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 영화감독, 뮤지션, DJ, 타투이스트 등이 서로 만났고, 그 선택의 결과는 탁월했다. 뮤지션 이상은과 아이돌을, 디자이너 한상혁과 쎄시봉을, 그리고 영화감독 이해영과 영화 속 금자씨 의상을 논하는 새로운 인터뷰.

왼쪽부터 | 타투이스트 김영빈. 자인 송의 디자이너 송자인. 를 감독한 영화감독 이경미. , 을 감독한 영화감독 이해영. 토크 서비스의 디자이너이자 알로 페이퍼가든의 오너인 주은주. 을 제작하는 김태호 PD. 마침내 마스크를 벗은 게스트 에디터 한상혁.

왼쪽부터 | 타투이스트 김영빈. 자인 송의 디자이너 송자인. <미쓰 홍당무>를 감독한 영화감독 이경미. <천하장사 마돈나>, <페스티벌>을 감독한 영화감독 이해영. 토크 서비스의 디자이너이자 알로 페이퍼가든의 오너인 주은주. <무한도전>을 제작하는 김태호 PD. 마침내 마스크를 벗은 게스트 에디터 한상혁.

 

#3 스토리를 나누는 사람들

시간: 2월 9일 저녁 8시
장소: 신사동 가로수길의 레스토랑, 알로 페이퍼가든
모인 이들: 송자인(패션 디자이너), 이해영(영화감독), 이경미(영화감독), 김태호(방송 PD), 김영빈(타투이스트), 주은주(패션 디자이너, 레스토랑 오너)

