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열면 멈출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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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을 펼치는 순간 포위될 것이다. 촘촘히 짜여진 허구의 공간부터, 끊임없이 갈등하고 대립하는 인물들, 그리고 끝을 향해 폭주하는 사건들까지. 소설가 정유정이 쥐고 흔드는 이야기판으로부터 탈출할 도리가 없을 테니까.

<7년의 밤>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읽기 시작한 이상 끝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소설은 당연히 재미있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등단을 준비하면서 인간의 내면, 사유, 성찰 등을 다루는 소설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내가 지금 철학을 하는 게 아니지 않나. 나에게 소설을 쓴다는 건, ‘자 이제부터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라는 독자와의 약속이다. 그러면 독자들이 귀를 쫑긋하고 들으며 ‘어머 그래서, 그 다음엔 어떻게 됐어?’라고 물어주면 좋겠다. 지금도 내 글에 성찰과 통찰이 없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보다는 ‘이 소설 재미없어.’라는 반응이 가장 가슴 아프다.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이야기란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간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 그게 이야기다. 그걸 기왕이면 문장력, 표현력, 묘사력을 통해 독자들이 미학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소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소설이란 이야기의 예술인 셈이다. 하지만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과 아름다운 문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전자를 택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문장, 구조, 심지어 인물까지도 이야기에 복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심장을 쏴라>에서도, <7년의 밤>에서도 소설 속 이야기를 마치 내 자신의 것처럼 느끼기는 어려웠다.
인물들을 정신병, 살인과 같은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붙여서일 것이다. 그렇게 인간을 끝까지 내몰아야 진짜 유치하고 치사한 본성이 나온다. 그 진짜 모습을 지켜보는 게 불편해서 모두 피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걸 보라고 끄집어내서 까놓는 거다. 인간의 속이 얼마나 복잡하고 끝이 없고 뜨겁고 더러운지.

그런데도 막상 책을 덮고 나면, 모든 인물들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투쟁하며 산다. 그래서 삶에 욕심 부리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게다가 그 짠한 동물 속에 나 역시 속하는 것이고. 특히 은주라는 인물을 내놓으면서 고민이 많았다. 은주는 자기 삶에 지나칠 만큼 욕심 부리고 집착하는 속물이지만, 동시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아줌마들의 보편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여자가 여러 겹을 가진 인물이 되기를, 독자들이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짠하게 봐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현수를 오래전에 아내를 잃은 홀아비로 만들까 생각까지 했었다.

<7년의 밤>의 세령호, <내 심장을 쏴라>의 수리 모두 가상의 공간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일단은 내 자신이 자유롭고 싶었다. 실재하는 곳을 이야기에 등장시키면, 이야기를 그 안에 끼워 맞춰야 하는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방향 감각이 없다. 그래서 책 처음에 나오는 세령호 지도, 그걸 계속 스케치북에 그렸다. 그리고 스케치북 한 권을 다 쓸 만큼 지도를 그리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니, 그제야 소설의 배경에 대한 장악력이 생기더라. 고생 많이 했다(웃음).

많은 인터뷰를 통해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내 심장을 쏴라> 그리고 이번 <7년의 밤>이 자유 의지 3부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자유 의지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그 무엇을 가지고 있나?
나에게 왜 사냐고 묻는다면, 글을 쓰기 위해 살겠다고 답할 것이다. 사명감 때문이 아니다. 그저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이 재미있어 해주는 것. 그게 내 인생의 가치다. 무명 시절엔 책 한 권 내기 위해 출판사의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힘겨웠고, 거절당하면 속상했고, 공모전에서 떨어지면 앓아 누웠다. 그런데 이제 무대가 마련됐다. 그 무대에 서면 짠 하고 조명도 들어온다. 어느 정도 청중도 모여든다. 그러니 여기서 내가 제대로 이야기를 못하면 망해야지.

롤모델로 삼는다는 스티븐 킹은 사실 다른 작가들이 흔히 꼽는 인물은 아니다. 위대한 문학가보다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시대의 이야기꾼에 가까워서가 아닐까.
많은 독자들이 아직도 수상쩍어하는 걸 알고 있다. 이 사람은 진정한 문학이 아니라 그저 대중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아마 ‘세계 청소년 문학상’과 ‘세계 문학상’을 받은 경력이 아니었더라면, 더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정한 문학이니 대중 소설이니 그런 개념이 없다. 그저 인간, 그 중에서도 운명과 드잡이하는 인간에 대해 쓰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엔 독자들이 나에게 심장을 저당 잡히기를, 그래서 가슴이 벌렁벌렁하기를 원한다.

흥행과 비평 모두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스스로는 <7년의 밤>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을 테다.
인물을 이야기 속에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최현수란 캐릭터는 도덕 관념이 강해,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만 미쳐갈 뿐 행동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현수를 대신해 행동할 인물로 안승환을 데려왔다. 사실은 꽤 변칙적인 방식이다. 다음엔 주인공의 양면성이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행동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다음 소설을 벌써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이번에 세상을 향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인간은 가장 최근에 지구를 정복한 종족일 뿐이다. 그런데도 인간이 지나간 자리마다 초토화되지 않은 자리가 없다. 그렇게 자연을 훼손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 항상 2년을 꼬박 써서 책 한 권을 내온지라, 이번엔 1년 만에 내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될지 모르겠다.

서른다섯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 마흔하나에 등단한 것으로 안다. 그렇게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어떻게 참았나?
집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 책임을 벗고 나서야 글을 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 후 등단하기까지 6년이 걸렸는데, 남편의 도움이 컸다. 물론 그 덕택에 지금 수금 잘하면서 살고 있지만(웃음).

에디터
에디터 / 김슬기
포토그래퍼
엄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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