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유의 시선으로 바라본 6명의 인물들, 그들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2011년의 비전.

레오 강이 착용한 시계는 폴 스미스 by 갤러리어클락.

레오 강이 착용한 시계는 폴 스미스 by 갤러리어클락.

 

주방의 온도

셰프 레오 강

A – LIST
‘셰프’를 한글로 번역하면 요리사 혹은 총주방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셰프와 요리사는 완전히 다른 지위를 지닌다. 그건 미디어가 낳은 ‘셰프’에 대한 괜한 허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주방을 맡고는 있지만 진정으로 책임지고 있지는 않은 요리사를 향한 불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미슐랭 스타 셰프를 7명이나 배출한 전설적인 셰프 피에르 코프만의 마지막 수제자, 장 조지, 피에르 가니에르 등 미슐랭 스타 셰프 레스토랑의 수셰프, 고든 램지가 두바이에 오픈한 ‘베르’의 헤드 셰프라는 화려한 이력으로 주목받은 레오 강. 하지만 그는 자신을 셰프가 아닌 요리사라고 소개했다. 요리는 평생을 배워도, 다 못 배울 거라고도 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식당엔 기술이 아닌 마음이 필요하다고 따끔하게 조언했다.

얼마 전 이태원 ‘마카로니 마켓’의 컨설팅을 맡았다. 어떻게 변신시키려고 작정하고 있나?
예전부터 한국에 ‘브라세리’라는 콘셉트의 레스토랑을 열고 싶었다. 흔히 생각하는 스테이크 하우스나 패밀리 레스토랑의 윗단계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비교적 넓은 규모에서 스타터, 메인, 디저트, 그릴, 플래터, 오이스터 등으로 구성된 전 세계 어디에서도 똑같은 포맷의 메뉴를 즐길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식당들은 어떤 카테고리 안에도 속해 있지 않다. 레스토랑이면 레스토랑답게 퀄리티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비스트로는 그저 한 접시, 한 그릇 먹으러 가는 밥집인데도 파인 다이닝을 지향한다느니 미슐랭 스타급의 비스트로라느니 부풀린다. 브라세리다운 브라세리를 만들고 싶다. 아직 한국의 식문화가 파인 다이닝을 쉽게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구운 고기, 치킨, 피자 등 지금 한국 사람들이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을 더 맛있게, 좋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컨설팅에 집중하고,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지 않는 이유는?
물론 목숨 걸고 내 레스토랑을 하고 싶은 꿈이 있다. 하지만 내가 그리는 모습의 레스토랑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아직 내가 피에르 가니에르처럼 몇십억씩 투자 받을 만한 네임 밸류는 없지 않나. 지금은 기다리는 중이다.

최근 해외 유명 셰프들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더니, 해외에서 배워왔다는 한국인 셰프들이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2006년 한국에 처음 들어와서 인터뷰할 때, 어떤 기자가 그랬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했다고 하던데 3스타 갖고 뭘 그러냐, 별 7개도 있는데’라고. 불과 4년 전이다. 고든 램지든, 미슐랭 스타든, 한국 사람들이 그런 걸 안 지가 얼마 안 된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1인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더 낫다, 아니다 내가 더 낫다 하면서 일어나기 시작하니까 이렇게 술렁이는 것 같다. 사실 누가 더 나을 게 없다. 요리는 혼자서 열심히 하는 거니까.

사진과 함께 음식에 대한 평을 올리는 블로거도 많아졌다.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음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올바른 기준이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본다는 이유 하나로 힘이 세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다.

하지만 음식을 먹는 모든 사람이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니 셰프의 화려한 이력을 믿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사람이 공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지 않을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이 세계 최고라고 말하는 요리사가 등장했을 때, 왜 아무도 객관적으로 비교하지 않는 걸까. 화려한 간판에 현혹돼서, 진짜가 흐려진다. 유명 학교 졸업장이 이력이 되기도 하는데, 요리학교는 학교일 뿐이다. 졸업하면 다시 레스토랑에 들어가 맨 아래 단계인 코미부터 시작하는 거다. 그런데 그 과정이 힘드니 건너뛰고, 졸업하자마자 식당을 차리고 스스로를 셰프라고 부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에 활동하는 셰프 중 인정하는 사람이 있나?
서양 음식 하는 사람 중엔 아직 못 찾았다. 한 나라의 음식이란 기저귀 찰 때부터 경험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우리가 유럽 음식의 대가는 될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런데도 메뉴를 개발했다거나, 창조했다며 스스로를 천재처럼 꾸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제대로 공부하면 알겠지만, 원래 다 있는 것들의 다른 조합일 뿐이다.

