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린치와 마틴 스코시지의 최신작은 극장이 아닌 디올과 샤넬의 홈페이지에서 상영됐다. 브랜드가 영화감독, 사진가, 아티스트, 디자이너 등에게 의뢰해 완성한 패션 필름은 과연 광고가 아닌 한 편의 영화로서도 타당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을까? 영화 기자와 평론가들이 그 중 8편에 대해 솔직한 별점을 매겼다.

1. 미소니의 [Missoni]
미국 실험영화와 게이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아이콘인 케네스 앵거가 연출한 단편. (직접 이번 시즌의 모델로 나선) 미소니 일가를 스케치한 영상들이 특유의 혼란스럽 고 환상적인 몽타주의 재료로 활용됐다.

게이 언더그라운드의 대부 케네스 앵거는 만족을 모른다. 어쩌면 그의 모든 작품은 ‘미완성’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모든 것이 하나의 작품이거나. 그는 변함없이 영상을 해체하고 결합한다. 이미지가 포착한 모든 것을 혼란과 격동으로 몰아넣고, ‘황홀한 피조물들’로 변형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연금술사다.
★★★ 전종혁(영화평론가)

미소니 일가의 완벽 활용 가이드. 지난 시즌 유르겐 텔러의 사진에 등장한 미소니 일가가 케네스 앵거가 연출하는 실험 영상의 재료로 활용된다(지극히 경제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시도다). 겹침과 흩어짐을 반복하는 몽환적 화면이 인상적. 실험적인 영상이지만, 억지스럽지 않게 브랜드의 대표적 이미지와 하나로 직조되는 인상적인 경험이다. ★★★★ 이화정(<씨네21> 기자)

미국 실험영화계의 거장이자 이 세상의 관습, 편견, 전통, 침묵, 위선과 맹렬히 싸우는 게이 감독 케네스 앵거가 미소니가와 또 한 세계를 구축했다. 하나의 이미지 혹은 사운드가 다른 이미지들 혹은 소리들로 변형, 해체, 연결되는 순간들을 주목하길. 어느 특정 장면이 아니라, 그 움직임의 리듬과 감흥이 흥미롭다. 구체적인 상품 광고라기보다는, 미소니적 세계에 대한 감독의 상상력을 추상적이고 지적으로 형상화했다. ★★★ 남다은(영화평론가)

2. 르윗의 [The Film]
틸다 스윈튼과 프링글 오브 스코틀랜드의 광고용 단편 작업을 하기도 했던 사진가 라이언 맥긴리가 이번엔 국내 브랜드 르윗 캠페인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모델 애비 리 커쇼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결말이 자살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비트 강한 리듬, 어딘가로 달려가는 모델, 그리고 강렬한 빛, 스모그와 옥상, 담벼락, 열쇠등이 영상에 포착된다. 이 영상의 소재나 기호들은 너무나 친숙하다. 옥상에서 모델이 뛰어내리는 순간을 여러 번(다양한 의상) 포착한다는 것 말고는 새로운 게 없다. 그러나 ‘자살과 패션’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항을 하나의 과정으로 접목시킴으로써 상식의 틀을 깨뜨린다는 묘한 쾌감은 분명 있다. ★★ 전종혁

라이언 맥긴리를 규정하는 꿈틀거림은 과연 어디로? 물론 성벽을 힘겹게 기어오르던 틸다 스윈튼과의 작업에서 보여준 에너지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애비 리 커쇼는 예쁘기 그지없고, 상업화된 광고를 받아들일 준비도 얼마든 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이건 아쉽게도 맥 빠진 재활용 수준에 그쳐버렸다. 옷 팔려고 자살을 활용했다는 비판을 들으려면 이보단 더 나갔어야 했다. 적어도 띠어리의 정지된 컷을 통해 보여준 활력 정도라도 말이다. ★★★ 이화정

