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는 반역자라는 이탈리아 속담이 있다. 그러나 어떤 번역은 원작의 뒤통수를 치지 않은 채로 언어의 국경을 넘어 문학의 영역을 확장한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영어로 옮긴 <Please Look After Mom>의 성취가 그렇다. 그 공의 많은 부분은 번역자 김지영에게 있다.

영어권에서도 성공을 거둘 만한 소설인가, 하고 물었을 때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둘러싸고 두 가지 답변이 가능하다. 우선 한글 언어권 밖으로 나가서는 생명력이 약해질 듯한 부분들이 뚜렷하다. 작가는 이 소설 속 엄마를 한국의 시골 논밭과 전통가옥 부엌 같은 공간에서 살아 움직이게 한다. 한국 농촌에 대한 묘사, 살림살이와 농사 풍속의 특정한 장면의 맥락을 이해할 때, 비로소 이 엄마가 어떤 인물인지 설명된다. 이를테면 엄동설한에 제사를 준비하면서, 얼어붙은 손을 불어가며 수돗가에서 홍어 껍질을 벗기던 엄마는 성질을 버럭 낸다. 그리고 젯상에는 홍어가 껍질째로 올라온다. 딸에게 풀 먹인 이불 호청을 붙들게 해서 팡팡 잡아 펴다가, 계집애라고 이런 일을 시켜 미안하다고 한다. 아마 이국의 독자들에게 이런 장면은, 아무리 수려한 영어로 옮겨진다 하더라도 온전히 이해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현대의 도시에서만 살아온 한국어권 독자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이 이야기가 다른 언어권 독자들에게도 힘을 지닐 수 있는 건 하늘 아래 엄마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서울의 학교로 진학하는 딸을 데리고 엄마는 옷을 사주러 간다. 엄마가 권하는 프릴 달린 원피스 대신에 다른 걸 고른 딸은 수십 년이 지난 후 엄마의 부재 앞에서 그때의 일을 후회한다. ‘그 옷을 입어라도 볼걸’ 하는 문장은 영문판에서 ‘I should have tried on that dress’라고 옮겨졌다. 중학교영어 시간에 배운 바대로 ‘should have 과거분사’, 과거완료 시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사실에 대한 회한을 표현한다. 아마존 같은 사이트의 독자평 란에는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라는 리뷰들이 달렸다. 결국 가족 안에서 불평등하게 오가는 사랑과 뒤늦게 도착한 깨달음의 문제는 지구상 어디에서나 보편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Please Look After Mom>은 영어권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뉴욕 타임스>의 하드커버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4위에까지 올랐다. 애초에 영어로 씌어진 소설인 듯 유려한 번역은 겨우 서른 살의 번역가가 해냈다. 번역가 김지영은 보스턴에서 태어나 한국과 미국, 캐나다를 오가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로펌 출신으로 지금은 미술관에서 일하며, 업무 외의 시간에 번역을 한다. 때로는 문장 구조를 과감하게 흔들고 부연설명을 덧붙이는 그의 번역은 원래 영어로 쓰여진 소설처럼 명료하다. 어머니도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같은 일을 해왔다고 한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소설 속 엄마보다는 냉철하게 작업을 평가하고 독려하는 동료에 가깝다. LA에 거주하고 있는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나눴다.

 

INTERVIEW WITH KIM JI YOUNG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는 이런 말을 했다. “궁극적으로는 소설가보다 번역가로 살고 싶다. 번역가는 훨씬 더 고요하게 살 수 있으니까. 100권을 번역하더라도 번역가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 영문판의 성공 이후 관심을 받는 입장이 되었는데 이런 경험이 어떤가?
번역자인 나에게까지 이런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워낙 이런 관심을 꺼리는 편인데 번역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문학 전공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했는데 번역가로서의 커리어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2005년 대산문화재단의 번역지원을 받아 이동하의 <장난감 도시>를 옮긴 것이 장편으로는 첫 번역이다.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내 두 번째 번역서인데 그것은 출판사에서 직접 섭외를 받았다. 불어판을 보고 책을 출판하기로 결심한 출판사가, 내가 뉴욕 출판계에서 일할 때의 지인을 통해 연락을 해왔다. 몇 페이지 번역을 시킨 후 편집자가 불어판과 대조하며 단어의 선택, 다른 점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고, 나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 다음부터의 작품은 한국의 에이전시를 통해 번역원 지원을 받아 샘플 번역을 했고, 그 작품이 팔리면 자연스럽게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출판사, 로스쿨, 로펌, 또 현재 직장에 다니면서 번역을 했는데,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시면 알겠지만 (www. chiyoungkim.com/bio) 나는 번역 일은 다른 일과 철저히 분리시켜 진행하고 있다. 부업으로 번역을 한다기보다는 내 본업과 평행선을 그리는 직업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을 전업으로서가 아니라 업무 외 시간에 하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 어땠나?
번역은 항상 다른 일을 하면서 해왔기 때문에 있는 시간을 활용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번역이라는 작업은 원고를 끝내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새로운 눈으로 볼 수가 있기 때문에 바쁜 스케줄 하에서도 가능하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한 직업이 모두 언어와 관련된 일이지만 문학 번역과는 또 다른 분야라, 번역을 할 때는 힘든 것보다는 재미를 느꼈다.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도 있다. 잘 못한 번역 글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번역이 잘못된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책을 읽다가 집어치우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독자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서 살 때 영화를 보러 가면 한글 자막이 나오는데 번역이 엉망이면 내가 웃을 때 대다수 관객은 조용히 있고 우습지 않은 대사인데 관객은 까르르 하며 웃곤 했다. 이럴 때 난처하다.

