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 제10회 서울 패션위크 기간 동안 6인의 패션 파워 블로거는 더블유의 게스트 에디터로 컬렉션장을 누볐다. 그리고 현장에서 날카로운 감상평과 직접 촬영한 사진을 더블유에 보내왔다. 뉴 미디어로 떠오른 패션 블로거들의 진심 어린, 그래서 더 흥미로운 서울 패션위크 리뷰.

서울컬렉션 MENSWEAR

홍석우 Your Boyhood
www.yourboyhood.com
대한민국 패션 블로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2006년 10월에 시작된 패션 블로그, ‘your boyhood’는 날카롭지만 담백한 패션 크리틱과 매혹적인 한국형 스트리트 패션사진의 보고다.

ANDY&DEBBHOMME 김석원
앤디&뎁의 여성복이 하나의 주제를 패션으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두 디자이너의 공동 작업이라면, 남성복은 앤디(김석원)가 상상한 남자의 옷장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뎁(윤원정)이 딸들과 무대 가까운 거리에 자리한 가운데, 앞섶이 둥글게 떨어지는 블루종에 펜슬 커팅의 팬츠를 입은 모델들이 런웨이 가장자리를 돌았다. 그 가운데 옷깃부터 이어진 대칭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파스텔 핑크색 코트는 컬렉션의 중심이었다. 노련한 비즈니스맨 같은 검은색 더블 브레스트 재킷조차, 청년보다 소년에 가까운 느낌이었고 제한된 몇 가지 아이템으로 쇼를 완성한 디자이너의 저력이 느껴졌다. 앤디&뎁의 남성복 쇼를 보고 든 다른 감정은, 옷 하나하나의 스타일보다 ‘하이패션이란 무엇인가?’ 하는 개인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이었다. 빼곡히 들어선 관객들 앞에서 단지 옷을 만들어 선보인다는 것이 하이패션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통일된 실루엣과 완성도 있는 옷, 약간씩 들어간 변주-그래픽적인 패턴이 들어간 수트와 팬츠-는 청중을 압도하는 스펙터클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바로 하이패션의 기본 아닐까. 앤디&뎁의 남성복이 당장 길거리에서 다수의 추종을 받을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잔잔한 빛이 났다.

MVIO 한상혁
스터드가 박힌 검은 라이더 재킷을 입은 모델은 아직 앳된 얼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웠다. 엠비오 컬렉션에서 한상혁은 그간 쓰지 않던 요소들을 심고, 트레이드마크처럼 보이던 몇 가지를 덜어냈다. 전자는 컬렉션 막판에 등장한 블랙 수트들과 조금 더 날렵해진 실루엣이고, 후자는 한상혁과 동의어처럼 보이던 ‘보타이’ 같은, 아메리칸 클래식의 향기다. 그는 매 시즌 자신이 느낀 감정을 컬렉션의 형식으로 보여줬다. 지난 시즌 ‘마운티니어링’이라는 주제로 말한 것이 산을 오르는 것처럼 한 발씩 걸어가겠다는 다짐이었다면, 이번 시즌의 ‘라이딩’은 엠비오 라이딩 클럽 서울(M.V.R.C. SEOUL)이 개발한 ‘그럴 수도 있겠지 ver. Sang’이란 장치를 타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밝혔다. 도심의 라이더들에게 영감 받은 폭이 좁은 팬츠에 매끈한 상아색 구두를 신고, M.V.R.C. 로고가 박힌 민소매 티셔츠와 실크 셔츠를 걸쳤다. 엠비오의 소년들은 여전히 마음을 울리는 윤상의 노래 속에서 천천히 거닐었다. 1990년대 중반, 미니멀리즘 시대에 패션계에 뛰어든 한상혁은 ‘클래식에서 모더니즘으로의 회귀’를 조용히 선언했다. 그 중심지는 서울이었다.

