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반지를 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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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처럼 여자 마음을 잘 읽어내는 디자이너, 타쿤과 대화를 나눴다. 화제의 중심은 여자를 더욱 여자답게 만드는 보석, 바로 진주에 대해서였다.

사슴처럼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타쿤 파니치굴은 인터뷰장에 들어서자마자 두 팔을 벌려 에디터를 반갑게 포옹해주었다. 선물로 가져간 새로운 로고의<WKorea>와 컬렉션 부록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혁신적인 에디토리얼을 만드는 더블유의 노력에 자신 역시 늘 자극을 받는다는 말도 보탰다. ‘나, 이 사람과 10년지기 사이였나?’라는 기분 좋은 착각이 현재 가장 주목받는 젊은 아시아계 미국인 디자이너를 인터뷰한다는 긴장을 단숨에 풀어버렸다.

타쿤 파니치굴은 그런 사람이다. 반짝이는 눈과 열린 심장으로 모든 이를 대하는 긍정적인 디자이너. 타쿤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데는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가 그의 의상을 입고 공식석상에 자주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패션계의 퍼스트레이디인 안나 윈투어의 아낌없는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겠지만, 이렇게 거물급 인사들이 그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 이유는 분명히 ‘타쿤식의 패션’ 때문이다. 지적이고 세련된 실루엣과 클래식한 패턴 위에 혁신적인 소재와 프린트로 동시대적 감성을 표현한 드레스는 타쿤을 정의하는 시그너처다. “과거의 의상을 존중하지만, 그저 빈티지가 아닌 모던한 요소를 표현하고자 합니다. ‘타임리스(Timeless)’가 제가 디자이너로서 변치 않고 가져가고자 하는 신념이죠.”

타쿤의 컬렉션을 더욱 독특하게 만드는 주요 요소는 날카로운 안목으로 선별한 최상급의 소재, 그리고 그 소재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센스다. 일례로 오간자와 실크 소재의 드레스 위에 뱀피 같기도, 혹은 벽지 같기도 한 프린트를 사용한 이번 봄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타쿤은 자신의 몸보다 커다란 부피의 천을 몽땅 집에 가져와 마음에 드는 표면감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세탁기에 돌리고, 말리고, 두드리고, 다시 세탁기에 돌리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한다. 힘들었다고 했지만, 그 표정은 이 모든 과정이 재미있어 죽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전통의 일본 진주 주얼리 브랜드, 타사키와의 협업을 흔쾌히 진행한 이유 역시 ‘진주’라는 소재가 그의 흥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 진주는 더없이 여성스러운 보석입니다. 남자가 진주 주얼리를 하진 않잖아요. 그간 크게 변형이 없었던 클래식한 진주도 얼마든지 젊고 위트 있으며, 건축적인 멋스러움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론 진주의 고급스러움은 그대로 남겨둔 채로.”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다섯 개의 진주가 직선의 패널 위에 세팅된 반지다. 이 반지는 수많은 카피캣을 양산할 정도로 화제에 오르며 타쿤의 재능이 단지 옷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 진 주얼리의 매력은 그걸 착용한 여자 특유의 애티튜드가 더해져야 훨씬 아름다워져요. 귀고리를 손으로 살짝 매만진다거나, 반지를 낀 손으로 물잔을 들어올리거나 할 때 말이죠.”

한쪽은 진주, 다른 한쪽은 뾰족한 스터드 모양으로 만들어져 앞뒤 어느 편으로도 착용할 수 있는 귀고리는 타쿤이 설명한 ‘애티튜드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대변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그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큰 그릇과 야망을 갖고 있으며 그 이상을 충실히 실현하는 타쿤을, 그저 재능 있는 원더키드로 불러선 안 된다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속에 용암의 뜨거움을 품은 태국산 호랑이 같은 디자이너의 향후 10년간은 흥미롭게 관망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니까.

에디터
패션 디렉터 / 최유경
포토그래퍼
김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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