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몽환적인 판타지가 걷히고 기능적이며 현실적인 옷이 시즌의 주요 테마로 자리 잡은 지금. 많은 디자이너들은 컬렉션의 오프닝 룩으로 코트를 택하며 그 중요성을 천명했다. 스타일의 시작과 마지막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코트는 이번 시즌을 준비하는 첫걸음인 셈이다.

MANISH COAT

바야흐로 코트 시즌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이면 늘 코트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코트 시즌’이라는말이 이처럼 의미심장하게 울리는 건 올해가 역시 좀 특별하다. 지방시와 스텔라 매카트니는 물론이거니와 초유의 관심을 모은 셀린의 피비 파일로까지 컬렉션의 첫 룩으로 일제히 코트를 택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코트들에는 별다른 장식도 없었고, 남성복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매니시했으며, 동시에 어딘가 섹슈얼한 느낌을 풍겼다. 90년대 헬무트 랭과 질샌더에서 출발한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남성복의 패턴과 장식을 차용한 코트들이 이번 시즌 코트의 가장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 대표적으로는 라펠이 좁은 테일러드 재킷을 대거 출시한 캘빈 클라인, 역시 좁은 라펠이지만 여밈을 옆선으로 처리한 스텔라 매카트니, 남성복과 거의 다를 바 없는 더블버튼의 클래식한 테일러드 코트를 만든 지방시 등을들 수 있다. 클로에와 에르메스는 수트 위에 오버사이즈코트를 매치해 매니시한 느낌을 강조했으며, 같은 오버사이즈라도 랑방의 경우는 어깨를 둥그렇게 처리해 여성성을 부여한 케이스. 너무 심심하다 싶으면 버버리 프로섬처럼 어깨 견장이나 금빛 버튼 등 약간의 밀리터리 장식을 더한 스타일도 선택의 여지를 혀줄 것이다.

CAMEL COAT

캐멀코트는 말 그대로 낙타의 모피와 비슷한 황갈색계열의 코트를 총칭한다. 스타일이나 실루엣이 아니라 특정한 색의 코트일 뿐이지만 패션 사전에 등록될 정도로 시대와 트렌드를 불문하고 여성들에게 사랑받아왔기에 코트에 있어서만큼은 검은색보다도 ‘기본 중의기본’으로 꼽힌다. 캐멀코트도 여러 가지 변형을 거쳐왔지만, 역시 부드러운 모직 펠트 소재에 뾰족한 스탠드 칼라나 테일러드 라펠이 있고, 더블버튼보다는 원버튼에 벨트 장식이 있는 무릎을 덮는 길이가 가장 원형에 가깝다. 80년대 이후에는 코트를 시그너처로 하는 몇몇 하우스에서만 간간이 모습을 보이다가 클래식과 미니멀리즘의 귀환과 함께 이번 시즌 캐멀코트가 대거 귀환했다. 클로에에서는 살굿빛이 조금 더 도는 파우더리한 컬러로, 구찌와 마이클 코어스에서는 똑떨어지는 매니시한테일러드 스타일로 변형했고, 3.1필립 림과 타미 힐피거, 아크리스에서는 더블버튼을 사용해 조금 더 캐주얼한 느낌을 부여했다. 사실 캐멀코트는 아주 정갈하게 입거나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부각시키는 편이 정석인데, 아쿠아스큐텀이나 데렉 램,그리고 코트의 명가 막스마라에서 이 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시즌 캐멀코트를 가장 혁신적으로 풀어낸 브랜드는 바로 프라다. 캐멀 코트 위에 광택이 도는 고무처럼 표면을 가공하여 그야말로 완벽히 새로운 캐멀코트를 창조해냈다.

