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비행기 좀 타줘야 휴가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경기도 오산. 가까이에 이런 멋진 여행지들이 가득하다는 것이야말로 전라남도 영광. 멋진 거라면 어지간히 겪어본 18명의 친구들이 이토록 근사한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방식에 대해 더블유에 털어놓았다.

경주

달빛 길어올리기
뜨거운 여름날의 태양을 피해 바람이 솔솔 부는 곳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그리고 해가 질 즈음에야 튼튼한 신발 하나 챙겨 신고는 경주 거리로 나서본다. 오래된 도시 경주는 수많은 청춘들의 기억을 나눠 가진 정다운 곳이다. 희게 떨어지는 벚꽃잎 어깨 위에 맞으며 그이와 함께 두 바퀴에 실어 봄을 달렸고,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추억을 만들던 그 도시 아닌가.

사실 경주는 낮보다는 밤이 훨씬 재미나다. 그리고 아름답다. 경주의 진짜 모습은 휘영청 둥근 달이 떠오르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해질 무렵이면 시내로 간다(사실, 시내라고 해봐야 거의 걸어 다닐 수 있는 정도의 작은 크기다). 이곳에 첨성대와 계림, 안압지, 대릉원 등의 고분들과 박물관이 모여 있다. 고즈넉한 산책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았던, 낡은 집 다닥다닥 붙어있는 정겨운 황오동 뒷골목이 사라져버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신비한 분위기 자아내는 밤의 사적지들 만으로도 충분히 위안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유적지들은 늦은 밤까지 문을 여니 바쁘게 움직일 필요 또한 없다. 첨성대 앞은 달 구경하기에 좋다. 우거진 숲 위로 굉장히 빠르게 치솟는 달을 볼 수 있다. 그때가 만일 달이 찰 즈음이라면, 어쩌면 보문단지 위에서 쏘아올린 열기구와 헷갈릴지도 모른다.

나지막한 돌담이 인상적인 대릉원은 유명한 천마총을 비롯해 21기의 고분을 품었다. 둥글고 보드라운 고분의 곡선은 밤이 되면 더 아름답다. 오렌지빛 가로등 아래의 고분은 아직 푸른 기운을 잃지 않은 저녁 하늘에 맞닿아 있다. 분명 누군가의 무덤이지만 두렵지 않은,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고분 사이를 걷는다. 낭만과 팔짱을 낀다. 달이 머리 위로 떠오르면 대릉원 건너편 계림으로 가야 한다. 지난봄 또다시 새 잎을 틔우고 여름을 맞은 늙은 고목들이 비틀리고 똬리를 틀며 하늘을 향해 섰다. 푸른빛 조명을 받아 신비롭다. 시간의 미궁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계림 넘어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2천 년 전 냉동 창고 석빙고가 나온다. 한밤의 조명 쇼는 첨성대 큰 길 건너편 안압지에서 절정을 이룬다. 안압지는 나라의 경사를 맞아 축하연을 열었던 동궁(東宮)으로 문무왕 때 지었다. ‘궁 안에 못을 파고 가산을 만들고 화초를 심고 기이한 짐승들을 길렀다’고 <삼국사기>에 전해진다. 안압지는 동서남북 190m 규모의 인공 연못을 중심으로 큰 규모의 정자들과 잘 가꾼 정원으로 꾸며졌다. 사람들은 이곳에 소원을 담은 꽃등을 띄워 보낸다. 매월 둘째 토요일에는 경주 신라문화원에서 주최하는 달빛기행에 참여할 수 있다. 낮에는 문화유산 해설사와 함께 경주 문화재 기행을 떠나고, 달이 뜨면 소원을 적은 백등에 불을 밝히고 분황사에서 탑돌이를 한다. 안압지의 야경을 거닐고 국악공연과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신라의 달밤 정취에 흠뻑 빠질 수도 있다.

늦은 밤까지 계속된 경주 탐닉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황오동 해장국 거리에서 쉼표를 찍는다. 말캉말캉한 묵과 아삭한 콩나물 가득 넣어 한소끔 끓여낸 소박한 해장국 한 그릇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코에 땀이 나도록 훌훌 들이켜고는 다시 경주의 밤 속으로 길을 나선다. -고선영(여행 작가)

전주

느리게 먹기
고향인 전주의 진가를 발견한 건 서울에서 살다 다시 내려갔을 때였다. 국제 영화제를 비롯해 소리 축제가 있고 영화관이 발달하는 등 전주는 다양한 문화적 시도가 벌어지는 곳이다. 한편 인구밀도는 무척 낮아서 서울의 한 구 정도 될까말까. 도시의 문화 혜택과 시골의 한적함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경계 지역의 매력이 있다. 영화 촬영지로도 알려진 전동성당은 전주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안내하면 늘 좋은 반응을 얻는 장소. 7월이면 연못 가득 연꽃이 피어 장관을 이루는 덕진공원도 소박하지만 여름 전주를 여행한다면 빠뜨려선 안 될 곳이다. 전주의 상징이기도 한 한옥마을은 들어서는 순간 눈높이가 낮아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한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전통 찻집이나 식당, 한지 같은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운영되며, 무엇보다 숙박이 가능하다. 전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예약 안내도 잘 되어 있으니 조금 불편할지라도 호텔이나 모텔보다는 학인당이나 일락당 같은 전통 한옥 체험관에서 하루 묵어 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베테랑칼국수, 콩나물국밥이나 남부시장의 순댓국 같은 음식은 이미 너무 유명해졌으니 하루에 다섯 끼 정도는 먹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섭렵해야 전주 맛집을 놓치지 않고 둘러볼 수 있을 거다. 저녁에는 반드시 삼천동의 전주 막걸리 골목에 가야 한다. 막걸리를 주문하면 한 주전자씩 추가할 때마다 번듯한 안주가 코스로 따라 나온다. 생선구이, 모둠전, 대하찜, 동태찌개 심지어 백숙 같은 음식까지. 한 주전자에 1만2천원쯤 되는 술값만 내면 이 모든 음식이 다 포함된다. 전주 막걸리와 쌍벽을 이룰 만한 것은 슈퍼에서 먹는 가맥(가게 맥주). 전일슈퍼의 황태구이나 갑오징어구이는 어디나 있는 흔한 음식 같지만 함께 찍어먹는 소스가 청양고추의 칼칼하고 독특한 맛을 낸다. 전주 교외로 조금 나가면 화심순두부라는 곳이 있는데, 현지 사람들이 특히 많이 가는 곳이다. 커다란 두부 공장을 끼고 있는데 놀랄 정도로 커다란 몇백 석 규모의 식당이 늘 꽉 차 있을 정도로 인기 있다. 본점은 특히 물이 좋다고 해서 멀리서들 찾아가 두부를 먹는 곳인데 무척 고소하고 담백하다. 자연이 부드럽고 온화해서인지 사람들이 여유롭다는 점 또한 여행지로서 전주가 갖는 매력이다. – 김나나(스티키몬스터랩 프로듀서)

전남 화순

그 계곡, 가장 조용한 원두막
전남 화순군 이서면에 우리나라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으면 아무 길도 없는 한가운데 점 하나가 보이고, 그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이 길인지 저 길인지 헷갈리는 야산의 좁은 길들이 나온다. 외딴 마을을 지나 더 이상 표지판도 없는 지점에 이르면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논가의 샛길을 지나 무등산 기슭에 위치한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다. 집주인이 오래된 한옥을 개조해 손수 지은 황토집 앞마당에는 역시 몇 년에 걸쳐 손수 조성한 연못이 있고, 그 옆에는 원두막이 있다. 그 원두막 아래에서 <일곱날들> 앨범에 실린 ‘물고기종’이라는 곡을 만들었다. 마당에서 내려다보면 모후산을 비롯해, 만년산, 안양산 등 화순군에 있는 산들이 보인다. 그곳에서 보는 일출은 감히 절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멋지다. 천연 땔감만을 쓰는 절절 끓는 황토방까지 갖춘 이 집의 주인은 내 작은 이모 내외이시고, 그래서 지인이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이다.