자살이라는 소재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는데, 글쎄, 그런 담론이 나올 만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단편영화라기보다는 사진을 엮어 만든 광고처럼 보인다. ★★ 남다은

3. 디올의 [Lady Blue Shanghai]
데이비드 린치가 연출을 맡은 는 마리옹 코티야르와 상하이, 그리고 푸른색 디올백이 주연인 단편이다. 코티야르는 호텔 객실에서 낯선 가방을 발견한 뒤 실제인지 아닌지 모를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의 마법사는 데이비드 린치다. 그 이름만으로 설명이 필요 없는 존재! 린치는 디지털 시대로 넘어간 이후에도, 변함없이 사운드의 힘에 의존한다. 늘 평범한 것을 기괴한 비밀로 가득 차게 만드는 것은 그의 무의식(붉은 방)과 과잉으로 꿈틀거리는 사운드다. 그저 난해한 빛과 그림자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주장이 믿기 어렵다면 눈을 감고 ‘귀’로만 들어보자. 미스터리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 전종혁

상하이 동방명주와 푸른색 디올백은 데이비드 린치가 접수하는 순간, 예측 불허한 무엇이된다. 오리엔탈리즘으로 치장된 호텔의 복도에서 <화양연화>풍의 애틋한 로맨스를 유추하는 건 마리옹 코티야르가 문을 열기 직전까지다. 호텔 방 안, 푸른색 디올백이 불러오는 공포는 곧 린치의 영화임을 알리는 서막이 된다. 디올백이 곧 사랑의 징표로 작용한다는 결말은 싱겁기 그지없지만, 그 과정의 오묘함엔 이견을 제기하기 어렵다. ★★★★ 이화정

데이비드 린치는 세상의 형체를 신경증적으로 일그러뜨린 다음 상투적인 사물을 기괴하게 만들어 우리를 두려움과 호기심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데 천재적이다. 하얀 연기 속에서 등장하는 푸른 디올백, 그걸 낯설게 쳐다보는 마리옹 코티야르의 얼굴, 거기 부유하는 초현실적 사운드, 내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기억의 출몰. 디올백을 이렇게 공포스럽게, 그러나 더없이 매혹적이고 에로틱한 예술품으로, 언젠가 내가 소유했을지 모를 아련함으로 그 누가 형상화할 수 있었을까. 디올 측은 린치에게 백번 고마워할 일이다. ★★★★★ 남다은

4. 샤넬의 [Bleu de Chanel]
샤넬의 남성용 향수 ‘블루 드 샤넬’을 위해 거장 마틴 스코시지가 완성한 광고 영화. 기자 회견 중이던 가스파르 울리엘이 문득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모종의 결단을 내린다는 내용을 감각적인 푸른 화면에 담았다.

<블루 드 샤넬>의 푸른 영상보다 더 감각적인 것은 음악이다. 마틴 스코시지 하면 화약 냄새 풍기는 필름 누아르라고? 천만의 말씀. 스코시지는 진정한 음악영화의 대가다(<노 디렉션 홈>, <샤인 어 라이트>). 음악영화에 대한 애정을 증명이나 하려는 듯 뮤직비디오 스타일을 차용했는데 베테랑의 원숙함이나 진가를 보여주기엔 시간이 다소 짧았다. 그저 광고의 효율적인 목적에 충실할 뿐. ★★ 전종혁

단순히 오감에 의해 향수를 판단하려 들지 마라! 마틴 스코시지는 향수 이전, 남자의 기억에 오롯이 각인된 과거의 사랑을 파헤친다. 가스파르 울리엘의 남성적이면서도 오묘한 마스크, 마틴 스코시지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푸른 영상이 이 수수께끼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기억과 정신이상 사이에서 해답을 찾아야 했던 디캐프리오(<셔터 아일랜드>)의 광고버전쯤. 그러니, 화면에서 말해지지 않은 부분을 더 찾고 구하게 만드는 가장 영화적인 형태의 영상. ★★★★ 이화정

