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처럼 짧은 머리, 공허하고 불안해 보이는 눈빛으로 기억되는 작가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 끊임없이 떠돌았던 그녀의 삶이 진짜로 존재했던 장소는 어디였을까. 루이 비통의 여행 연작 <함께 떠나는 여행>의 29번째 작품 <현실의 탐구>에, 그 용의선상에 오를 만한 여행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그리고 사진 작가였던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고 또한 그곳에서 죽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평생의 친구인 에리카 만, 클라우스 만 남매를 만나 격정적인 20대 초반을 통과한 곳은 베를린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를 죽을 때까지 괴롭힌 모르핀을 처음 접했다.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클로드 클라릭과의 결혼은 더 멀리 테헤란에서 이루어졌다.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상관없이 선택한 결혼 그리고 약물 중독은 물론 터키 외교관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스캔들까지, 그녀의 삶은 산산했다. 그러니 안네마리의 삶이 오직 스위스란 땅에만 존재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루이 비통과 라 깽젠 리떼레흐 출판사는 지난 2004년부터 미셀 투르니에, 르 코르뷔지에 등 우리 시대의 문화적 인물들의 목소리로 문학적인 여행을 담아내는 여행 연작 <함께 떠나는 여행> 컬렉션을 펼쳐왔다. 그리고 29번째 작품의 주인공으로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를 선택했다. 그녀가 직접 쓴 글과 찍은 사진을 편집하고 번역하여 담은 책 <현실의 탐구>를 통해 목격할 수 있는 건, 잠시 머무를 뿐인 여행지가 바꾸어놓은 한 사람의 삶이다. 1930년대 중반 미국을 여행하며 접한 대공황의 실체는, 안네마리로 하여금 저널리스트이자 사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했다. 비슷한 시기 동유럽을 밟으며 목격한 유럽의 파시즘은, 그녀의 삶의 일부였던 반파시즘 사상을 심어놓은 계기였다.

이미 약물로부터 헤어나올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른 1930년대 후반에, 엘라 마일라르트와 함께 자동차 한 대를 끌고 취리히부터 아프가니스탄의 그 건조한 사막까지 다다른 육로 여행기에선,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음에도 나약하기만 했던 안네마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이 당시의 기록을 토대로 영화 〈카피리스탄으로 가는 여행〉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길었던 여정을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 자신은 기억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자전거 사고로 며칠간의 혼수 상태를 겪은 이후 기억을 잃었고, 그로부터 두 달 후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베를린부터 아프가니스탄까지, 그녀의 발길이 닿은 그 여정을 읽고, 느끼고, 기억하는 건 온전히 독자의 몫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