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지 않는 문화 게토, 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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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SNS의 시대에 우리는 끊임없이 GPS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알리며, 주변에 있는 온라인 친구를 찾는다. 이런 지금 세월과 문화를 깨알같이 쌓아온 강북의 동네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당신이 어디서 노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것.

홍대 해가 지지 않는 문화 게토

“여기 홍대 클럽이 어디예요?” 주차장 골목에서 마주친 어느 20대 여자아이가 한껏 멋을 낸 차림에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길을 이리저리 짚어 M2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 여자아이의 내비게이션에 무작정 ‘홍대 클럽’을 목적지로 입력한 손가락은 무슨 충동으로 움직인 걸까? 아마 홍대에 오면 금요일 밤의 열기를 가장 뜨겁게 쐴 수 있으리라는 기대일 것이다. 삼거리 포차와 바이더웨이 사거리를 따라 포진한 젊은 사람들, 새벽 3시에도 저녁 8시처럼 북적이는 인파, 수노래방 유리창 안에서 자신을 놓은 서울의 청춘들…. 밤의 관광객들은 이런 걸 기대하고 불빛에 끌리는 날벌레처럼 홍대로 모여든다.

낮 시간의 홍대는 한결 말쑥한 얼굴로 내숭을 떤다. 주간에 홍대에 오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장소는 카페와 맛집들이다. 서울의 먹을 만한 장소를 소개해놓은 온라인 서비스인 윙버스 사이트에는 홍대 지역의 맛집이 강남역(119), 압구정(204)을 누르고 2백44곳이나 실려 있다. 강남은 대체로 가게 면적이 넓고 강북은 좁다는 특성이 반영된 숫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업소 면적을 감안하더라도 실제로 홍대의 골목 사이를 거닐어보면 카페들이 과포화 상태에 이른 것을 목격하게 된다. 한 골목을 따라 한 집 다음 또 한 집, 빈틈없이 들어찬 카페들은 세계 최고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밀도를 자랑하며 온갖 스타일을 전시한다. 하지만 이 밀도 높은 가게들 가운데는 썩 괜찮은 덮밥을 6천원에, 제대로 된 이탤리언 코스 요리를 3만8천원에 먹을 수 있는 공간이 포함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로수길이나 청담동에서 놀다가 홍대로 옮겼을 때 체감 물가는 70%선으로 내려간다. 그래서 주머니는 가볍지만 감도 있게 놀고 싶은 사람들에게 홍대는 유혹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홍대를 저렴한 버전의 가로수길이나 젊은 청담동으로만 만들지 않는 건 홍대만의 자생적인 문화다. 파인 아트와 디자인이 발달한 홍익대학교의 특성, 라이브 클럽을 중심으로 한 뮤지션들과 음악 애호가들의 발걸음은 일찍부터 홍대의 자유분방하고 예술 친화적인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지난해 말 서교동에서 상수동으로 이전한 이리카페는 가장 홍대다운 카페라 할 만하다. 여기를 정의하는 데는 빈티지한 인테리어나 서가에 빼곡한 예술 서적만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낭독회나 작가와의 대화가 열리며, 기타나 하모니카, 우쿨렐레 등의 악기를 꺼내놓고 자유롭게 연주하는 뮤지션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건 이곳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만 가능할 테니까. ‘당인리 커피공장’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카페 앤트러 사이트 역시 전시와 공연에 두루 활용된다. 흥미로운 것은‘홍대 인디’로 분류되지 않은 오버그라운드의 메이저 뮤지션들 역시 홍대의 작은 공간에서 리스너들과 직접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앤트러사이트에서는 김동률과 이상순의 ‘베란다 프로젝트’의 작은 공연이 열렸고, 정재형은 카페이면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기도 한 ‘제너럴 닥터’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벌이기도 했다. 홍대에는 공연장이나 클럽의 형식을 벗어나 친밀하게 소통하는 쇼케이스에 유연하게 문을 열어주는 공간, 그리고 이를 활용할 줄 아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공존한다.

1. 상수역에서 당인리발전소 일대로 홍대 카페의 중심을 옮겨놓은 이리카페. 2, 9. 개성 있는 출판물을 판매하며 낭독회나 잡지공방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작은 서점 유어마인드. 3. ‘삼거리포차’앞에 낭만적인 배경 음악을 선사해온 음반가게 레코드 포럼. 4, 7. 홍대 거리 전경. 5, 13, 15. 뮤지션 싸지타 부부가 운영하는 서프 바 썬샤인. 6, 11. 아티스트 소규모 출판물을 다루는 책방 더 북 소사이어티. 8, 14. 환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카페 겸 동네 병원 제너럴 닥터. 10. 미대 중심의 홍익대학교 학풍은 홍대 앞에도 특유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12. 낡은 공장 내부를 멋있게 살린 카페 앤트러사이트.