그 집에서 1시간 정도 계곡을 따라 무등산으로 들어가면, 비가 많이 온 다음에야 하루 이틀 정도 볼 수 있는 시무지기 폭포가 나온다. 아담한 용추폭포와 함께 무등산 유일의 폭포다. 평소에는 폭포의 모양대로 물줄기만 흐르다가 강수량이 많으면 세 개의 폭포가 생겨 그 위용을 드러내고, 세 개의 무지개가 생긴다 해서 시무지기란다. 화순군 이서면 용강마을을 통해 갈 수도 있고, 무등산장에서 꼬막재를 지나 광일목장 삼거리에서 30분 정도 걸려 갈 수도 있다.

가까이 화순군 남면 모후산 입구에 위치한 유마사도 들러볼 만하다. 아무 치장도 없이, 일주문부터 건물마다 그 흔한 현판 하나도 붙어 있지 않은 소박한 외양의 산사이지만 백제시대에 지어진 천년고찰이다.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이어서 조용하기 그지없고 해우소에 신발을 벗고 들어갈 정도로 깔끔한 절 안에 머물 수 있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의 안양산 자연휴양림도 좋다. 울창하게 우거진 편백나무, 측백나무, 삼나무 숲이 머리를 식혀준다. 특히 밤 시간의 휴양림 드라이브는 강추. 날씨가 좋으면 숲 위로 별들이 가까이 보인다.
근처 지날 때 식사를 하시려거든 오케이 사슴목장가든에서 닭 사시미를 드셔보시길. 닭을 잡자마자 바로 살코기를 포 떠서 회로 먹는다는데, 아쉽게도 나는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다. 그 집에서 잡아온 닭으로 이모댁 원두막에서 닭숯불구이만 해먹곤 했는데, 닭을 구워 먹은 후에 근처에서 딴 방앗잎을 넣어서 라면을 끓여 먹으면 양꿍 부럽지 않은 향면이 된다.

휴양림을 지나서 큰재꽃길을 지나 화순읍 동구리로 가면 만년사가 있다. 만년사 계곡은 5•18 민주항쟁 당시에 시민군들이 화순 경찰서 무기고를 탈취해 총기 300여 정을 숨겼다가 반납했던 곳이라고. 만년사에서 15분 정도 호젓한 숲길을 걸으면 선정암(와선정암이라고도 불린다)이 나온다. 구한말에 명창들이 소리를 배운 곳으로 유명했던 암자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 <쌍화점>의 촬영지였던 화순적벽, 물염정에서 보이는 물염적벽 등 절경이 모두 근처 30분 안팎 거리다. 차로는 이 모든 곳을 하루 안에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아마 특별히 기억에 남을 드라이브 코스가 될 거다. – 송은지(뮤지션,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전북 고창

안부가 궁금한 길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이 두 줄의 노랫말로 선운사를 알게 되었다. 몇 해 전 친구들과 국도 여행을 계획하고 서로가 가고 싶은 장소를 얘기했는데 선운사는 지인이 가 보고 싶어 한 장소였다. 그날 그랬는지 그 이전에 그랬는지는 이제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선운사’라는 노래 역시 같은 사람이 불러주어 처음 알게 되었다. 오월의 평일 한적한 국도를 달리다 궁금한 곳이 보이면 내려서 둘러보거나 촌스럽지만 발음하기는 좋은 동네 이름을 얘기하며 깔깔거렸다. 바쁘게 보내는 서울에서 떨어져 나와 우리끼리만 섬이 되어 지방국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선운사는 선운산 도립공원에 있는데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라 그런지 굳이 내비게이션을 통해 찾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일단 고창군에 들어서 선운사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금세 나온다. 주차를 하고 일주문까지만 해도 흔한 관광지 같았다. 길가에 자리 잡은 기념품 가게와 노점상들. 일주문을 지나자 초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녹색부터 그렇지 않은 녹색까지. 첩첩산중이 아닌데도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어 놀랍고 좋았다. 선운사는 큰 터에 자리하고 있지만 높지 않은 담, 세월을 지닌 색색, 웅장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은 요사채들이 선운산에 안겨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었다. 만세루에서는 절에서 제공하는 차를 마실 수도 있다. 차 생각이 없더라도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아보길 권하고 싶다. 시원한 그늘 속에서 긴 세월 위에 앉아 있는 듯한 생각이 들 것이다.

매표소에서 선운사까지 올라가는 길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이 난다. 길 위를 촘촘히 덮은 작은 이파리를 통해 떨어지는 빛이 물방울처럼 번지는 모습과 길 옆으로 흐르는 약간은 탁한 물빛(주변 나무에서 나오는 특정 성분 탓에 물빛이 흐리다)이 계절마다 어떤 옷으로 또 갈아입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노래를 통해 선운사를 알았지만 가사에 나오는 동백꽃은 보질 못했다. 시기가 안 맞아서였지만 다시 갈 핑계가 되는 것 같아서 아쉽지 않다. 올 여름 자전거 여행에는 서해안도로를 달려볼 생각이다. 군산을 지나 목포로 향하기 전에 꼭 들를 예정이다. 한여름의 선운사 가는 길을 담고 와야겠다. 고창을 돌아 나오는 길에는 보리밭에도 들를 것이다. 또 하나의 비밀스런 나만의 길이 생길 것 같다. 계절이 바뀔 때 안부가 궁금한 길이. – 표기식(그래픽 디자이너/사진가)

제주 보목리

없는 게 메리트
9월의 제주. 피서객들은 다시 일터로 향했고 연인들의 해변은 다시 바다의 것이 되었다. 말소된 운전 면허로는 어떤 차도 빌릴 수 없었고 혼자 떠난 그곳에서 믿을 건 귀동냥과 쓸데없이 날씬한 로퍼뿐. 차라리 시내버스를 타자, 하고 무작정 정류장에 서 있다 근거리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곤 했다. 나와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속정이 차 안의 온도를 25도에 맞춰놓고 있었다. 할머니의 보따리와 중학교 여학생의 두툼한 가방, ‘라이방’ 선글라스를 턱하니 콧잔등에 얹어놓은 기사 아저씨의 명쾌한 행선지 안내가 달뜬 나를 그들의 마을 언저리에 내려주곤 했다. 보목리는 제주의 마을이었다. 낮은 담장만큼이나 침착한 바다, 너무 느려 털의 고운 빛깔까지 훑어 내릴 수 있었던 마을 고양이, 툭 하늘에서 내려오는 크고 하얀 새. 작은 구릉들로 이어진 마을의 길들을 조심스레 걸었다. 빨간 지붕과 하얀 지붕을 지나면 그저 동네 아이들이 내달리는 그 여름의 끝, 가장 조용한 바다와 만나곤 했다. 그리고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었다. 아무도 없는 게 메리트였던 조용한 바다 마을의 추억. – 진명현 (상상마당 프로그래머)

거문도

멀리 왔다는 마음
‘멀리 왔다’는 기분을 느끼기에 섬보다 더 좋은 공간은 없다. 배멀미에 대한 가벼운 불안. 부두를 떠나는 여객선의 출렁임, 바다에서 바라보는 해안선, 섬 여행의 의례를 거치는 동안 마음은 묘하게 아득해진다. 이건 출국 수속이나 면세점 쇼핑으로 느끼는 여정과는 또 다른, 투박하지만 낭만적인 일탈감이다.