김태호: 류승완 감독의 영화 <부당거래>는 박훈정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다고 들었는데,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연출하는 거랑 다른 사람이 쓴 걸로 연출하는 건 매우 다를것 같아요.
이해영: 그렇죠. 저는 제가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는데, 어떤 면에선 누군가 좋은 시나리오를 써줬으면 하는 로망도 있죠.
한상혁: 참, 이경미 감독님의 <미쓰 홍당무>를 재미있게 봤는데 지금 영화 준비하고 있는 것 있으세요?
이경미: 가제인데 <여교사>라는 영화를 쓰고 있어요.
주은주: 혹시 톰 포드가 찍은 영화 보셨어요? 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거든요. 공간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 하나하나까지 정말 세심하게 신경 쓴 게 보이더라고요.
한상혁: 주은주 실장님은 멀티숍과 레스토랑을 동시에 운영하시니까 옷 뿐만 아니라 공간에도 많은 관심이 있을 것 같아요.
주은주: 네, 그런 완벽한 세팅이 얼마나 힘든지 알거든요. 그런데 같이 본 사람은 ‘영화가 어렵다’ 이런 얘기만 하더라고요.
한상혁: 그 영화는 캐스팅도 정말 잘된 것 같아요.
김태호: 영화 하시는 분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셨어요?
이해영: 저는 못 봤지만 그런 거 아닐까요. 그 사람은 원래 직업이 감독은 아니니까 미장센에 훨씬 더 공을 들이겠죠. 그래서 다른 감독들에 비해 화면 구석구석의 작은 것에도 더 신경을 쓴 거고요. 저 같은 경우는 내러티브와 캐릭터에 집중하는데, 그런 영화를 보면 경이로울 때가 있죠. 특히나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 때 김지운 감독님 정도면 모르겠는데, 대부분 감독들은 그렇게 디테일한 부분에 욕심을 내서 소품들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 영화를 보면 판타지같은 느낌이 있어요.
김영빈: 그런 영화는 일단 눈이 즐거운 거 같아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가가기 힘든 부분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해영: 그리고 아직 한국 영화 관객들이 영화를 볼 때는 ‘어떤 스토리야? 누가 나오는데? 어떤 캐릭터야?’이런 것들에 더 집중해서 보거든요.
한상혁: ‘캐릭터’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겠죠?
이경미: 영화를 볼 때 이야기를 따라가게 하는 요소가 인물이니까요. 그리고 누구든지 극장 안에 들어갔을 때 내가 감정이입을 하고 싶은 인물을 선택하는 게 가장 첫 번째 일인 거죠.
김태호: 저도 제작자로서 볼 때 재미있는 건 <미쓰 홍당무>처럼 캐릭터가 확실한 영화예요.
이경미: 시나리오를 쓰면서 제가 소스를 많이 얻는 부분은 책이나 다른 영화도 있지만, 그 중 하나는 TV 버라이어티 쇼와 시트콤이예요. 거기서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곤 하죠. <무한도전>도 그렇고, <영웅호걸>도 그렇고요.
김태호: 저도 <영웅호걸>을 좋아하는데 12명의 여자 출연자들이 각자 캐릭터가 있죠.
이경미: 그 캐릭터는 만들어지는 거겠죠?
김태호: 아마 어색한 건 만들어진 부분일 테고, 자연스러운 건 본연의 모습이겠죠.
한상혁: 저번에 패션 쪽에서도 디자이너가 캐릭터화되면 좀 더 방송에서도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지 않느냐 이런 얘기를 했어요. 뭐, 앙드레 김 선생님처럼 옷차림이나 어떤 것들이 하나의 캐릭터로 더 정형화되면 말이죠. 그런데 감독님들은 패션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세요?
이경미: 네, 잡지를 이것저것 재미 삼아 보기도 해요. 특히 패션쇼 사진, 화보 사진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아요.
한상혁: 어떤 자극을 받으세요?
이경미: 상상을 하게 돼요. 화보 사진에서도 각 모델의 역할이 있잖아요. 그 역할이 많은 스토리를 상상하게 만들어요.
한상혁: 영화 의상은 어떻게 하세요?
이경미: 미술 감독이 맡거나 스타일리스트가 하죠. 조성경 디자이너 같은 분들도 박찬욱 감독님이랑 금자씨 등 많은 작품을 함께했고요.
한상혁: 의상이 캐릭터에 한몫을 하죠?
이경미: 그 사람의 스타일이 캐릭터를 보여주니까. 예를 들어 저는 리본을 싫어해요. 그래서 제 소품에는 리본이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제가 싫어하다 보니까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 곳곳에서 보여요.
주은주: 왜 리본을 싫어하세요?
이경미: 그냥 부끄러워요. 난 여자다 이런 느낌이….
송자인: 그건 저도 그래요.
김태호: 영상의 미술적인 요소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게 의상인 거죠.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온 원피스나 선글라스도 당시 영화의 인기만큼이나 대중적인 이슈가 되었으니까요.
이해영: 저도 금자씨 의상을 좋아하는데 개인적으로 포스터에 나온 점박이 드레스보다는 엔딩 부분에 나온 가죽 재킷을 굉장히 좋아해요. 처음 장면에서는 그 가죽 재킷의 지퍼를 열었다가 엔딩 부분에 이영애 씨가 지퍼를 올려서 여기까지 가리고 있어요. 나중에는 마치‘ 갑옷’같은 기능을 하면서 단순한 의상이 아니라 영화의 플롯과 캐릭터, 뒷얘기까지 말해주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어떤 캐릭터를 전제할 때 의상도 함께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에서 임청하가 입은 우비나 금발 가발, 이런 것도 사실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상상을 해야 이야기가 되는 부분이거든요. 의상이 캐릭터를 구상할 때 굉장히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영화 같은 경우엔 2시간 동안 1천만 관객들이 그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를 경험하잖아요. 그것처럼 옷을 직접 사 입지 않아도 누구나 패션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상혁: 예전에 디자이너 정구호 씨가 <정사>의 의상을 제작했을 때도 이슈가 되었지요. 의상에 영화 속 인물들의 정서가 잘 녹아났고, 물론 옷 자체도 좋았고요.