한국만의 경쟁력 있는 재료를 찾고 싶다는 꿈이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꿈은 지금 어느 정도 이룬 상태인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난 한국의 색을 가미한 유러피언 요리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한식을 찾을 수가 없다. 서로‘ 원조’라고 외치다 보니, 한국 음식의 역사가 끊겼다고 생각한다. 스승과의 관계를 끊으면, 요리도 끝난다. 레시피만 있다고 요리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중요한 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줘야 하는 거다.

사제 관계를 무척 중요시 여기는 걸로 보인다. 당신의 스승이었던 피에르 코프만에게 배운 것은 무엇인가?
요새 레스토랑 컨설팅한다고 하면, 코프만이 욕할 것이다. 요리 안 하고 뭐하고 있냐고.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배운 건 근면과 성실이다. 코프만은 은퇴하는 그날까지 아침 7시에 나와서 밤 12시에 들어갔다. 절약하는 것도 배웠다. 어떤 재료도 그냥 버리는 법이 없었다. 쓰레기통까지 뒤질 정도여서, 뼈와 뼈 사이에 붙은 고기까지 전부 다 도려내서 스태프들이 먹었다. 그만큼 재료를 소중하게 다뤄야 했다.

그토록 엄격한 주방에서 오랜 시간 일하다가, 한국 레스토랑에서 처음 일해보니 어떻던가?
좀비 같았다. 절대 뛰어다니지도 않더라. 요리를 그냥 먹고사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 하지만 내 삶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일하겠나. 하루 18시간 동안 일하는 삶을 살 수 없다면, 함부로 주방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세프란 말이 흔해졌다. 요리사, 혹은 주방장이라고 부르면 왠지 낮게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고든 램지도 기자가 와서 셰프라고 하면, 그냥 셰프 떼고 고든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물론 8~9단계쯤 되는 포지션이 있기는 하지만 요리하면 셰프다. 문제는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몸을 부풀리기 위해 굳이 스스로를 셰프라고 칭한다는 거다. 겸손해져야 하는데 조절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파스타는 소스를 흥건하게 하면 안 된다거나 하는, 일종의 서양 음식 제대로 먹는 방법에 대한 얘기도 허다하다.
그런 음식도 있고, 저런 음식도 있는 거다. 내가 수프처럼 먹고 싶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나. 요리의 테크닉을 놓고 진짜 이탈리아 음식이다 아니다 말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요리를 하는 사람의 정신이다. 가슴에 이탈리아를 품고 요리를 하면, 어떻게 요리하든 그 나라 음식이 나오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음식을 맛있게,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나랑 같이 먹으면 다 맛있게 해드릴 수 있다(웃음). 음식에 대해 정직하게 설명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레스토랑에 자주 가게 된다거나, 특정한 셰프의 음식을 자주 먹게 된다면, 그건 음식보다는 그 사람과 레스토랑에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신뢰는 주방에서 열심히 하면, 끊임없이 요리하면서 계속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쌓인다.

왜 그렇게 요리에 미쳐 있나?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 평생을 해도 다 못 배울 거다. 그냥 하나하나씩 알아가는 데, 어제보다 오늘 더 잘하는 데 만족하고 사는 거다. 그렇게 해도 내가 천재적인 셰프가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면 할수록 잘한다. 그러니 계속 요리를 할 수밖에 없다.