거문도는 여수 남쪽 114km 해상에 위치한 꽤 외로운 섬이다. 남해안과 제주도, 대마도의 중간에 자리한 미묘한 위치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등대가 세워졌다.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이 등대는 섬 사람들의 자랑거리지만, 낯선 방문객으로서는 그 등대의 규모보다 등대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산책로가 인상적이다. 절벽 위의 산책로는 동백나무가 울창한 남해의 원시림을 헤치며 굽이굽이 나아간다. 시선 저편으로 하얀 등대가 숨었다 드러났다 점점 다가오는 동안, 건너편 섬의 암벽들은 산책로의 각도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절경을 선사한다. 밤이 되면 캄캄한 하늘 위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별이 나타나는데, 섬의 산마루에서 내려다보는 먼 바다 위의 별은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답다.

거문도는 세 개의 섬이 군도를 이루며 가운데 잔잔한 만을 형성한다. 드물게 천연 항을 끼고 있기 때문에 19세기 말에는 영국군이 점령해 군항으로 사용했다. 섬에는 이곳에 주둔했던 영국군의 묘지가 남아 있다. 영국군이 물러간 뒤에는 일본인이 몰려들었는데, 당시 문을 연 일본식 여관은 내부를 거의 고치지 않은 채로 아직 영업 중이다. 객실은 좌식 다다미 방이지만 현재 주인은 한국사람이다.

먼바다에 위치한 섬치고는 면적이 넓어서 도심의 웬만한 산보다 더 긴 트레킹 코스, 두 개의 해수욕장, 억새 군락지 등이 섬 전역에 흩어져 있다. 바다가 맑은 것은 – 모든 섬의 바다가 그렇듯- 기본이다. 여러 개의 여관, 횟집 등 여행객을 위한 시설도 나름대로 갖춰져 있는데 기묘하게도 이 섬에서는 회 맛도 회 맛이지만 자장면과 돈가스가 맛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딱히 자장면에 해물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닌데.

거문도의 생선회는 맛이 뛰어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가격이 놀랄 정도로 싸거나 그렇진 않다. 물론 육지에서 그 가격에 그런 ‘퀄리티’의 회를 맛볼 수는 없겠지만.

가거도나 어청도 같은 섬을 제외한다면 비교적 먼 뱃길을 가야 하는 섬에 속한다. 녹동항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 시시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딱 적당한 항해를 경험할 수 있다. 여객선에서 내려 배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나면 목덜미에 부는 바람이 낯설다는 느낌이 든다. 다음 배가 오기 전까지 이 조그마한 섬 외에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는 달콤한 고립감은 고속도로로 이어진 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특이한 감각이다. – 유호진(KBS <승승장구> PD)

제주 올레길

걸어서 저 바다까지
마이클은 땀내를 풍기며 들어왔다. 반갑게 웃었고 우리는 악수를 했다. 마이클은 자신이 스위스의 코를 가졌고 한국의 눈을 가졌다 했다. 어릴 적 돌아가신 엄마의 고향이 궁금해 한국을 찾은 모양이었다. 네 칸짜리 침대가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이클은 한국인의 눈과 코를 가진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무언가 속 깊은 말들이 공유되었다 생각했겠지만 사실 영어를 잘 못하는 내가 30을 들으며 80을 알아듣는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그래도 내가 가진 그에 대한 인상, 긍정의 강인함과 연약한 슬픔이 함께 읽히던 표정은 우리가 공유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나 또한 그 친구에게 나를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는 단 5초 만에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다음 날 늦잠을 잔 우리는 부산스럽게 일어났다. 외국인을 위한 투어버스에 오르기로 한 마이클은 세수도 못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달려 나갔다. 우리는 서로의 행운을 빌어줄 시간도 없었다. 나는 다시 지도를 폈고 오늘 산책할 올레길과 버스 노선을 알아보았다.

1시간 후 나는 어느 작은 숲길에 있었고 깊은 그림자의 숲 안에서 잘게 부서져 들어오는 햇살들을 보고 있었다. 새들이 초현실적인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고 나는 거기서도 이상하게 알아듣는 표정을 한다. 올레길를 걸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눈뿐만 아니라 귀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와 작은 벌레와 저 멀리 바다에서부터 시작한 바람과 바람에 부딪히는 돌과 바람이 스치는 나무와 숲, 그리고 나의 숨소리. 누군가의 산책로였을지 모를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얕은 언덕을, 작은 비밀의 숲을, 작은 마을을 지난다. 오름을 오르고 땀이 차면 풍경이 보이고 잠시 나를 멈춘다. 언덕에 앉아 아침에 슈퍼에서 산 단팥크림빵을 하나 꺼내어 먹는다. 바람에 식은 땀 때문에 잠시 소름이 돋고 다시 일어나 엉덩이를 턴다.

제주도는 사실 올레길 외에도 수많은 길이 있다. 그리고 그 길을 지난 사람들만큼 서로 다른 추억과 사연이 있다. 파란 리본과 파란색 화살표로 만들어진 올레길은 제주의 해안을 따라 20개 정도가 현재 만들어져 있다. 관광지처럼 만들어진 대단히 유명한 길도 있지만(7번이나 10번) 아직은 사연을 기다리는 조용한 길도 남아 있다(내가 사랑했던 3번길이나 2번길). 계절마다 날씨마다 다른 옷을 입고 기다리는 그 길들은 닳았지만 닳지 않은 길이다. 그 길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지만 그 길의 목적은 도달할 끝에 있지 않다. 빨리 걸어도 좋고 천천히 걸어도 좋고 쉬어도 뒤를 돌아봐도 좋다. 그 길의 끝은 마을의 느티나무거나 작은 포구이거나 해질녘의 텅 빈 해수욕장이었다. 끝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 끝에 선 기분은 밀레니엄을 기다리다가 보신각의 종이 치고 새해가 되면 잠시 시간이 멈출 줄 알았는데 초침이 하나의 멈칫함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것과 같다. 하나의 길을 끝내고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 짓기로 하고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서귀포에 들러 맛있는 일본식 우동집을 찾아내 카레우동을 먹고 아직 해가 저물고 있을 때 새로 예약한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택시 아저씨는 보목동이 제주도에서 봄이 가장 빨리 오는 곳이라고 했다. 의자에 기대어 어제의 도시를 잠시 잊고 마이클과 카레와 숲길과 바다를 잠시 생각했다. 차 안에서 기묘하게도 암브로시아의 ‘hold’in on to yesterday’가 흘러나왔고 택시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보목동에 어둠이 있었다. – 김종관 (영화감독)

제주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여행지 추천이라는 게 의미가 있으려면 한려해상에 흩뿌려진 깨알 같은 섬 하나라던가, 전라도 너른 평야 가운데 점 같은 마을 한 군데를 콕 집어야 그게 추천 아닐까? 제주도가 암만 좋다고 말해봤자 그건 김태희 예쁘다 타령만큼이나 식상하니까. 하지만 가도 가도 도무지 질리지 않는 여행지고, 봐도 봐도 아쉬움을 남겨놓고 돌아온다는 점에서 제주는 언제나 새롭고 아련하다.

유행이 빠르고 센 나라답게, 제주에 가면 무조건 올레를 걸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는 무섭다. 사실 서울에서도 좀처럼 걷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 2박 3일 걷기 위주로 짜여진 여행이라는 건 고등학교 때 수련회 이후론 자의로 선택해본 일이 없다. 5코스가 좋다 7코스가 진짜다 하는 말들은 귓등으로 흘리고, 숙제를 포기한 초등학생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니는데, 어떤 사람들에겐 한심해 보이겠지만 뭐 어떤가. 여행이란 게 자기 돈 쓰면서 자기 좋자는 시간인데. 차를 주로 타고, 맛있는 곳들을 찾아 다니고, 먹으면 배가 부르니까(그리고 곧 또 다른 음식이 먹고 싶어지니까) 배를 꺼뜨리기 위해 그 근처를 걷는 식으로 여행하는 게 나는 좋다. 이름을 새로 붙였을 뿐, 길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으니까.