이해영: 개인적으로 최근 영화를 보면서 의상이 좋았다 하는건 홍상수 감독님 영화예요. <옥희의 영화>에서 문성근 씨가 나이 든 남자로 등장하는데 굉장히 오래된 코트를 입고 나오세요. 보통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는 의상 담당이 따로 없어서 배우들이 알아서 자기 옷을 입고 나오거든요. 그런데 문성근 선배님의 그 코트는 아마 80년대 영화를 했을 때 사셨을 것처럼 20, 30년은 되어 보이고… 특히 그 쓸쓸한 어깨‘ 뽕’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차 안에서 누굴 기다리다가 쓸쓸히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그 코트가 많은 걸 얘기해주죠.
한상혁: 아, 김태호 PD님은 붉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하셨네요.
김태호: 2주 전에 했는데, 조만간 백발로 바꿀까 생각중이에요.
한상혁: 최근 <무한도전>에서 모델 장윤주 씨와 화보 작업을 했죠? 그러면서 대중에게 패션을 알리는 역할도 했고요.
김태호: 사실 의도는 다른 데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었는데, 저희가 찍었던 2010년 달력의 매출이 50억원이 난 거예요. 저희가 원가에 딱 1천원씩만 붙여서 팔았더니 수익이 8억이었고, 그걸 다 불우이웃돕기를 위해 사용했는데 달력을 사신 분들에게 죄송스럽더라고요. 50억원이나 할 상품의 퀄리티가 이 정도가 말이 되나 싶어서였죠. 그래서 비용이 들더라도 좀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보자고 생각해서 ‘도전 달력 모델’같은 콘셉트로 시작을 했죠.
한상혁: 타투이스트 영빈 군도 타투를 하러 오는 사람들과 관련된 흥미로운 스토리가 많을 것 같아요.
김영빈: 사실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타투를 하러 와도 저와 별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냥 ‘요즘 많이 하는 거 있어요?’이런 식으로 묻곤 했죠. 제게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한 스토리를 줘야 저도 그 사람에게 맞는 타투를 해줄 수 있는데 말이죠.
이경미: 제가 영화를 위해서 자료 조사를 하다가 중국의 한 조폭 집단이 찍은 단체 사진을 봤어요. 그런데 멤버들이 눈과 입만 빼고 온 몸에 타투를 했더라고요.
김영빈: 네, 남미 쪽 마피아 가운데도 그렇게 온몸에 문신을 하는 집단이 있어요. 지역마다 타투의 성향이 다른데 서양의 타투는 그림마다 상징하는‘이야기’가 있고, 일본의 야쿠자는 온몸에 한 폭의 그림처럼 타투를 표현하죠. 어떤 타투는 표식이나 부적 같은 의미도 담고 있고요.
한상혁: 송자인 실장님도 타투가 있지 않아요?
송자인: 여기 손가락 마디에‘ nostitch’라고 있어요. 사실 그 전부터 오랫동안 어떤 타투를 할까 하고 고민해왔죠. 그런데 어느날 여느 때처럼 디자인을 하면서 도안을 그리다가 ‘여기는 3stitch, 2stich, no stitch…’ 하고 적는데 갑자기 이거다 싶었어요. ‘노 스티치’라는 게 안티 패션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고, 디자이너로서 제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문구랄까…. 하지만 자신의 몸에 평생 남을 스토리를 새기는 건데 아무 생각없이 하는 건 어이없는 행동이죠.
주은주: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타투를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어요. 사실 저도 타투에 관심이 있는데, 긴장하고 책임감에 눌려 살다보면 내 몸만큼은 자유롭고 싶어질때가 있죠.
김영빈: 그래서 요즘엔 다양한 화풍의 타투를 새롭게 보여주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죠. 혐오스러운 대상이 아니라 미적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타투로요.
이경미: 저도 타투에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날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한 타투를 보게 되었어요. 나뭇잎이 날아가면서 새가 되는 모습이었어요. 나뭇잎에 색깔도 있었고요. 그 그림을 순간 동영상으로 상상했는데,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어떤 스토리를 가졌을까 하면서 상상이 무한하게 확장되더라고요.
김태호: 그런데 디자이너들도 영화 작업에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나요?
한상혁: 제가 만약 한다면, 미래적인 영화 의상을 하고 싶어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반짝이는 소재의 의상 말고요.
김태호: <제5원소> 같은 거요?
한상혁: 네, <제5원소>와 <가타카> 같은 것들…. 가타카에 등장한 날렵하고 미래적인 블랙 수트는 정말 멋지지 않나요? 그러고보면 영화 같은 경우엔 2시간 동안 1천만 관객들이 그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를 경험하잖아요. 그것처럼 옷을 직접 사입지 않아도 누구나 패션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례로 마돈나의 유럽 투어에 10억 정도를 투자해서 그녀를 통해 우리의 패션을 보여주는 거죠. <출발 비디오 여행>과 <씨네 21>이 우리나라 영화의 대중화에 기여한 바가 크잖아요. 처음에 장 뤽 고다르를 얘기하지 않고 그냥 별점을 주는 방식이 먹혔던 건데… 패션에도 그런 부분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가능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