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 구입부터 인테리어에 이르는 전 공정을 ‛단돈’ 3억에 해결했다는 땅콩집이 화제다. 토너먼트 형식의 퀴즈 대결에서 승리한 무주택 가족에게 3층짜리 단독주택을 제공한다는 서바이벌쇼 〈내 집 장만 토너먼트 – 집드림〉 역시 얼마 전부터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주거 형태의 모범답안은 아파트라는 게 꽤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대다수의 믿음이지만 최근에는 주택에서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아파트 숲을 벗어나면 삶의 공간에 관한 아이디어도 더욱 풍요로워질까? 건축가, 건축기자, 디자이너, 미술감독 등 시각적 상상력이 남다른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본인을 위해, 혹은 나름대로 설정한 가상의 건축주를 위해 집을 설계한다면 과연 그 모습은 어떨까요?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실제 의뢰인을 만나 나눈 대화가 작업의 출발점이 되고 디테일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안에 담고 있는 생각을 잘 터놓지 못한다. 심지어 부부가 함께 찾아온 경우에도 남편은 부인 눈치를, 부인은 남편 눈치를 본다. 각각 일대일로 만나야 장롱 속의 물건을 꺼내듯, 숨겨뒀던 아이 같은 욕망을 끄집어내 고백한다. 내 설계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내게 건축이란 누군가의 감춰둔 욕망을 해소해주는 작업이고 그렇기 때문에 흥미롭다. 그러니 취향에 맞는 가상의 건축주를 고른다는 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문훈 (건축가)

“집을 내 마음대로 짓고 살려는 욕심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살고 싶은 장소엔 집착하는 편이다. 집 자체의 공간 뿐 아니라 위치도 중요하다. 먼저, 집을 소유하고 있거나 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은다. 대략 10명 정도가 모이면 서울의 10개 ‘지역구’마다 10명이 10개의 집을 공동으로 소유한다. 예를 들어, 맞벌이를 하는 신혼부부는 강남의 집이 적당해서 강남구에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갑자기 홍대 근처에 근사한 카페를 차린 40대 남자는 마포구에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10명이 10개의 집을 소유한 공동소유자들은 각자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집을 바꾸고 옮겨간다. 살고 싶은 집의 모양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살고 싶은 이웃, 주변의 길과 같은 환경도 중요한 게 아닐까? 물론, 서로 좋은 집에 살겠다고 하면 이 집의 개념은 사라지겠지만.” -김형석(문지문화원 사이 문화예술팀장)

“난 아무래도 집 지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다. 어디에 살지도 고민해야 하고, 집값과 평수도 따져야 한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하면서 필요 이상의 공간을 점유해야 한다. 상황이 변해서 집을 옮길 때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집을 팔고 사고 짐을 옮기는 수고는 이삿짐센터와 부동산 중개소만 먹여 살릴 뿐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호텔 같은 집이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관리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이사 부담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 테고. 10억이 생기면 하얏트 호텔에 종신 계약을 제안해볼 생각이다.” -김상호 (월간 <공간> 기자)

“아무래도 직접 살고 싶은 집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단독주택보다는 고층 주상복합이었으면 좋겠다. 남산타워와 북한산이 내려다보인다면 금상첨화. 한쪽 벽 전체를 유리로 하고 이 벽과 만나는 다른 두 벽에는 빼곡하게 선반을 설치한다(여기에는 책을 가득 꽂아둔다). 메자닌(건물 내부의 중간층)이 있는, 굳이 말하자면 복층 구조인데 바닥부터 천장까지의 전체 높이는 7미터쯤으로 한다. 그러니 선반이 설치된 벽에는 사다리가 필수겠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침실에 해당하는 메자닌이 공중에 열기구처럼 두둥실 매달려 있다는 점이다. 그 아래 공간에는 부엌과 작업실을 자유롭게 분할하도록 해주는, 이동 가능한 벽을 설치한다. 친구들이 찾아올 때는 제이미 올리버의 스튜디오처럼 아늑한 부엌에, 밤샘 프로젝트가 있을 때는 꼭 필요한 것들만 들여놓은 작업실에 더 넓은 공간을 할애하는 것. 필요에 따라 구조를 달리하는 집인 셈이다.” -박창용(그래픽 디자이너)