ROLIAT 홍승완
홍승완만큼 철저히 자기 색을 유지하는 디자이너가 서울에 또 있을까? 스위트리벤지 시절부터 꾸준히 보여준 ‘홍승완식 남성복 연구’는 4년 만의 서울 패션위크 무대에서 선보인 로리앳으로 한 단계 진화했다. 그는 이번 컬렉션을 위해 ‘몽지벨로’라는, 이탈리아 남부 어딘가에 있는 가상의 섬을 만들고 그 동네의 말쑥한 청년과 요조숙녀를 위한 옷을 지었다. 목선이 드러나는 언더셔츠에 더블 버튼이 달린 베스트, 접어 올린 리넨 소재의 줄무늬 팬츠와 금속 단추가 포인트로 들어간 코튼 셔츠, 화려한 자수를 절충한 회색 재킷과 엷은 갈색 롱 재킷은 로리앳의 대표적 룩이었다. 그리고 가슴의 코르사주와 카노티에(Canotier) 모자, 둥그런 뿔테 안경은 로리앳의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이번 쇼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여성복을 선보였다는 것. 상아색의 오버사이즈 니트 카디건과 시폰 스카프를 한 모델은 소매가 짧은 크롭트 재킷을 입고 우아하게 걸었지만, 트렌디한 여성복 시장에서 여성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조금 의문이 들었다. 홍승완식 여성복 연구의 다음을 기대한다.

서울컬렉션 WOMENSWEAR

이강주, 김현진, 이수미 Stylefish
blog.naver.com/swingfish
온라인에선 일명 고등어(김현진), 은갈치(이수미), 도미(이강주)로 불리는 3인이 함께 꾸려가는 패션 블로그. 이곳에서는 좀체 정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사실 그들은 퍼스트뷰코리아의 패션 컨설턴트들이다. 하지만 이 블로그에서만큼은 무겁고 어려운 패션이 아닌 지극히 사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패션의 바다를 유영한다.

JARDIN DE CHOUETTE 김재현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 모습이 근사한 여자, 하지만 쿨한 태도로 클럽문화를 즐길 줄 아는 여자. 쟈뎅드슈에뜨 컬렉션을 보면 그런 멋진 여자를 상상하게 된다. 70년대 웨딩 사진 속 비앙카 재거, 프랑수아즈 아르디, 헬무트 뉴튼의 흑백 사진 등에서 영감을 얻은 이번 컬렉션은 역시 기대를 훌쩍 넘어섰다. 지난 시즌 말랑말랑한 밀리터리 룩에 빠진 숙녀는 이번엔 펑키하지만 기품이 넘치는 숙녀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순백색 플리츠 미니 드레스, 드레시한 점프수트, 빈티지 바이커 재킷까지 여성스러운 요소와 날카로운 하드록 스타일이 대조되고 어우러지면서 완성된 스타일은 꽤 인상적이었다. 특히 쿨하게 변신한 부엉이와 애시드 색상은 어려지고 싶은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럭키 스타 프린트와 카고 팬츠, 바이커 재킷의 스타일링으로 관능적인 스트리트 무드로 달아오른 캣워크는 롱 드레스 시리즈로 우아하게 마무리되었다. 아마 이번에도 자뎅드슈에뜨 마니아들은 긴 쇼핑 리스트를 보며 행복한 고민에 빠지겠지?
-by 은갈치(이수미)