매번 빠뜨리지 않고 먹으러 가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우선 산방식당. 부산 밀면 비슷하게 차가운 고기국수인데, 면발이 쫄깃하면서 탱탱하고 국물은 구수하게 새콤한 감칠맛이 돈다. 여기서 먹고 산방산 아래에다 차를 세우고, 중국이나 홍콩 돌산처럼 생긴 산 언저리를 쉬엄쉬엄 구경하거나 조금 내려가서 용머리 해안을 걷다 오거나 한다. 검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바위 해안의 좁은 통로에 의지해, 파도를 바로 곁에 두고 좀 걷다 보면 든든하게 먹었던 국수가 금세 쑥 내려간다. 조천읍 교래리 인근에는 토종닭 하는 곳들이 모여 있는데, 이 중에 아름가든이 제일 맛있다. 닭고기를 샤브샤브로 먹다가 백숙을 끓여 내오고, 마지막엔 녹두죽까지 끓여주는데 서울에서 먹던 치킨 닭이 김병만이라면 여기 닭은 최홍만의 육질을 가졌다. 여기서 밥 먹고 아저씨랑 얘기 나누다가 추천받아서 인근 다랑쉬오름에 처음으로 가봤다. 야트막하지만 동네 뒷산과는 사뭇 다르게 다이내믹한 생김새를 가진 오름은 등산에 선천적 공포를 가진 나같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는 규모라서 한라산이나 바다에 익숙하다면 가볼만 하다. 게다가 30분 남짓을 오르면 내려다보이는 것이 우리 동네 풍광이 아니라 성산 앞바다와 우도라면? 등산 공포증 쯤이야 극복, 회복, 행복. 오름이 싫다면 조천에서는 비자림이 가깝다. 수백 년 된 비자나무 숲은 눅눅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횟집 청해일은 제주 현지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는데 저렴한 가격에 코스로 회와 해물이 줄줄이 푸짐하게 나와서 좋아한다. 오조나 성산일출봉 해녀의 집에 전복죽이랑 문어숙회, 성게미역국 같은 걸 먹으러 가서는 늘 위장이 소처럼 네 개가 아닌 걸 탓하고 온다. 제주 돼지고기집 돈사돈은 최근 서울 합정에도 분점이 생겨, 가서 먹으며 제주도 생각을 한다.

숙소는 아무리 다녀봐도 제주 신라가 최고다. 호텔 앞 뜰에서 중문해수욕장으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투숙객들만 쉴 수 있는 비치 하우스가 있다. 지난봄 거기서 몸을 녹이며 먹었던 군고구마는 제주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였다. 제주엔 보러 가는지, 먹으러 가는지. – 황선우( 피처 디렉터)

군산

역사의 풍경
군산의 동네 이름에는 ‘쌀 미(米)’자가 들어간 곳이 많다. 호남 곡창지대의 쌀을 가져가기 위해 일제가 만든 도시였다는 역사적 흔적이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공존하여 한국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풍경, 다른 건축물을 지닌 군산으로의 여행은 특별한 도시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근대문화유산이라 불리는 일제강점기의 건물들, 그리고 이런 특별한 집들이 몰려 있는 거리가 내뿜는 묘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느껴보면서 도시란 무엇인지, 도시에 역사는 어떻게 담기게 되는지, 다른 문화와 고유 문화는 어떻게 뒤섞이는지 체험하는 것. 그게 군산 여행의 매력이다.

군산에서 우선 가볼 만한 곳은 ‘군산에만 있는 절’ 동국사다. 동국사는 국내 유일의 일본식 절인데,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만든 이 절은 해방 이후 한국의 절로 내용물이 바뀌었다. 바로 옆 나라인데도 두 나라의 전통 건축이 얼마나 다른지 실감할 수 있다.

군산에 있는 일본 집의 대표격인 ‘히로쓰 가옥’도 꼭 가볼 코스다. 일제시대 군산에서 떵떵거렸던 일본 부자의 저택으로,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크고 웅장한 규모라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를 이곳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밝고 개방적인 한옥과 달리 어둡고 복잡하며 마루보다 복도가 발달한 일본식 집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이영춘 가옥은 일본인 지주 구마모토가 지은 별장이다. 일본식도 한국식도 서양식도 아닌 이 모두가 섞인 건물 외관도 독특하지만, 한 의사의 이야기가 더해지면 더욱 특별해진다. 구마모토가 농장 의사로 초빙한 의사 이영춘은 일제시대 이후 군산에서 불우한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등 인술을 펼치던 이로, 지금 이 집은 그를 기리는 기념관으로도 쓰이고 있다. 한옥 창호와는 다른 일본식 창호의 아름다운 모습이 볼거리다.

군산 기행의 하이라이트는 운행이 끝난 폐철도가 거리 한복판을 지나는 ‘폐선거리 기행’이다. 군산에 하나뿐인 이마트 맞은편, 큰 길가 바로 뒤 이면도로 전체가 철길 골목이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이 길은 집과 철길이 불과 몇십 센티미터를 사이에 두고 있는 놀라운 풍경이 펼쳐진다. 쉬엄쉬엄 걸으면 10분 만에도 다 돌아볼 수 있지만 분위기를 최대한 즐기며 천천히 거니는 것이 좋다.

군산의 명물 음식은 짬뽕이다. 인터넷에서 ‘군산 10대 짬뽕’을 검색해 입맛대로 골라 먹은 뒤, 후식은 이성당 빵으로 해보자. 달콤한 빵을 우물거리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자 서양식 빵집이라는 이성당 건물을 한 번 더 올려다봐도 좋다. 이토록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풍경들로 가득한 군산, 하지만 그 역사를 둘러보는 데는 1박 2일이면 적당하다. -구본준 (<한겨레> 책지성팀장, <별난 기자 본본 우리 건축에 푹 빠지다> 저자)

