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츠가 휩쓸고 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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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팬츠가 소화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와이드 팬츠를 마주한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니!’

그러고 보니 와이드 팬츠는 스키니나 배기팬츠처럼 세상을 평정한 시절이 한 번도 없었다. ‘얼마나 까다로운 아이템이기에?’ 하는 의문이 들어 모델처럼 늘씬하고 긴 다리의 소유자이지만 와이드 팬츠를 입지 않는 지인에게 물었다. “와이드 팬츠는 대개 하이 웨이스트가 많은데 배가 볼록하거나 뱃살이 있으면 그것이 너무 도드라져 되려 다리까지 짧아보여.”라고 말한다. 167cm의 보기 좋은 체형을 지닌 친구는 “골반이 너무 작거나, 커도 핏이 살지 않아. 엉덩이가 딱 맞지 않으면 푸대 자루를 걸친 것처럼 엉성해 보이거든. 체형에 딱 맞는 팬츠를 찾아야 하고 그러려면 정말 많이 입어봐야 한다구”라며 조목조목 설명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멀리하기엔 이번 시즌 와이드 팬츠는 너무 아름답다. 그리고 해결책 역시 이미 나와 있다. 발품을 팔아 많이 입어보고 자신의 체형과 잘 맞는 팬츠를 찾는 것.

새로운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인 셀린의 룩을 보자. 한발 앞서가는 피비 파일로는 프린트에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페르시아 카펫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프린트가 유연한 실크 소재와 만나 색다른 느낌이 난다. 프린트 자체가 강렬하므로 어떤 액세서리도 필요없으니 간편하기까지 하다. 이브 생 로랑의 르스모킹에서 시작된 것으로 70년대 트렌드와 매니시한 모드를 아우르는 중요한 키워드인 테일러드 룩에서도 매력을 찾을 수 있다. 명심할 것은 모든 테일러드 수트가 그러하듯 피팅감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 남성복 디자이너로 시작한 마시밀리아노 지오르네티가 디자인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수트 룩이 멋지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재단의 힘이다. 또한 팬츠 길이가 슈즈 끝에 닿을 듯 말 듯한 길이여야 한다. 이는 매치할 슈즈를 미리 결정하고 굽의 길이를 계산하여 칼같이 맞춰야 한다는 소리다. 한편, 록적인 무드에서도 와이드 팬츠는 매력적으로 어울린다. 캐주얼한 룩을 선호하는 이들이 손쉽게 시도할 수 있는 스타일링 법이다. 스터드나 버클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가죽 재킷과 매치할 때는 고밀도의 빳빳하고 견고한 소재를 고르고 얇은 굽보다는 조형미가 있는 플랫폼 힐이 잘 어울린다. 볼록 나온 뱃살은 트렌치처럼 긴 코트로 가려주고 벨트로 실루엣을 잡아준다. 엉덩이가 볼품없다면 엉덩이 중간에서 떨어지는 재킷으로 시선을 분산시키고 한 가지 소재와 컬러로 맞춰 입으면 근사하다. 내가 입고 있는 옷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으니까. 하에 웨이스트 팬츠라면 데님 소재의 셔츠를 안으로 넣어 입고 길게 내려오는 튜닉 스타일의 톱과 매치하여 빈티지한 느낌의 70년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감각적이다.

이처럼 와이드 팬츠는 만만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풍기는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정중한 수트건 록적인 바이커 룩이건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인 제인 버킨이나 프랑수아즈 아르디, 매니시한 매력의 마를렌 디트리히처럼 꾸미지 않아도 태도에서 멋이 나는 자연스러운 매력을 지닐 수 있다. 수만 번 입어보고 시도하여 나만의 ‘와이드 팬츠’를 만날 것. 당신만의 진주가 이번 시즌 트렌드라는 바다 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김한슬
포토그래퍼
엄삼철
모델
백지원, 최아라
스탭
헤어 / 이지혜, 메이크업 / 공혜련, 디지털 리터치 | 최예니, 어시스턴트/송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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