블루 톤의 화면 속에 담긴 이 우아한 광고에서도 거장의 영화적 야심은 흐른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블로우 업>의 한 장면에 대한 오마주도 있고, 전체적으로 과거의 영화적 공기에 대한 향수가 빠른 리듬감으로 펼쳐진다. 무엇보다 섹시한 배우 가스파르 울리헬이 기자회견장을 떠나며 내뱉는 쿨한 선언, “더 이상 당신들이 기대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어.” 이 멋진 반항아의 허세. 역시 마틴 스코시지. ★★★ 남다은

바네사 브루노의 [Day for Night]
사진, 영상, 디자인 등에서 전방위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스테파니 디 주스토가 배우 루 드와이용, 모델 발렌타인 피욜 코디어와 함께 바네사 브루노 캠페인을 위해 완성한 영상. 낮과 밤이 교차하고 두 명의 소녀가 만나는 과정을 몽환적인 화면에 담았다.

스테파니 디 주스토가 봄/여름 시즌용으로 찍은 경쾌하고 발랄한 와 비교하면, 어딘가 묘하게 짝패를 이룬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감정이 샘솟는 영상이다. 밤과 낮, 이미지와 사운드의 조화(동시에 충돌)가 감정의 분출을 이끈다. 감각적이라기보다는 대기를 흡입하듯 섬세하고 뭔가 조심스럽다. ★★★ 전종혁

바네사 브루노를 정의한다면? 스테파니 디 주스토가 연출한 3분 16초의 영상이 답이 될 것이다. 특정 제품에 대한 언급 대신, <르 필름> 시리즈는 바네사 브루노의 아이덴티티를 전한다. 그건 루 드와이용의 꾸미지 않은 어쿠스틱 선율일 수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미세한 움직임 일 수도 있다. 세 편의 옴니버스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섬세하게 비주얼화한다. 낯간지러운 감성에 그치는 대신, 이 짧은 영상이 브랜드에 봉사할 수 있는 이유다. ★★★★★ 이화정

라파엘전파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어>가 환생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혹은 <빨간머리 앤>의 앤과 다이애나의 현대 버전이라고 할까. 마치 흐드러진 버드나무같이 보이는 소녀들의 생명력, 원시적이고 자유로운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이들을 나무, 호수, 바람처럼 자연의 일부로 다룬다. 신선하고 도전적이다. ★★★★ 남다은

샤넬의 [Shopping Fever]
샤넬의 수장인 칼 라거펠트가 직접 연출한 짧은 영상. 라는 가상의 영화 예고편 형식을 취했다. 애비 리 커쇼와 드리 헤밍웨이가 부유한 쇼퍼홀릭을 밥티스트 지아비코니가 벨보이를 연기한다.

‘Shopping Fever’라는 환상적인 제목을 생각한다면 칼 라거펠트의 영상은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침대에 가득한 샤넬 쇼핑 백으로 콩트 느낌을 살리려고 했으나 유머도 그렇고, 이렇다 할 포인트가 없는 게 아쉽다. 만약 후보가 라거펠트가 만든 ‘Remember Now’였다면 별 4개를 기꺼이 바쳤다. 펠리니나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연상(오마주!)시키는 놀라운 장면들은 황홀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 이탈리아로 돌아간 듯. 전종혁

샤넬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호텔에 가득한 샤넬 쇼핑백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뛰고 숨이 막혀올 여성들이 널린 걸. 영상은 단순하기 그지없지만, 어쨌든 칼 라거펠트는 목적의 98%는 완수한 셈이다. 꽃미남 벨보이 밥티스트 지아비코니는 샤넬을 향한 순수한 집착과 열병에 숨통을 틔워줄 2%의 여유 정도. ★★★ 이화정

그냥 예쁜 바비 인형들을 데리고 비싼 인형놀이를 한 것 같다. 뭐, 그것도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 위대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작품이니까. 남다은

디올 옴므의 [Un Rendez-Vous]
<셜록 홈즈>의 성공으로 입지를 회복한 가이 리치가 주드 로와 함께 제작한 디올 옴므의 향수 광고용 단편. 향기를 실마리로 삼아 서로를 찾으려는 남녀가 영상 내내 팽팽하고 섹시한 긴장감을 주고받는다.