통영

섬 따라 맛 따라
통영 참 좋더라는 여행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릴수록, 그 곳에서 자란 나 같은 사람은 자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개 발 때문에 자꾸만 변하는 고향의 모습이 영 익숙지 않아서 다. 그래서 통영 토박이는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섬으로 간 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물의 도시, 그 통영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섬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소매물도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한산도와 욕지도, 그리고 사량도 또한 시간 내 가볼 만한 곳이다. 먼저 한산도는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전승지로 유명한 곳인데, 그런 유적지보다 재미있는 건 마을버스 여행이다. 섬 전체를 거의 돌아볼 수 있 는 마을버스를 선착장 근처에서 타고, 진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섬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마치 사랑방에 앉아 있는 양 나누는 이야기를 배경 음악 삼아 바깥 풍경 을 바라보면 도시에선 상상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1박 2일>이란 예능 프로 그램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욕지도에선 2인승 카트를 타고 마을을 돌다가 에덴 동산이 보 이면 들어가보길 권한다. 위암 선고를 받은 딸을 위해 엄마가 직접 흙집을 짓고 작품들을 만들어 생겨난 곳인데, 지금은 그 딸이 암을 이겨냈다 니 애틋한 모녀간의 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량도 에선 등산이 제격이다. 정상에 오르면 아름다운 한려 수도가 한눈에 내다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높이로만 봐서는 오르기에 적당해도 의외로 난코스가 많아, 초 보자라면 우회 산행을 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섬 여행만으로도 충분한데도 굳이 시내로 들어 오는 건 통영에서만 맛볼 수 있는 먹거리들 때문이다. 서호시장 근처엔 영화 <하하하>에도 나오는 호동식당 이 있다. 큰 복어를 잘라 끓이지 않고 작은 복을 넣어 만드는 통영식 복국을 기막히게 하는 곳이다. 근처 원 조 시락국에 가면 장어를 갈아 배추 시래기와 함께 끓 이는 시락국을 맛볼 수 있는데, 큰 멸치 젓갈을 올려 먹 어야 제맛이다. 이쯤이면 배가 터질 지경이겠지만 서 호동의 할매우짜 집에서 우짜 또한 먹지 않으면 서운 하다. 서호시장 상인들에게 우동과 짜장을 섞어 팔았 다는 우짜의 원조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팔팔한 해산물을 싸게 먹고 싶다면 중앙시장이나 서호시장으 로 가야겠지만, 만약 바다를 바라보며 회를 먹고 싶다 면 해원횟집이나 궁전횟집을 추천한다. 해원횟집의 경 우 모서리의 바다 보이는 방으로 예약하면 통영 운하 와 항구를 볼 수 있는데 야경이 그야말로 장관. 궁전횟 집에서 바다를 보려면 7층의 바다 보이는 홀 쪽 자리를 예약하는 게 좋다. 간식으로는 역시 충무김밥과 꿀빵. 충무김밥이야 이제 서울에서도 흔한 음식이지만 그 수 많은 원조 가운데 진짜 원조인 중앙동의 뚱보 할매김 밥을 먹어보면, 서울에서 먹던 것과 정말 같은 음식 맞나 싶을 거다. 꿀빵 하면 원래 오미 사 꿀빵이었다. 서호동 충렬사 가는 길에 오미사라는 맞춤 양복점이 있었는데 그 건너편 에 팥을 넣고 설탕을 바른 조그마한 빵가게가 있었다. 양복점이 없어지자 그 ‘오미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왔는데, 지금은 이렇게 커진 것이다. 정해진 개수만 팔기 때문에 늦을라치 면 맛볼 수도 없다. 얼마 전에 내려가 먹어보니, 요즈음은 꿀단지라는 집이 제일 맛있다. 원래 통영에선 고구마를 많이 먹는다. 그래서 가을에 추수한 고구마를 썰어서 딱딱해질 때까지 말려 모아두었다가, 먹을 것 없는 겨울에 강낭콩, 팥, 좁쌀, 수수, 찹쌀 등을 넣어 서 끓인 빼때기죽을 많이 먹었다. 바로 그 빼때기죽을 팔던 부부가 꿀빵 안에 팥뿐만 아 니라 고구마를 넣어 팔기 시작한 곳이 꿀딴지다. 문화 마당에 있는 매장이 아니라 미수동 통영 운하 옆 공장에 가면 제작 과정을 보면서 10% 싼 가격에 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더 많은 여행객들이 통영을 찾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내 고향 통영 이 옛 모습을 점점 더 잃지 않을까 불쑥 걱정이 든다. 그래도 일, 집, 도시 등 나를 둘러싼 일상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여행을 떠올려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통영의 바다와 먹을거리 만한 것이 없지 싶다. -백승우(MBC 카메라 감독)

夏, 夏, 夏
유치하지만 영화 <하하하> 때문이 아니라고 말 못하겠다. 영화 속 통 영의 여름이 너무 좋아서, 2010년의 여름 끝자락을 붙잡고 시외버스를 탔다. 다행히 통영은 아직 뜨거웠다. 지도를 얻을 겸 관광안내소에 들 렀는데, 부산이나 제주도의 크고 세련된 안내소를 떠올렸다가는 그냥 지나치기 십상일 만큼 비좁고 허름하다. 게다가 시간을 잘못 맞춰 가 면 내 뒤에 뒤에 서 있던 여행자처럼 이런 질문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질문이 많아요? 나 아직 점심도 못 먹었는데.” 통영에 대한 객들의 관 심은 자꾸 높아지지만, 통영은 여전히 작고 소박한 마을이다. 지도 한 장이면 충분히 찾아 다닐 수 있다. 그러니 아주머니가 끼니를 챙길 수 있게, 섬에 들어가는 배편이나 전화번호, 미륵산 케이블카 운영 시간 정도만 체크해도 충분하다.

일단 시내의 문화 마당으로 갔다. 워낙 물을 좋아해 여행지에 가면 바 다나 강, 호수만 찾아 다녔지만, 그렇게 파랗고 예쁜 바다는 처음이었 다. 그렇다고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게 만드는 숭고하고 장엄한 모습은 아니었다. 근처 남망 산 조각공원이나 동피랑 마을로 조금만 오르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아늑 한 풍경에 가까웠다. 그런데 어째 어엿한 처녀의 눈에 바다보다 나폴리 모텔이 자꾸 들어온다. 영화 속 문소리가 길에서 뽑아온 풀을 김상경을 향해 내던지던 로비를 힐끔거리다가, 이번엔 용감하게 모텔 뒤편 공터로 까지 침입한다. “내가 업어주고 싶어서 그래요” 바람피운 남자친구와 헤 어지며 굳이 한 번 업어주겠다고 생떼를 쓰던 그 장면이 생각나 괜히 킥 킥댔다. 나폴리 모텔 뒤쪽 언덕배기로 올라가면 동피랑 마을이 나온다. 작은 마을의 벽이 온통 그림 천지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영화 속 문소 리의 집이 나온다. 김강우나 김상경처럼 찌질하게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다가 그 담을 넘어 들어가고 싶겠지만, 참아야 한 다. 누군가에겐 여행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일상의 터전이니까.

내려올 때쯤 되니 출출하기에, 그 유명한 가을 전어를 먹어야겠다고 의 지를 불태웠다. 늦여름이니까 가을 맛이 나겠지 우기면서. 펜션 아저씨 가 외지 사람들이야 중앙시장에 가지 진짜 통영 사람들은 서호시장에 간 다고 했지만. 그 아저씨의 장모님이 서호시장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미 늦은 저녁이라 딱 한 집에만 남은 전어를 회 쳐 가려고 줄을 서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와 손님이 앙칼진 사투리로 싸우기 시작한다. 싸움 구경이야 원래 재미있는 거라지만, 빨간 대야 안에서 팔 딱거리는 생선들보다 그 싸움이 훨씬 펄떡거렸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어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손님에게 팔기 전에 이미 대가리를 쳐 냈다는, 방금 그 싸움의 원인이 된 바로 그 전어였다.

둘째 날은 소매물도에 갔다. 하지만 매표소가 닫혀 있었다. 아침 일찍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에 올랐을 때 지금쯤은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 면서도 자꾸 조금만 더 올라가보자 더 올라가보자 그러다가 그렇게 됐 다. 선장 아저씨 앞에서 평생 없던 애교를 쥐어짜낸 덕분에 다행히 배 에 올랐다. 소매물도엔 자연이 허락해야만 갈 수 있다. 조금이라도 날 씨가 좋지 않거나 파도가 치면 배가 뜨지 않는다. 첫 통영 여행, 게다가 늦기까지 했는데 한 번에 소매물도에 입성했을 때 그래 거기까지는 하 늘이 도왔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소매물도를 그저 ‘섬’이라고 생각한 서울 촌놈에게 있었다. 소매물도는 섬이라기보다는 산에 가까웠으니 까. 가벼운 컨버스를 신고 산을 오르고 내려 다시 배를 타고 뭍으로 나 가기 위해 선착장에 당도했을 때, 이미 다리는 너덜거렸다. 그때 지친 표정으로 바위에 걸터앉은 여자 두 명이 다녀오는 데 오래 걸리느냐고 물었다. 컨버스도 아니고 하이힐을 신고 있던 그녀들에게 “아마, 못 가 실걸요”라고 대답했다.