The Centaur 예란지
제너레이션 넥스트의 원년 멤버로 시작해 올해 서울컬렉션의 메인 무대에 들어선 예란지. ‘칸트의 테이스트’라는 주제로 컬렉션을 선보인 그녀는 한 시즌 입고 버려지는 옷이 아니라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옷, 즉 클래식을 예찬했다. 하지만 그녀가 창조한 클래식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캐멀/그레이/블랙 색상의 트렌치, 울팬츠, H라인의 스커트 수트 같은 전형적인 아이템과는거리가 있다. 대신 더센토르에서는 동양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우리 어머님 세대에서 즐긴 익숙한 프린트와 실루엣이 연상되는 새로운 클래식을 제안했다. 컬렉션 내내 동양적인 꽃무늬 프린트, 플리츠, 레이스, 스톤워싱 진의 갖가지 프린트와 텍스처, 빛을 담은 소재의 믹스가 돋보였다. 다양한 프린트는 때로 재킷 속 블라우스로, 또 스포티한 점퍼의 소재로 사용되어 독특한 조합을 보여주었으며 청재킷 속에 레이스 드레스, 화이트블라우스 아래 카키 밀리터리 팬츠 같은 이색적인 코디역시 흥미로웠다. 포멀한 수트로 시작, 특유의 믹스 매치를 건너 데님 시리즈로 마무리되는 컬렉션은 어머니의 옷장에서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광장시장을 돌아 나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by 고등어(김현진)

KAAL E. SUKTAE 이석태
대중에게는 아직 낯선 브랜드인 칼 이석태. 다년간 여성복 브랜드인 미니멈, 오브제의 Y&K, 이상봉, YK038에서 디자인 실장을 맡아온 디자이너 이석태는 대중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디자이너다. 이번 시즌 그는 영화 <스타워즈>에서 받은 영감을 동시대적인 요소와 조합하여 컬렉션을 풀어냈다. 테마 역시 ‘마이 스타워즈(My Star Wars)’. 상반된 요소들이 만나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이번 컬렉션에서 앞서 말한 ‘대조’의 미학이 극적으로 드러난 예는 깔끔한 테일러링과 낭만적인 장식이 공존하거나 모직과 가죽 등의 남성적인 소재가 잘리고 이어 붙어져 손맛이 느껴지는 아이템 등. 무엇보다도 완성도 높은 테일러링으로 유명한 브랜드 특성상 가장 눈길을 끈 아이템은 역시 재킷이었다. 이번엔 과감한 패치워크 장식과 독특한 형태가 인상적이었다. 결과적으로 해외 바이어들에게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아이템이 재킷이었다고. 그 외에 여러 모양의 조각 모음으로 완성한 듯한 공효진 씨의 베스트나 현대적인 그래피티 프린트의 아이템도 시선을 끌었다. 모델들이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주름 장식 소재와 가죽 술 장식 등은 모던하고 절제된 디자인과 어우러져 여성미를 드러냈다. 2011 S/S 트렌드인 로맨티시즘과 스포티즘의 흐름에 동참한 듯한 이번 컬렉션은 보기 드물게 신선한 느낌을 선사했다. -by 도미(이강주)

정소진 Sojin
blog.naver.com/sojin3325
302호, 수트, 모델, 트렌드, 스트리트, 빈티지, 아방가르드, 서상영, 화보, 일상, 클래식, 신진 디자이너, 공연, 인터뷰, 파티, 광고, 매거진…. 그리고 ‘작은 보통의 존재’인 정소진 자신의 일상의 자취를 남기는 열린 공간. 지극히 사적인 그래서 더 흥미로운 그녀의 세련된 취향이 곳곳에 배어 있다.

KwakHyunJoo Collection 곽현주
현란한 색상이 요동치는 영상이 나오더니 조금은 살벌한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독사과를 든 그녀, 백설공주가 나타났다. 런웨이를 걷는 백설공주는 마치 키스를 받기 위해 독사과를 먹는 듯 (마치 자작극 같은 장면)위험한 미소를 짓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백설공주에 대한 역발상이 탄생시킨 룩들은 곽현주다웠고, 새로웠다. 특히 이번 컬렉션에 등장한 셔링장식의 반복은 마치 키스를 받을 때 신체 리듬이 요동치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켰다. 잔잔하지만 부드러운 곡선과 여기에 매치된 거칠고 위험해보이는 직선의 조화도 독특했다. 한편 디자이너 곽현주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오렌지 색상은 물론 검정, 흰색 그리고 초록색이 눈에 띄었고, 여러룩 중에서도 홀터넥의 컬러풀한 드레스는 위험한 백설공주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렸다. 뾰족한 가시 모양의 목걸이와 팔찌 역시 이번 컬렉션의 테마를 효과적으로 드러낸 액세서리. 그렇게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컬렉션이 끝나고 피날레에 다시 등장한 백설공주의 위험한 미소는 자신이 의도한 자작극이 성공했다는 의미일까? 콘셉트가 뚜렷하고 독특해서 인상적이었던 컬렉션.

