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속도를 맞추려면 걷거나 뛰어서는 안된다. 전용 제트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생극장’식 질문 하나. 여기 패션쇼를 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있다. 하나는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위태로운 킬힐에 몸을 의지한 채 잘해야 서너 번째 줄에서 보는 방법. 또 하나는 방에서 편안한 파자마 차림으로 웹사이트에 접속해 생생한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프런트로에 앉은 듯 세세하게 쇼를 즐기는 방법. 당신이라면 어떤 방법을 택하겠는가?

두어 시즌 전부터 컬렉션을 실시간 중계하는 브랜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해 얼마 전 막을 내린 2011 S/S 컬렉션에서 정점을 맞았다. 화두의 시작은 버버리 프로섬이었다. 지난 시즌 처음으로 인터넷을 통해 컬렉션 실시간 중계를 한 버버리 프로섬은 이번 시즌에는 아예 고객들이 컬렉션을 실시간으로 보다가 마음에 든 의상을 주문하면 7주이내에 직접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오픈했다. “전통적으로 쇼에 초대받는 사람은 많아야 1천5백 명 정도였다. 디지털기술과 웹사이트로 인해 거대한 글로벌 관객이 우리 쇼의 일부가 되어 에너지와 흥분을 전달해주고 있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매우 자연스러운 단계다” 라는 것이 패션의‘즉각성’ 논쟁에 불을 붙인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설명이다. 버버리뿐이 아니다. 돌체&가바나와 D&G, 프라다는 인터넷은 물론 아이폰 어플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컬렉션을 중계했는데 단순히 캣워크뿐만 아니라 백스테이지, 프런트로에 앉은 셀레브리티의 모습까지 조망하는 거대한 규모였다. 링컨센터로 옮기면서 ‘디지털 패션위크’를 표방한 뉴욕의 경우는 홈페이지를 통해 마크 제이콥스, 마이클코어스, 프로엔자 스쿨러 등 거의 대부분의 쇼를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첨단’에는 그리 친화적이지 않았던 밀란과 파리도 이 대세는 거스르지 못하는 분위기다. 프라다, 질 샌더, 돌체&가바나, 디스퀘어드2, 조르지오 아르마니, 셀린, 루이 비통, 미우미우 등도 이번 시즌 인터넷을 통해 패션쇼를 생중계했다.

실시간 컬렉션 중계는 곧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한 ‘실시간 평가’를 동반한다. ‘이번 시즌의 영감은 무엇이다, 몇 시즌 전의 어떤 브랜드를 카피한 것 같다, 몇 번째 룩의 코트를 주문해야겠다’는 식의 즉각적인 평가가 타임라인을 어지럽게 장식한다. 이렇듯 매장에서 실물을 보고 판단하기 이전에 컬렉션의 품질이 결정되어버리는 것은 즉각적인 패션 마케팅의 함정이다. 패션계에는 그 위험성을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톰 포드는 “실시간 패션이라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게 왜 필요한지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일침을 날렸다. 이번 시즌 최고급 여성복 컬렉션을 오픈한 그는 일부 초대받은 에디터에게만 ‘물’을 ‘눈’으로 보는 기회를 제공했을 뿐, 어떤 사진 촬영과 기사 작성도 정중하게 거절했다. 실시간 패션에 대한 찬반은 온전히 수용자가 판단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고 말만 많은 곳에서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오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드물었다. 아무리 빠르게 돌아간다 해도 ‘시간’과 ‘침묵’의 럭셔리함은 깎아 내릴 수 없는 가치다. 잊기 쉽지만, 잊어서는 안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