마지막 날 터미널로 가기 전에 다시 문화 마당으로 가서 꿀빵을 샀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서는 그 달고 목매는 꿀빵을 먹을 때마다 통영의 새파랗던 여름을 되새김질했다. 영화 속에서 김상경의 꿈에 나타난 이 순신 장군이 그랬었지. “난 좋은 것만 본다. 항상 좋은 것만 보고, 아름 다운 것만 보지. 어둡고 슬픈 것을 조심해라. 그 속에 제일 나쁜 것이 있단다”라고. 아마 이순신 장군도 통영에서 여름을 지내셨을 게 분명 하다. -김슬기( 피처 에디터)

원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여유
원주에는 지난 5월에 다녀왔다. 예전부터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었다거나, 뭐 그런 식의 여행은 아니었다. 꼭 치러야 할 용무가 있던 동행의 뒤를 바람이나 쐴 겸 따랐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조용한 도시는 여기가 아니면 안 될 이유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 곳이다. 부산처럼 나름의 볼거리가 다양하지도 않고, 전주처럼 길가의 돌멩이까지 먹음직스러워 보일 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강원도로 향한 건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겠구나 생각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았다. 하지만 감탄사나 느낌표를 난사하며 호들갑을 떨고 싶지는 않다. 이번 나들이의 ‘좋음’은 훨씬 담담한 종류였다.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던 사람이 의외로 예쁘게 웃는 순간을 발견했을 때 정도의 즐거움.

그날의 원주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푸르게 이어지는 능선이다. 강원도의 산과 나무는 은근한 박력이 있다. 시내에서 빠져나와 국도를 달리는 동안 치솟은 가지들과 그 위의 불 같은 초록을 구경했다. 나무라고 다 같은 생김은 아니고, 녹색이라고 모두 한 종류의 푸르름은 아니어서 줄곧 산만 이어지는 데도 그다지 지루하진 않다. 문득 5월의 진짜 색을 확인한 기분이었다. 섬안교에 닿았을 때는 잠시 차에서 내려 몇 미터 아래의 얕은 물을 내려다봤다. 날이 좀 더 뜨거워지면 외지에서 꽤 찾아와 발을 담그고들 놀다 가는 모양이었다. 배불뚝이 아저씨들의 스피도와 마주칠까 두려워하지 않고도 더위를 식힐 수 있는 호젓한 대안이다.

원주 맛기행은 어쩐지 런던 미식 여행 정도의 뉘앙스로 들린다. 그러니까 확실히, 최선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제이미 올리버나 고든 램지의 추수감사절 파티에 초대받은 게 아니라면, 혹은 피시앤칩스 중독자가 아니라면 영국에서 입이 즐거울 일은 많지 않다. 강원도에 가면 뭘 먹어야 할까? 감자전과 감자전, 그리고 감자전? 감자가 별로인 사람은 황둔에 가볼 만하다. 여기서 찐빵마을이라는 귀여운 이정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과연 찻길 양쪽으로 찐빵집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 정작 내가 들른 곳은 마을 입구에 자리한 ‘내 고향 베트남 쌀국수’였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젊은 사장이 한국인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식당이다. 시골 점방에서 정통 쌀국수를 먹는 경험이 어리둥절하면서도 재미있다. 한쪽에서는 통조림, 육포 같은 베트남 식료품도 판매한다. 식사 후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반조리 쌀국수를 몇 개 사 들고 나왔다. 찐빵을 맛본 건 안흥에서였다. ‘심순녀 안흥찐빵’은 무려 4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지역의 명소다. 박스째로 사가는 사람들 뒤에 줄을 섰다가 서너 개만 값을 치르고 나왔다. 야외 탁자에서 자판기 커피와 함께 먹고 있자니 사는 게 아주 약간은 더 즐거워졌다.

꼭 가봐야 할 곳이라면 차라리 인근 치악산의 법흥사나 구룡사일 거다. 특히 구룡사는 길이 잘 닦여 있어 산책하는 기분으로 다녀오기 좋다(고 한다). 거기까지 욕심을 내지 않은 건 찐빵을 먹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흘려보내서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그러려고 떠나온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원주는 부지런하게 굴지 못해도 별로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 곳 같았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더 여유로울 수 있는 풍경이랄까. 계획도 없이 움직이며 닥치는 것들에만 솔직하게 기뻐하는 여행도 가끔은 괜찮다. 게으른 여정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면, 띵똥. 그런데 정말로 흡족한 시간이었느냐고 재차 묻는다면 그것도 띵똥. – 정준화( 피처 에디터)

안동, 예천

안동 시내에서 병산서원으로 향하는 길은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다. 산 속을 수고스럽게 파고들다 보면 이내 대단히 아름다운 풍광과 맞닥뜨리게 된다. 길 너머에 이런 곳이 있었을 줄이야, 감탄부터 하게 만드는 장관이다. 서원은 산 아래의, 백사장이 펼쳐진 강가에 자리하고 있다. 마치 산과 강에 조심스레 안겨 있는 듯한 모습이랄까? 그 풍경 안에 하나의 점으로 서면, 나 역시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 된다. 반가운 인사처럼 평온하고 편안하며 따뜻한 기운이 막 도착한 이방인에게 먼저 건네지는 것이다.

빼어난 자연 가운데 조화롭게 섞여 있는 병산서원의 보존 상태는 무척 훌륭하다. 정면에서 방문객을 맞는 건 복례문인데, ‘자기를 낮추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이다’라는 의미를 담은 작명이다. 복례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서원 건축의 백미인 만대루에 닿는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이다. 통나무를 파서 만든 나무 계단에는 소박한 멋이 있다. 매끈하게 닳아 있는 표면이 그간 거쳐간 발길과 비바람,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풍수지리에 입각해 세워진 건물은 사람과 자연 사이를 고맙게 이어주는 다리다. 만대루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면 들보들이, 그리고 그 너머의 나무들이 물결처럼 아득하게 이어진다. 여행자의 설레는 마음도 그 위에서 함께 출렁인다. 만대루를 거쳐 좀 더 위쪽으로 오르면 ‘가르침을 바로 세우는’ 곳이라는 입교당으로 향하게 된다. 그 아래로 펼쳐지는 서원과 낙동강의 풍경은 병풍에서 바로 떼어온 것만 같다. 여기서 특히 재미있는 장소는 달팽이 뒷간이다. 진흙 돌담으로 주위를 돌돌 말아놓은 구조라 출입문 없이도 내부가 효과적으로 은폐된다. 넉넉한 해학과 지혜다.

이왕 안동까지 간 참이면 예천의 선몽대도 들러볼 만하다. 병산서원으로부터 채 30분 거리가 못 된다. 정자와 비각 등이 산과 강으로 이루어진 풍경 안에 조화롭게 자리를 잡았다. 퇴계 선생의 친필이 담긴 현판이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 경승지를 지키고 있다.

여행에 먹는 즐거움이 빠질 수 없다. 안동에는 찜닭, 간고등어, 헛제삿밥, 한우, 안동소주 등등 은근히 챙길 먹거리가 많다. 지난 여정에는 간고등어와 헛제삿밥을 택했다. 예전에는 큰일이라도 치러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까닭에 괜한 제사를 올리고 포식을 했다 한다. 거기서 유래한, 나물과 간장을 넣어 만드는 비빔밥이다. 45도가 넘는 안동소주를 곁들이면 향긋함에 기분이 얼큰해진다. 새로운 곳에서 입에 선 음식을 맛보는 건 큰 즐거움이다. 지역의 역사와 전통이 그 한 그릇에 정성스레 담겨 있다.