 

오지은이 입은 블루 원피스는 토크 서비스. 블랙 워커부츠는 지니 킴. 반지는 블랙 뮤즈. 뱅글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지은이 입은 블루 원피스는 토크 서비스. 블랙 워커부츠는 지니 킴. 반지는 블랙 뮤즈. 뱅글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서투른 사랑 노래

뮤지션 오지은

A – LIST
2006년. 자신이 만든 데모음악을 홈페이지에 올리고는, 먼저 입금하면 음반이 나오자마자 보내주겠다는 당돌한 아가씨가 나타났다. 파일을 열어보니 ‘널 보고 있으면, 널 갈아먹고 싶어’란 파격적인 가사와 한껏 예민한 목소리가 담긴, 그래서 듣고 있으면 다른 모든 일을 멈추게 되는 마치 주술 같은 노래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선판매 형식으로 제작된 1집에 이어 2집에 이르기까지, 오지은은 20대 여자의 연애와 아픔을, 지칠 만큼 농밀하게 담아내는 뮤지션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훌쩍 홋카이도 열차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는 <홋카이도 보통열차>라는 책을 내놓더니, 그로부터 몇 달 지나지않아 4명의 늑대들과 함께 돌아왔다. 사람들은 갑작스레 땡볕처럼 밝아진 노래에 의아해했지만, 오지은은 4년 전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서툴고, 어긋나고, 그리고 때론 바보 같은 사랑에 대해 노래할 뿐이다.

작년에 출간한 책 <홋카이도 보통열차> 서문에서 인터뷰가 가장 힘들다는 글을 봤다. 여전히 그런지 묻고 싶었다.
1, 2집 땐‘ 너 그런 거 맞지?’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미 나를 단정하는 사람들에겐 어떤 말을 해도 빠져나가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어려웠다. 다행히 이번엔 ‘오지은과 늑대들’이 바라는 방식으로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다만 밝은 음악이 돈을 벌고, 어두운 음악이 돈을 못 번다는 건 굉장한 착각인데, 돈 때문에 혹은 뜨려고 밝은 음악 하는 거 아니냐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업적이라고 나쁜 건 아니지만, 코미디 영화라고 전부 상업적인 건 아니지 않나. 난 이번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내 수입이 줄어들 거라고 예상했다.

누군가 그렇게 생각할 만큼‘ 오지은과 늑대들’의 노래들은 기존의 솔로 1, 2집에 비해 참 밝다. 그 특별한 계기를 홋카이도 여행이라고 봐도 좋을까?
그렇다. 300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썼다(웃음). 사실 나도 머리로는 잘 모르겠다. 그저 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여행 내내‘ 피치카토 파이브’의 옛날 노래들을 들었는데, 노래는 분명 신나는데 가사가 참 쌉싸래한 거다. 그게 바로 어른의 세계인 것 같고, 부러웠다. 게다가 우리 늑대들은 그전에도 말만 세션이지 거의 멤버나 다름없었다. 기왕 이럴 거면 정식으로 하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한테만 스포트라이트가 오는 게 싫기도 했다. 5분의 1이 되고 싶었다.

5분의 1이 되고 싶다는 본인의 바람과는 달리, 오지은에 대한 관심은 홀로 레이블을 차려 음반을 만들고 주문을 받고 소포로 보내주던 1집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바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는데, 내 눈에는 바깥만 보여서 전혀 모르겠다. 게다가 오지은과 늑대들은 그냥 오지은일 때보다 콘서트 티켓 값이 싸다. 우린 신인 밴드니까. 그리고 난 이제 막 1집을 낸 신인 밴드의 보컬이니까.

1집, 2집, 그리고 이번 오지은과 늑대들까지 음반마다 변화가 크다. 누가 자신을 하나로 규정하는 것이 싫은가?
아니, 난 어떤 규정도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다. 다만 음악의 장르라는 건 보컬한테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이런 뮤지션이니까 난 어떻게 해야 돼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위험해진다고 생각한다. 난 그냥 이걸 하고 싶다든지, 이걸 해야겠다든지 하는 무의식에 따라 이 고생을 할 뿐이다. 1집 땐 악기는 적게, 내 목소리만 흉폭하게 넣어 날 선 느낌을 주고 싶었다. 2집은 예산도 넉넉해졌으니 1집 때 못했던 걸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밴드음악을 해보고 싶어서 오지은과 늑대들을 만든 거다. 3집은 아주 정제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 사운드, 가사, 멜로디 그 모든 게 정제된 느낌의 것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1집부터 당신의 노래를 좋아해온 팬들은, 흔치 않은 경로로 당신의 팬이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만 알고 싶다거나,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클 것이다.
“1집이 제일 좋아요”라거나“, 옛날 음반에 있는 그 노래와 같은 노래는 또 안 나오냐” 하는 글 많이 봤다. 나도 듣는 사람일 땐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를 만들었다면, 그 노랠 다시 만들 이유가 없다. 만약 만든다면 듣는 사람이 좋아하는,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만드는 건데 난 그게 싫다.