“새로운 집들이 결국 기존의 틀을 많이 벗어나지 못하는 건 ‘삶의 타성’ 때문이다. 몸이나 그릇을 자주 씻고, 옷을 빨고, 배설하고, 많은 전기를 사용하는 우리의 일상이 바뀌지 않는 한 집의 형태에도 큰 변화는 없을 거다. 요즘 내가 지어보고 싶은 단독주택은 ‘완전히 귀찮은 집’이다. 기본적으로 기존의 형식을 따르되 동선을 갈기갈기 찢고 꼬아놓는다. 가령 방과 화장실 사이가 너무 멀기 때문에 가는 횟수를 줄이게 되고, 화장실을 자주 가지 않으려니 물을 덜 마시게 되고, 세탁실까지 가는 길도 번거로워서 빨래를 자제하게 되는 식이다. 삶은 복잡다단한데 집이 단순해지는 요즘의 추세에 반하여,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복잡한 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삶이 단순해진다는 건 한편으로는 ‘친환경ʼ적인 일이기도 하고.” -오영욱(건축가)

“레고나 퍼즐처럼 필요에 따라 재구성할 수 있는 집은 어떨까? 방, 베란다, 화장실, 주방, 다락, 옷장으로 구획되어 있는 공간들이 기계 장치에 의해 합쳐졌다가 다시 분리되는 방식이다. 휴가철에는 화장실과 부엌만 조립하고 떼어낸 뒤 차에 연결, 캠핑카처럼 활용한다. 침낭과 텐트 정도만 따로 챙기면 짧은 일정은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집에서 많은 손님을 치러야 할 경우에는 거실과 작은 방 하나를 연결함으로써 충분한 공간을 확보한다. 계절에 따라 창 배치를 달리해 채광을 조절하는 것도 이 집을 활용하는 방법이겠다. 트랜스포머처럼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똑똑한 공간인 셈이다.” -채경선(영화 미술 감독)

“옷 같은 주택을 상상해봤다. 입고 돌아다닐 수도, 훌훌 벗어 던져버릴 수도 있는. 더울 때는 반팔 티셔츠처럼 얇게, 추울 때는 털 점퍼처럼 두껍게 조절한다. 옷은 피부와 가장 가까이 닿는 하드웨어다. 그 ‘공간’ 안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셈이니 이 개념을 주택으로까지 확장하는 것도 가능할 듯하다. 고정된 위치, 공간의 크기, 부동산 시세 등에 연연하며 사는 대신 주택을 입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것. -이민수(건축가)

“디자인된 제품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다. 결국 1명에게도 완벽하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다수의 소비자를 위해 다수의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을 혼용하여 공간을 꾸미면 확실한 하나의 콘셉트를 통일성있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디자인의 이러한 속성을 간파하고 있는 완벽주의자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집을 만든다는 가정을 해본다. 이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집은 건물과 내부의 가구 전체가 일체형인 모듈 형태다. 거실, 침실, 서재, 주방, 화장실의 기능 단위로 만들어진 붙박이형 단위가 조합되어 집의 형태를 만든다. 이런 집에서는 별도로 가구와 가전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거실에는 이미 바닥에서 솟아오른 형태의 소파, 의자, 테이블, TV, 오디오가 자리 잡고 있고, 침실에는 옷장, 침대, 테이블, 의자 등이 바닥과 벽의 일부로 결합되어 있다. 이 각각의 가구들은 집의 형태와 정확히 같은 콘셉트로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어 이 집에 입주할 때 필요한 것은 옷과 요리를 위한 식재료뿐이다. 경우에 따라 가족구성원이 늘어난다든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있으면 기능 단위의 모듈을 분리하여 바꾸어주면 되므로 지속적인 업데이트도 가능하다.” -홍혜진 (the studio K 디자이너)

“삶의 동선은 전후/좌우/상하가 물리적으로 경계지워진 구축물에 의해 통제된다. 그 위계를 없앨 수 있다면? 딱딱하고 고정적인 물성의 기존 프레임(벽/바닥/천장) 대신 한없이 유연한 것들, 더 나아가 무형의 것들로 구분되는 공간은 어떨까 싶다. 오감/육체가 엄격한 물리적 질서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거주자와 오브젝트가 무중력 상태로 부유하는 집을 상상해 봤다. 내부와 외부를 가로지르는 벽은 실크, 혹은 고무여서 떠도는 나를 계속 안으로 튕겨준다. 시공을 구분짓는 것은 각기 다른 향기, 온도, 소리, 압력, 빛을 지닌 무형의 구름들이다. 휴식 시공에서는 숲 냄새, 산들바람, 은은한 음악을, 작업 시공에서는 도시 냄새, 침묵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유형의 공간을 무형의 경계로 가르는 셈이다.” -안기현(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