휴식을 취하며 마음을 정리하기에 병산서원과 선몽대는 썩 적절한 장소다. 바쁜 일상의 독소는 빠져나가고 대신 좋은 기운과 여유가 몸 안에 채워진다. 치열한 관계들로부터 멀어져 새삼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는 경험. 처음 만나본 장소가, 그리고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 윤명섭(사진가)

부산

고기, 어디까지 먹어봤니?
KTX에서 내려 택시를 타야 비로소 부산에 온 것을 실감한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듯 지면에서 붕 뜬 것 같은 속도감에 나도 모르게 옆 문 손잡이를 꼭 잡는다. ”아저씨 전 직 카레이서신가요?” 몸은 긴장했지만 짧은 여행도 여행이라 부산 카레이서, 아니 택 시 기사님의 가벼운 농담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답하게 된다. 서울서 온 롯데 팬이라니까 아저씨는 반색하며 사직야구장의 풍류를 말한다. “우리는 사직에 갈 때면 회를 사요. 저기 큰 다라이에 회랑 야채랑 초장을 넣고 썩썩 무치는 거지. 그래서 주위에도 나눠 주고, 안 먹겠다는 보 안 요원도 먹인다아입니까.” 야구장에서 회? 치킨과 맥주를 진리로 아는 서울 사람들에는 낯선 풍경일 테다. 사실 사직에 흔한 건 회 보다 족발이다. 사직구장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본부석 위쪽 자유석에서 얼핏 둘러봐도 치킨보다 족발이 월등하게 많다. 투수의 공 하나 타자의 스윙 한 번마다 일희일비하는 사직아재들이 그 바쁜 와중에도 상추에 족발 한 점을 올리고 쌈장에 마늘까지 얻어 격식을 차려 먹는 걸 보면… 자연히 족발 이 당긴다. 남포동에 가면 얇게 저민 족발에 오이와 해파리를 올려 간장과 겨자, 마늘, 식초 소스를 뿌려 먹는 상큼한 냉채족발이 있다. 한약재와 간 장, 된장, 커피를 넣어 진한 갈색이 도는 서울 족발과 달리 남포동 족발은 껍질 색이 연하고 살짝 단맛이 돈다. 돼지냄새를 덮는 데 주력하는 서울식 돼 지고기 요리와 달리 부산의 돼지고기 요리는 뭐랄까 옛날 돼지고기 맛이다. 밀면에 올린 돼지고기 편육 한 점을 씹어도, 돼지국밥을 한 술 떠도 그렇 다. 달고 고소하며 잊고 있던 돼지고기 향이 감돈다. 조리 과정이 심플해서일까? 부산대 앞의 돼지국밥은 매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대연동의 쌍둥이 돼지국밥은 딱 끈적이기 전까지만 농후하다. 부추무침과 새우젓을 풀면 다대기 없이도 완벽하다. 남포동 족발골목을 나와 큰길을 건너면 양 곱창 골목이 있다. 마늘 양념에 재운 양과 대창을 직화로 구워내는 통에 지옥 같은 연기와 시뻘건 불길이 일지만, 테이블마다 불빛에 달아오른 손님들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맞아, 여긴 야구장에서 회와 족발을 펼쳐놓고 쌈 싸먹는 부산이지. 이깟 연기에 맛난 음식을 포기할까! – 유선주(칼럼니스트)

부산사람처럼 걷기
부산에 오는 친구들은 대부분 이런 코스의 여행 일정을 짠다. 자갈치와 남포동, 국 제시장 일대를 하루 돌아다니고 해운대 바닷가에서 또 하루를 보낸다. 광안리 회 센터에서 생선회를 먹고 유명하다는 밀면이나 돼지국밥도 먹는다. 하지만 부산에도 제주도의 올레길 못지않은 산책길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오래 걷는 것도 싫어하고 등산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바다 산책길은 근처에 갈 기회가 있다 면 꼭 걷는 편이다. 부산의 바닷길은 이곳저곳 바다 근처에 분포되어 있어 찾아가기 쉽다. 부산에 한 번 이상 내려왔다면 한 번에 하나씩 정도는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세 길 모두 바다와 산, 그리고 도시 풍경을 접할 수 있으니까.

첫 번째 산책 코스는 가장 많이 알려진 달맞이고개의 문탠로드. 낮에 해운대 해변 에서 선탠을 했다면 밤에는 달빛을 맞아 문텐을 하라는 이야기인데 과연 그게 가능 할지는 모르겠다. 아침 일찍 문탠로드 산책을 해보길 권한다. 힘이 남아도는 사람 은 달맞이고개 입구에서 산책길을 잡고, 나 같은 사람은 달맞이 꼭대기까지 마을 버스나 택시로 올라가 내려오는 방식을 취하면 좋다. 기껏해야 편도 1킬로미터 정 도지만(송정까지 연결된 총 산책길은 4킬로미터가 넘는다) 해송 향기와 바다 풍경 이 일품이다. 내려오다 해운대 미포 입구의 생선백반이나 복지리를 아침 식사로 하는 것도 기본.

두 번째 산책 코스는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이기대 산책로다. 광안리나 경성대학 교 근처에 왔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문탠로드가 오솔길을 걷는 느낌이라면 이기대 길은 기암괴석들 위로 난 여러 개의 다리를 건너는 재미가 있다. 걷다 보면 광안대 교와 해운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도 있다. 규모는 문탠로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로 길기 때문에 (아마 다 돌아보려면 대여섯 시간은 걸릴 듯) 입구 안내판을 잘 보 고 시간 분배를 해야 한다. 예전에 이곳은 군사지역으로 통행이 불가능했고, 이어 지는 오륙도 길은 나병환자촌이어서 가길 꺼려했던 곳이다. 그곳이 이처럼 멋진 산책길이 되어 어색하다. 오륙도를 보고 싶다면 남쪽으로 주욱 걸어가서 아예 선 착장에서 배를 타고 갔다 와도 좋다. 이곳을 산책했다면 경성대 방향으로 나와 부 산에서가 가장 핫한 클럽이나 바, 커피숍에서 잠깐 쉬는 것도 좋다.

남포동이나 자갈치를 한나절 구경하고 시간이 남는다면 해운대 쪽으로 가지 말고( 시간이 꽤 걸리므로) 가까운 송도 암남공원을 가보길 권한다. 송도 바닷가는 예전 에 해운대와 더불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 해수욕장이지만 쇠퇴기를 거쳐 남항대교 개통과 함께 활기를 띠고 있다. 송도에서 조금 안쪽으로 가면 암남공원이 나오는 데 해안 절벽을 따라 약 1시간 정도의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바다와 그 위에 둥둥 떠 있는 수출입 화물선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특이하다.

이외에도, 해운대 웨스틴 조선 비치 호텔 뒤편의 동백섬 산책길(너무 유명하다)도 있고, 태종대 산책길(영도 안으로 들어가기 힘들다)도 있고, 영도의 절영산책로(아 주 길고 터프하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길은 위의 세 가지다. 산책하러 부산에 가지는 않겠지만 무슨 목적에 갔더라도 이런 샛길로 빠져 몸을 다지는 것도 좋겠다. – 서진(소설가)

해운대가 지겨운 히치하이커를 위한 부산 바다 가이드
부산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진부하게도- 해운대였다. 그 시절 해운 대는 소박한 해변 휴양지에 불과했다. 핫한 클럽도 힙한 카페도 없었다. 친구들과 와인병을 모래에 꽂아놓고 앉아서 수평선을 바라봤다. 친구는 말했다. “바다 없는 데서 우째 살라고.” 솔직히 뭐 그렇게 바다가 중요하냐 싶긴 했다. 생각해보면 평생 바닷가 언덕 위의 집에 살았던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부산 사람들은 내륙 지역에 산다. 그러니 바다가 없는 서울에서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판이었 다. 서울로 올라온 순간부터 바다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부산 사람들은 핏속에 짭쪼름한 바닷물이라도 흐르는 모양이다. 그래서 부산에 갈 때마다 해운대 를 다시 찾냐고? 그렇진 않다. 해운대는 이미 거대한 쇼핑몰과 클럽과 카페와 주상 복합 빌딩으로 가득한 일급 리조트가 돼버렸다.