듣는 사람들 말고, 부르는 자신은 어떤가? 밝은 노래를 부르며 변화를 느끼나?
예전엔 매번 공연이 끝날 때마다 정말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벅찬 모노드라마 한 편을 끝낸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도 신나고, 무대에 올라가서도 문득문득 신난다. 눈을 감고 부르던 예전에 비해 관객들을 보면서 기운을 주고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내 얘기만을 가사로 쓰던 지난 1, 2집과 달리 이번 음반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사를 썼다고 들었다. 어떤 차이가 있나?
예전엔 가사를 비난받으면 내 인생이 비난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나와 취향이 안 맞나보다 하고 생각한다. 슬픈 노래도 예전처럼 주저앉을 것 같은 기분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부르게 된다. 보컬로서의 폭이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외양은 변했을지 몰라도, 오지은의 음악은 언제나 연애하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서른을 넘기면서, 연애나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진 않았나?
예전엔 뇌수가 녹는 사랑. 그런 것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건 약간 뽕 맞은 거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한다. 꼭 토마토 케첩처럼 끈적거리지 않고 묽은 주스 같아도 인생이구나 싶다. 그런 감정들에 대해 가볍게 얘기해보고 싶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청춘들의 바보 같고, 오해하고, 엇갈리는 감정들을 담고 싶었다.

1집을 발표하기 위해 만들었던 레이블‘ 사운드니에바’에서 작년에 내놓은 시와 음반에 대한 평과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운드니에바를 작은 레이블로 남겨두고 싶나?
시와한테도 그랬다. 3천 장 팔면 다른 데로 가라고. 그 정도면 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나는 매니지먼트도 못해주니까. 사실 ‘시’와 음반이 팔려도 수익은 시와에게로 가고, 나는 프로듀싱 비용만 받는다. 그건 시와와 나의 의가 상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장르, 성별과 상관없이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기 쉬운 어떤 것에 대해 얘기하는 예민하고 솔직한 노래를 만드는 레이블. 그렇게 작은 레이블로 남고 싶다. 매니지먼트와 같은, CD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팔기 위해 어떤 것도 첨가하지 않는 성역, 정말 인디로 말이다.

최근 당신의 1집이 그러했듯, 이른바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음반들이 주목받고 있다. 밖에서 보기엔 순수한 음악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돼서 그런 듯하다.
그게 내가 가내수공업을 그만둔 이유다. 그런 쪽으로 칭찬 듣기 싫었다. 좋은 음악이란 그런 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다. 그저 5천 장을 찍어야 하면 혼자 할 수 없으니까 도움을 받아야 하고, 전 세계에서 100장 팔릴까 말까 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면 스스로 구워야 한다. 결국 다 수지타산이 아닌가 싶다. 이건 엄연히 비즈니스고, 비즈니스 아닌 척하는 게 더 나쁘다. 음악을 만드는 순간에만 비즈니스가 아니면 된다.

만화책을 번역하기도 했고, 책도 냈다. 최근에 시작한 칼럼도 재밌게 보고 있다. 글 쓰는 재미를 느끼나?
내가 글을 써도 괜찮을까 스스로 의심했던 시간이 길었는데, 책을 낸 후 공감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글 쓰는 사람이란 의식이 생긴 듯하다. 요즘 원고지 17매에 달하는 칼럼을 쓰면서, 오지은식 글쓰기라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진지한 얘기를 수다스럽게 풀어내는 것이 아닐까. 불안정하고 예민한 내가 나오는 게 음악이라면, 글을 쓸 땐 수더분한 내가 나온다. 지금은 얕은 내공으로 잘도 버티고 있는데, 더 나아지고 싶단 생각이 있다.

혼자서 음반을 만들고, 팔고 한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그 당시 그렸던 모습과 지금이 일치하는지?
초과했다, 이미. 처음 음반을 만들 땐, 내가 1집 내봐야 세상에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누군가 들어주니까, 내가 음반을 내도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나만 잘하면 되니까 초과 달성이다. 게다가 책까지 내다니 미쳤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