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살이니, 낭만적인 솜사탕이니 그런 것들은 잊도록. 세상에서 가장 파격적이며 시리고, 날카로운 컬러가 바로 파스텔 컬러이니까. 2011 S/S 백스테이지를 휩쓴 차갑고도 차가운, 파스텔 트렌드 리포트.

ICY PASTEL

파스텔 컬러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막 20살을 갓 넘긴 새내기들 사이에서나, 혹은 회춘을 꿈꾸며 소녀로 역행하는 아줌마 골퍼 부대 사이에서 파스텔은 늘 부드럽고 감미로운 역할을 자처했다. 다른 말로는 사탕이나 풍선껌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 파스텔 컬러가 2011 S/S에 이르러 단단히 벼르고 나섰다.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선언에 걸맞게 올 시즌 파스텔은 대담할 대로 대담해졌고, 더 나아가 절제된 면모까지 보이고 있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4~5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옐로 섀도의 등장이다. 피터 솜을 비롯한 몇몇 쇼에서 보여진 옐로 섀도는 그 하나만으로도 강렬한 파워를 뽐내며 모델들의 얼굴 위를 장악했다. 마크 by 마크 제이콥스, 라코스테 등에서 활약을 보인 오렌지의 추격 또한 만만치 않다. “올 시즌 핑크가 차가운 매력을 뿜어냈다면, 이를 대신해 좀 더 밝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는 오렌지의 차지였습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니콜라스 데겐스의 설명을 입증이라도 하듯, 런웨이뿐만 아니라 코즈메틱 브랜드의 봄 신상품에서도 오렌지는 가장 앞열을 차지하고 섰다. 이외에 블루, 라임, 그린, 퍼플, 라일락, 워터멜론 등 듣기만 해도 입안이 시큼해지는 색상들의 변신 또한 모두 같은 공식 아래 이루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컬러들을 가지고, 가장 파격적으로 메이크업해보라!”

COOL PINK & CORAL

파스텔계의 맏언니이자, 봄의 전도사, 여자들의 로망인 핑크 역시 이번 시즌 대대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질 샌더의 핑크 립스틱은 쇼가 끝나자마자 화제가 될 정도로 누구에게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밝고 튀는 핑크를 사용했죠. 미니멀한 누드 스킨 위로 볼드한 핑크 립만을 대담하게 채워넣었어요. 물론 효과가 극대화되었죠. 보시다시피 이제 핑크는 아주 센 컬러입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피터 필립스의 설명처럼 이번 시즌 핑크는 강하고 시니컬한 자세를 내내 유지하고 있다. 앤디 워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선택했다는 다이앤 폰 퍼스텐 버그의 핑크는 극도로 자제된 피부, 속눈썹 등의 누드 메이크업과 대비되면서 더욱더 현란하고 강렬하게 발색했다. 마치 “난 특별한 장치 없이도 이렇게 멋져 보일 수 있어요!”라고 콧대를 높이는 여자 같달까? 핑크의 역할이 이렇다 보니, 기존에 핑크가 해냈던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자리는 오렌지와 코럴이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그다지 말랑하지만은 않았다. 카렌 워커의 모델들은 일제히 코럴빛 립 컬러의 어리고 생기 넘치는 소녀들로 분장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도시의 무심하고 도회적인 소녀의 모습에 불과했다. 이번 시즌 팅커벨이나 꽃의 요정 따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