가장 훌륭한 대안은 송도다. 남포동에서 택시로 겨우 5~10분 정도 걸리는 소담한 송도 해수욕장은 몇 년 전 부산시가 대대적으로 정비 사업을 벌이면서 ‘리틀 해운 대’라 불러도 좋을 만큼 근사한 휴양지로 거듭났다. 이곳의 장점은 해수욕장에 몸 을 담그거나 일광욕을 하면서 멀리 떨어진 수백 척의 무역선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근사한 해변의 낭만과 거대한 항구도시의 위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나 할까(유독 부산 주재 러시아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9등신 미남미녀들을 관찰 하는 재미도 괜찮다는 건 비밀이다). 조금 개발이 덜된 해변을 원한다면 부산의 가 장 서쪽, 낙동강 하구와 가까운 다대포가 있다. 부산에서 가장 거대한 해변인 다대 포는 거의 끝이 없이 낙동강 하구를 향해 뻗어 있다. 관광객은 다대포를 찾지 않는 다. 부산 사람들도 다대포를 찾지 않는다. 수영을 하는 건 무리라는 소리다. 하지 만 휴양지가 아닌 부산의 와일드한 해변을 걷고 싶다면 다대포만 한 장소는 없다.

좀 더 와일드한 바다의 향취를 느끼고 싶다면 영도섬의 절영해안산책로를 권한다. 이곳은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거대한 무역선들의 위용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부산은 항구다. 돌아오는 항구인 동시에 떠나는 항구다. 절영해안산책로에서 보이 는 풍광에서는 항구도시 특유의 원초적인 애상(哀傷)이 진득하게 묻어난다. 만약 당신이 해변 산책로가 아닌 진정한 항도의 삶과 풍광을 보고 싶다면? 부산 중심가 서면에서 대청공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잡아타시길. 언덕동네를 거침없이 오르던 버스가 정상에 도착할 즈음 하차하시라. 부산항이 내려보이는 산복도로 길을 걸을 수 있다. 부산에 살던 시절엔 기분이 울적해질 때마다 이 산복도로를 걸으며 중2병 을 달래곤 했다. 산복도로를 따라 끝없이 두어 시간 걷다 보면 종착점은 보수동 책 방골목이다. 거기서 부산을 무대로 한 황순원의 <곡예사>를 구해 자갈치 시장 뒤 편의 산책로에 앉아서 읽는다면 당신은 진짜 항구의 맛을 음미할 수 있을 게다. – 김도훈(<씨네21> 기자)

대이작도

가까운 섬, 아득한 휴식
단언하건대 대이작도는 서울에서 2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다. <론리 플래닛>에 ‘아무것도 영원한 것이 없는’ 도시로 소개된 서울의 문화적 자장 안에 사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적어도 오늘까지는 그렇다.
이 섬에 있는 세 개의 해수욕장은 모두 희고 고운 모래와 얕고 푸른 바다를 가졌지만, 작은 풀안 해수욕장의 모습은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찍어온 사진을 곰곰 들여다보다가 어는 순간 그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그건 이 나라 어느 해변에서고 피해 가기 힘든 큼직한 횟집 간판과 바싹 다가선 숙박업소 따위를 모두 물리친 고즈넉한 풍광 덕분인 듯싶었다. 해변의 자그마한 소나무 숲은 도시락을 까먹으며 파도 소리를 감상하기에 알맞다.

작은 풀안 해수욕장의 진짜 미덕은 하루에 두 번 썰물 때 나타났다가 세 시간 만에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모래섬 풀등이다. 해변에서 풀등이 어슴푸레 나타났다가 또렷해지고 다시 서서히 사라지는 걸 지켜보는 일도 흥미롭지만, 이 모래섬의 진면목은 그 위에 올랐을 때 알게 된다. 풀등이 드러날 무렵 어디선가 혜성같이 나타나는 모터보트를 타고 그곳에 내리면, 방금 썰물을 따라 생긴 기묘한 물결무늬와 그 사이로 드러난 작은 해양 생물들과 그 위에 내려앉은 갈매기들이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나 보았을 법한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면, 모래와 바다와 하늘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풍경이 낯설어 잠시 시공간 감각이 혼란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갈고리 같은 걸 가져가 연신 모래를 파고 조개를 캐기도 하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신기루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3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린다.

몸이 좀 고단하겠지만 부아산에 오르는 것 또한 빼놓아서는 안 될 코스다. 마을에서 천천히 걸어도 20여 분이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과 주변 섬들의 야경은 샌프란시스코 트윈픽스에서 내려다본 것과 함께 내 인생의 양대 야경이었던 것 같다. 나는 미처 보지 못했지만, 이 산에서 보는 안개 속 일출 풍경 또한 몹시 아름답다고 한다.

재작년 초가을 대이작도에 갔을 때, 작은 풀안 해수욕장 가장자리 바위들 위로 무언가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작년에 갔을 땐 그곳에 다리와 정자가 놓여 있었다. 거기까진 과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또 무엇이 더 들어설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것도 영원한 게 없는 땅이고 보면, 하루라도 빨리 가서 최대한 보고 음미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수밖엔 별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다. – 정우열(카투니스트)

논산

통通한다
사계절 내내 문을 꽉꽉 닫고 사는 도심 고층의 삶은 마음마저 닫아버린다. 내남없이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마음을 통하던 선조들의 삶은 옛이야기로만 남은 듯하다. 흙의 기운을 받으며 자근자근 마당을 걷다가 아랫목에 몸 누이는 높낮이가 구분되지 않는 삶, 그래서 사람도 온순해지는 삶. 잠시나마 고층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고택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곳에 그토록 자연스러운 삶이 있다.

논산의 윤증고택과 종학원과 돈암서원은 홀로 거닐고 머물고 사색하고 쉬고 잠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현존하는 고택들은 크기와 위엄을 자랑하는 것들이 많은 데 비해 윤증고택은 그 소박함과 여여함이 마음 쉬어가기에 비길 곳이 없으며, 종학원과 돈암서원의 고요함은 스스럼없이 마음에 담긴다.

조선 후기 소론 계열의 대학자였던 명제 윤증. 출세를 위한 걸음은 아끼되 쓴소리는 아끼지 않았던 그처럼 윤증고택은 올곧고 간결한 집이다. 그리고 현재는 윤증의 후손들이 살고 있어 그저 구경거리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집이다. 그러니 하룻밤 묵어가자며 가만히 몸을 놓으면 이 집의 꿈틀대는 대들보처럼 온몸이 자연스레 흐르는 것을 기분 좋게 느끼게 된다.

윤증고택은 새벽 4시 반, 아흔 살이 넘은 종부가 대문을 열고 비질을 하며 하루가 시작된다. 마루도 시렁 위의 광주리도 뒤뜰의 장독대도 이미 반지레하다. 그러니 사랑채에 묵는 객도 이 집의 한 식구가 되어 흰 호청이 시침질된 솜이불을 개어 올리고 돋을 볕이 비쳐드는 창호문을 열어 처마에 건다. 이 집의 진면목은 여기에 있다. 사랑채 누마루의 모든 문을 열고 들어 올리면 사방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볕이 통하고 바람이 통하고 만물의 들숨과 날숨이 통한다. 게다가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림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윤증고택은 머물며 가만가만 더듬어보면 선조들의 배려이며 지혜이며 과학이며 미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곳에서든 사람들의 오고감을 알 수 있게 한 시선에 대한 배려, 바람의 흐름을 살펴 곳간채의 찬광을 앉힌 과학, 어느 곳에 시선을 두어도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지는 미학. 그러니 이 집에선 사람과 사람이 통하여 고요한 정담이 오간다.

걸음을 옮겨 종학원에 닿는다. 종학원은 파평 윤씨의 문중서당으로 종학당, 백록당, 보인당, 정수루가 널찍하게 들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정수루는 누각의 멋을 제대로 보여주니, 종학원의 고요와 눈앞에 펼쳐지는 시원한 풍경이 오래도록 발길을 멈추게 한다.

예학을 대성한 김장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돈암서원은 서원 건축 양식을 대표한다.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으로 이어지는 공간 구성의 미학은 이 서원의 백미라고 할 수 있으니 그 중첩되는 공간으로 옛 선조들의 걸음을 따르다 보면 알게 된다.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통해야 한다는 것을. 논산의 옛 정취 속에서 만나는 선조들은 사는 내내 마음의 큰 스승이다. -정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