이번 <엄마를 부탁해>의 성공을 두고 한국 안에서는 번역문학 최초의 성과로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미국 독자들에게도 공감할 만한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라는 게 가장 큰 요인일 것 같은데, 이런 반응의 힘이 어디에서 왔다고 보나?
물론 엄마라는 보편적 주제, 엄마와의 관계에 있어서 후회되는 부분들, 생경한 한국의 농촌 풍경등이 눈길을 끌었을 것 같다. 미국 내 한국계 독자들은 부모의 나라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한인 2세, 3세들이 많이 사서 읽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문학에 있어서 번역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독서 경험이 있었나?
번역이 잘못된 책을 읽다 보면 맥이 끊겨 읽다 중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나는 번역을 할 때 문장 대 문장의 번역이 아닌 흐름을 중요시한다.

“원작자와의 완벽한 소통이 있어야 온전한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문학적인 함의를 읽어낸다는 의미에서의 소통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말 그대로 번역 과정에서 오가는 의견 교환을 얘기하는 건가? 신경숙 작가와는 어떤 식으로 소통했는지, 그리고 작가가 이렇게 번역이 되었으면 한다고 특별히 요구한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 신경숙 작가와 크노프 에디터 사이의 다리 역할을 했다. 원고를 제출한 후 에디터가 풀어서 설명해달라는 대목 또는 약간의 편집을 원하는 경우 작가에게 의견을 전달 했다. 그리고 작가가 설명을 덧붙이거나 에디터 질문에 답변하면 그것을 에디터에게 전달했다. 작가와 에디터 간에 긴밀히 연락하며 순차적으로 의견 조율을 했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이 소설의 1장은 ‘너’로 지칭되는 딸의 관점에서, 3장은 ‘당신’으로 불리는 남편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한국어로는 계속 다른 뉘앙스를 품지만 영어에서는 같은 ‘you’로 지칭된다. 이런 식의 언어 차이에 대한 고민과 반영이 있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번역본은 원본과 똑같을 수 없다. 사투리는 아쉽지만 번역문학에서는 희생되는 요소다. 언어와 문화 차이 때문에 달라지는 부분이 많지만 원본의 느낌은 살린 것 같다.

문장 구조도 많이 바꾼 번역이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한국 문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특수성 때문에 영어로 옮기기 힘든 대목이 있었을 것 같다.
외국인에게는 생소한 대목이 있긴 했지만 그런 대목은 풀어서 설명을 덧붙이는 식으로 옮겼다. 예를 들어
엄마가 땀에 전 수건을 쓰고 다닌다는 대목에는 농사짓는 여자들이 일할 때 쓰는 수건이라고 풀어 썼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어디인가? 번역을 하면서 눈물이 나서 작업 속도가 더뎌진 경우는 없었나?
순수한 독자로서가 아니라 번역자로서 냉정하게 접근한다. 번역 청탁이 들어오면 애정을 가지고 할 만한 작품인가, 팔릴 수 있겠는가 이러한 것을 보고 결정하고 번역을 하면서도 문장을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 또는 어떤 단어를 쓰는지, 원본대로 흐르는지 그런 면에 중점을 둔다. 그리고 원고를 수십 번 보고 또 보고 해서 보통 독자와는 다른 독서를 한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독자들이 울었다고 들었지만 나는 번역작업 중에는 번역가로서 책임과 역할에 집중하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 없이 번역할 수 있는 것 같다.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지 않을까? 전문 번역가로서 세부적인 문제들에 유념한 이유였던 것 같다.

신경숙 작가의 문체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나?
감동적이고 사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리뷰는 무엇이었나?
<뉴욕 타임스>에서 번역자 이름까지 거론하며 호평해주고, 내 이름을 홈페이지와 함께 링크해준 것. 대단한 배려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미국에 소개하고 싶은 한국 작가나 글이 있나?
다른 커리어가 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찾아 나선다기보다는 번역 의뢰가 들어오면 작품을 검토해보고 결정한다. 몇 달 동안 씨름하면서 매 시간 즐거울 수 있는 작품이라면 언제든지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가는 누구인가?
박완서, 박경리의 작품을 자라면서 감명 깊게 읽었다. 외국 작가로서는 존 스타인벡, 퍼 페터슨 등을 좋아한다.

당신의 어머니도 번역가이다. 신경숙 작가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번역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셨다고 알고 있다. 소설 자체가 엄마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번 작업을 하시면서 어머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나?
번역을 할 때 나와 어머니 관계는 동료이며, 무서운 선생님이며, 동시에 협력자이다. 보다 정확하고 매끄러운 번역에 집중하다 보니 특별히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참고로 내 어머니는 책의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가족을 돌보면서도 본인의 일을 하셨기 때문에 희생을 하며 자식을 돌보는 어머니의 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앞으로 한국 소설들이 영어권, 해외 문화권에 많이 소개되고 반향을 얻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쓴다면 독자들이 자연히 관심을 가질 것이다. 어떤 특정한 독자를 향한다기 이전에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되게 쓴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