JOHNNY HATES JAZZ 최지형
서울 패션 위크에 화려한 신고식을 치르는 최지형의 컬렉션장에 들어서자 그녀의 뜨거운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모던 록 밴드 ‘피터팬 컴플렉스’의 여성 드러머 김경인의 연주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가운데 ‘쿠바 혁명’이 시작되었다. 쿠바의 라틴무드와 밀리터리 룩을 ‘최지형식’으로 변주한 결과물은 정말 근사했다. 특히 형광색 벨트를 매치한 드레스 시리즈와 시스루 스커트 그리고 아웃포켓 장식의 스포티한 룩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 그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또 파란색 철조망 패턴은 패턴 메이커로서의 역량을 보여준 대목. 의상뿐만 아니라 모델들의 머리에 매치된 애시드 색상 밴드와 싱그러운 입술 색상은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음으로써 쇼의 완성도를 높인 최지형의 영리한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였다. 일취월장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그녀의 이러한 진화가 반갑고, 고마울 뿐이다.

Push Button 박승건
2003년에 시작한 푸시버튼의 박승건의 ‘뒤늦은’ 서울 패션위크 데뷔 컬렉션. 푸시버튼 스타일로 성장한 마니아들과 셀렙들이 자리한 가운데 시작된 컬렉션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스트리트의 감성과 오트 쿠튀르적 피니싱의 접합점이랄까. 펑키하면서 사랑스러운 룩들은 파격적이지만 실용적으로 보였다. 특히 미니멀한 디자인의 파스텔 핑크와 누드 베이지 아이템 그리고 핸드 프린팅한 바나나 잎 패턴 시리즈는 싱그러운 봄여름을 연상시켰다. 개인적으로 이번 컬렉션에 등장한 하늘색 점프수트는 당장 구입하고 싶을 정도. 피날레에 등장한 블랙&화이트의 ‘래글런 티셔츠 시리즈’는 박승건의 감각적인 스타일링 감각을 확인할 수 있었던 요소. 이치현과 벗님들의 노래, ‘당신만이’가 흐르는 가운데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의 사파이어 블루 색상의 눈동자 역시 묘한 인상을 남긴 컬렉션. 그의 2011 F/W 시즌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건 나뿐일까?

Lie Sang Bong Paris 이상봉
디자이너 이상봉의 컬렉션을 보다니! 그의 명성은 익히 알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인터라 이번 쇼를 보는 것 자체가 내겐 영광이었다. 지난 10월 파리에서 선보인 이번 컬렉션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영화 <성스러운 피>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터라 어떤 영화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남녀 무용가의 등장과 함께 새를 모티프로 삼은 듯한 영상이 시작되고 이내 등장한 룩들은 정제되고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특히 실크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소재와 깃털 모티프의 자수 장식은 정말이지 정교해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자연스러운 누드 색상, 흰색, 검은색 등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성스러운 피’를 표현한 듯한 선명한 오렌지, 레드 색상이 흩뿌려지듯 매치되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 작가 김준의 작품을 프린트한 레드 드레스는 그의 아티스틱한 면모를 보여준 대목. 피날레에 등장한 이상봉과 모델들의 손으로 새를 표현한 연출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장면이었다. 정말이지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