가이 리치는 지독할 정도로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수다를 선호한다. <셜록 홈즈>의 수다스런 주드 로나 권투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떠올린다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디올 옴므의 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다. 가이 리치가 이런 느낌을 추구하다니? 그가 만들어낸 광고는 고풍스러우면서도 과도하다는 점에서 다소 오페라스럽다. 인공적인 세트 위에 떠 있는 모던이여! ★★ 전종혁

‘어떻게 날 알아볼 건데?’라는 질문을 향한 가장 섹시한 대답은? 바로, 냄새다. 가이 리치의 <랑데뷰>는 단 하나의 냄새를 찾기까지 건넬 수 있는 남녀 간의 오묘한 대화를 좇는다. 낯선 여자와의 통화 내내, 시중을 받으며 수트를 갖춰 입는 주드 로의 동작 하나하나가 이 은밀한 만남에 긴장을 더한다. 알고 모르고를 떠나 결국 중요한 건 그들이 곧 알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가이 리치 특유의 감각적인 편집과 카메라 워크가 이 긴장을 향한 방아쇠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 이화정

가이 리치의 초기작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현란한 편집과 넘치는 대사들, 알고 보면 두텁지 않은 이야기를 굳이 미로처럼 만든 설정들. 분명 겉멋이 있는 감독이다. 이 단편도 그런 과잉의 절정이다. 주드 로의 목소리, 웅장한 음악, 여인의 관능미. 아무튼 껍데기만큼은 상투적인 감성과 화려함으로 가득한데, 이상하게도 싫지 않다. 특히 그런 허세가 철철 흐르는 마지막 장면은 넋 놓고 거기에 젖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 남다은

꼼데가르송의 [Wonderwood]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계에서 남다른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퀘이 형제가 꼼데가르송의 향수 ‘원더랜드’를 3분 남짓한 단편으로 표현했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숲을 사랑하는 남자와 그가 집착하는 향기가 기괴하면서도 환상적인 영상 속에 그려진다.

오호, 마에스트로! 또 탄성이 나오는 작품을 만드셨군요. 솔방울 하나만 봐도 감동입니다! 퀘이 형제의 애니메이션은 늘 기이하고 상징적이면서 강렬한 이미지를 무기로 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단편에서 상상력을 발산하기에 적합하다. 는 트집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비주얼적 완성도를 자랑한다. 퀘이 형제는 작은 우화를 통해 늘 자신만의 세계관(아니, 우주관!)을 창조한다. ★★★★ 전종혁

숲의 향을 말하자면, 대개는 나뭇잎을 논하려 든다. 퀘이 형제는 다르다. 그들은 나무의 잎이 아니라, 나무의 나이테까지 꿰뚫어보려 한다. 나무를 사랑한다고 명명하지만, 그래서 이를 지켜보는 남자의 눈은 경이보다 공포에 더 가깝다. 의 향은 그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진짜 숲의 향일 것 같은 착각을 선사한다. 기괴한 연출가, 쌍둥이 형제 퀘이라서 줄 수 있는 색다른 영상. ★★★★ 이화정

천재적인 쌍둥이 애니메이션 감독, 퀘이 형제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숲을 사랑한 자’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을 보는 동안, 누구든 숲의 향을 맡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힐 것이다. 푸른 잎이 아니라 나무 그 자체의 향. 고요하지만 뭔가 비밀을 감춘 듯한, 싱싱하지만 어딘지 죽음의 메마름도 내재한 신비로운 향. 이 작품은 시각에서 촉각으로 그리고 후각으로 우리의 감각을 모두 열어놓는다. ★★★★ 남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