림픽’이라고 한다든지. 아직까지도 대본 받아 들면 내내 긴장의 연속이다.

본인을 열성적인 청취자로 만든 첫 번째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억하나?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일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언니들 영향이 컸다.

DJ는 (출근)이다.
프리랜서로 오래 일을 해서 그런지 매일 출근하는 생활이 익숙지 않다. 항상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서야 하는 부담도 있고, 자유를 빼앗긴 것 같은 아쉬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월급을 받는 기분이 새롭고 괜찮다. 낯선 경험이라 신나면서도 어렵고, 그렇다.

 

는 얼마 전 방송 1주년을 맞았다. DJ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얻은 것 중 하나가 청취자들이 붙여준 ‘홍여신’이라는 별명이다. 티아라를 머리에 얹고 요술봉까지 손에 든 이날의 설정은 여신보다는 미인대회 우승자 쪽이었지만.

<홍은희의 음악동네>는 얼마 전 방송 1주년을 맞았다. DJ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얻은 것 중 하나가 청취자들이 붙여준 ‘홍여신’이라는 별명이다. 티아라를 머리에 얹고 요술봉까지 손에 든 이날의 설정은 여신보다는 미인대회 우승자 쪽이었지만.

 

홍은희

<홍은희의 음악동네> DJ

받아 본 청취자 사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
DJ를 맡은 지 얼마 안 되어 열의에 불타 있을 때였다. 초등학생의 것처럼 서툰 손글씨가 담긴 편지 한 통이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몸이 불편하셔서 거의 집에 계시기 때문에 라디오를 즐겨 듣는데, 우리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하셨다. 물론 굉장히 많은 청취자의 말씀을 전해 듣지만 그렇게 하루 종일 오후 4시를 기다려 내 목소리를 듣는 분이 계시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 좀 더 깊게 살피고 열심히 방송해야겠다고 스스로를 다잡게 해준 고마운 팬이다.

요즘 일상의 주제곡이라 할 만한 걸 하나 꼽아준다면? 좋아서 자주 듣는 곡, 혹은 지금의 본인 상황과 딱 어울린다 싶은 곡으로.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오늘 콘서트에서 부를 노래로 일기예보의 ‘좋아좋아’를 골랐다. 그 가사를 자꾸 되뇌면서 정말 잘 선택했구나 새삼 생각한 것 같다. 난 가수도 아니고 음악적으로 해박한 지식을 갖추지도 못했다. 그냥 이 노래의 주인공처럼 청취자들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건네듯 방송한다. 그래서인지 정말 내 주제곡 같은 기분이 들더라.

DJ는 (메신저)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음악을 연결해주고 갈증을 채워주는 역할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