1. 상수역에서 당인리발전소 일대로 홍대 카페의 중심을 옮겨놓은 이리카페. 2, 9. 개성 있는 출판물을 판매하며 낭독회나 잡지공방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작은 서점 유어마인드. 3. ‘삼거리포차’앞에 낭만적인 배경 음악을 선사해온 음반가게 레코드 포럼. 4, 7. 홍대 거리 전경. 5, 13, 15. 뮤지션 싸지타 부부가 운영하는 서프 바 썬샤인. 6, 11. 아티스트 소규모 출판물을 다루는 책방 더 북 소사이어티. 8, 14. 환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카페 겸 동네 병원 제너럴 닥터. 10. 미대 중심의 홍익대학교 학풍은 홍대 앞에도 특유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12. 낡은 공장 내부를 멋있게 살린 카페 앤트러사이트.

썬샤인
뮤지션 싸지타 부부가 운영하는 서핑 바. 벽면에는 파도를 타는 사람들의 영상이 흐르고, 80년대 주택구조를 그대로 살린 내부 공간에는 느긋한 여름 음악이 넘실댄다. 몇 잔의 칵테일에 문득 계단을 내려가면 해변이 펼쳐져 있을 듯한 기분을 선사하는 곳. 상수역에서 합정 방향 큰 길가, 새로 이전한 레게 치킨 2층에 있다.02-338-3438

이리카페
가장 홍대다운 아우라를 풍기는 카페. 서가에는 예술 서적이 가득 꽂혀 있고, 예고 없이 즉흥 연주를 벌이는 뮤지션들의 회합을 바로 곁에서 목격할 수 있다. 커피 프린스 골목에서 이전해오면서 한 해 전까지만 해도 허름한 뒷골목이던 상수, 당인동 일대를 가장 떠오르는 카페 골목으로 바꾸어놓았다.http://www.yricafe.com

앤트러 사이트
당인리 발전소 앞의 오래된 공장을 개조한 카페. 1층에는 커피를 볶는 로스팅 기계를 두었고, 2층에는 널찍한 공간에 천장을 드러내고 내벽을 남겨 멋지다. 각종 전시와 공연, 프레젠테이션 등 흥미로운 이벤트가 종종 벌어지는데 베란다 프로젝트와 톰스 슈즈 등이 여기를 거쳤으며, 심지어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입시설명회도 열렸다. 02-322-0009

유어마인드
1년 전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해서 3개월 전 오프라인 책방을 산울림 소극장 근처에 냈다. 국내와 해외의 사진, 일러스트, 텍스트를 실은 간행물, 독립출판물, 수집책, 동화, 잡지 등 분야별 도서를 두루 취급한다.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소규모 기획출판을 하거나 잡지 공방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낭독회를 여는 등 재밌는 일 꾸미기를 즐기는 집단이기도 하다.http://www.your-mind.com

더 북 소사이어티
미디어버스가 운영하는 프로젝트스페이스이자 서점. 아티스트북, 디자인, 소규모 출판물을 기획하고 판매하며 작가들의 토크, 낭독회, 전시 등 출판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아티스트들의 티셔츠와 에코백, 콘셉 추얼한 성향의 간행물을 훑어보는 일은 거의 책을 주제로 한 전시를 구경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한다.http://www.the booksociety.org

제너럴 닥터
카페이면서 동네의원인 독특한 공간. ‘왜 병원에 가면 늘 불편하고 주눅이 들까’를 환자의 입장에서 고민하며 인간적인 진료를 펼치기 위해 카페라는 형식을 가져왔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 그리고 보통의 병원이 영업하지 않는 시간에도 상담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최근 한 층을 더 넓힐 정도로 이들의 실험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http://www.generaldoctor.co.kr/

유즈 드 프로젝트
일본의 D & Department를 떠올리게 하는 다용도의 장소. 좋은 디자인을 가진 제품에 제대로 쓸모를 찾아주고 싶다는 취지로 문을 열었다. 연회비 1만원을 내면 자신이 가격을 매긴 중고물품 및 새제품을 위탁판매할 수 있으며 공용 작업실로도 대여가 가능하다. 홍대 정문 맞은편 네스 카페와 스타벅스 사이, 폴 앤 폴리나 오른편 골목.http://www.used project.net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표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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