CAPE COAT

디자인만으로 이번 시즌 가장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 의상은 단연 케이프 코트를 들 수 있다. YSL, 지방시, 랑방, 스텔라 매카트니 등 트렌드를 앞서 제시하는 주요 지표가 되는 브랜드에서 지난 프리 컬렉션을 통해 이번 시즌 케이프가 유행할 것이라는 조짐을 내보이긴 했지만, 실제 런웨이에서는 더욱 폭발적인 힘을 냈다. 원래 케이프 코트는 소매가 없이 어깨와 팔을 감싸 헐렁하게 드리운 형태나, 팔만 나올 수 있도록 옆터짐을 준 형태를 말하는 것. 이 사전적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고전적인 형태의 케이프 코트는 글렌 체크를 사용해 신사복의 느낌을 준 폴 스미스, 앞보다 뒷자락을 길게 빼는 형태로 안감을 강조한 닥스 등 영국 브랜드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편 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수트가 주요 아이템으로 떠오른 가운데 테일러드 재킷과 케이프를 결합한 형태의 변형 케이프 코트도 대거 출시되었다. 진동둘레와 옆선을 동시에 터서 팔의 위치를 조정할 수 있게 만든 알렉산더 왕, 케이프 안에 짧은 소매와 긴 소매를 동시에 넣은 YSL, 테일러드 칼라에 얇은 벨트를 매치해 재킷의 간결한 느낌을 더욱 살린 스텔라 매카트니 등이 대표적으로 디자인의 독특함과 재킷의 정중함을 동시에 원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팔을 따로 넣는 부분 없이 완벽한 케이프 형태의 디자인은 지방시와 후세인 샬라얀, 클로에 등에서 찾을 수 있고, 좀 더 독특한 디자인을 원한다면 베이스볼 점퍼 디자인을 응용한 Y-3나 소매를 극히 넓게 재단하여 케이프 같은 느낌을 준 디올과 안 소피-백 등의 컬렉션을 참고할 만하다.

EVENING COAT

중세 암흑기를 모티프로 오트 쿠튀르 수준의 의상을 선보인 알렉산더 매퀸의 유작 16벌. 호화스러운 드레스처럼 보였던 그 작품 중 5벌은 정확히 말하면 코트였다. 누군가에게 코트가 그저 칵테일 드레스 위에 입는 아우터라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코트 그 자체가 이브닝웨어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캐멀 코트, 밀리터리 스타일의 피코트, 몸에 잘 맞는 검은색 모직 코트 등 기본형의 코트를 충분히 갖추었다면 이번 시즌에는 이브닝웨어 대용으로 입을 수 있는 장식적인 디자인의 코트를 세컨드 코트로 갖추길 권한다. 이브닝웨어는 역시 여성스러운 피팅과 장식이 필수라고 생각한다면 고트 퍼로 팔 옆선에 장식을 한 랑방, 유려한 러플을 아낌없이 코트 앞섶에 장식한 발렌티노, 드레이프를 이용해 성숙한 느낌을 준 소피아 코코살라키의 코트가 제격. 허리를 잘록하게 조여 핏&플레어 라인을 만든 니나리치와 비비안 웨스트우드, 알투자라의 코트는 실제 드레스와 거의 흡사한 느낌을 주며, 고급스러운 소재와 독특한 프린트로 화려함을 강조한 다이앤폰 퍼스텐버그, 제이슨 우,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은 캐주얼한 이브닝웨어로 손색이 없다.

KNITTED COAT

미니멀리즘, 아메리칸 스포티즘, 50년대 레이디라이크 스타일, 뉴 보헤미안, 브리티시 헤리티지, 섹슈얼 고딕…. 이번 시즌 트렌드로 거론되는 다양한 주제 속에서 전방위적으로 활약한 주요 소재는 바로 니트다. 단순한 드레스나 셔츠, 카디건 등 기본형 아이템도 많지만 두툼한 짜임의 니트 코트 역시 대거 쏟아져 나왔다.같은 니트 코트라도 컬렉션의 주제에 맞추어 풀어내는방법은 다양했는데 D&G의 노르딕 문양 코트나 샤넬의 컬러풀한 트위드 니트 코트는 벌써부터 다양한 카피캣을 양산하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분위기.겐조미소니,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이세이 미야케는 느슨한 니트 코트로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고,로에베와 막스마라, 니나리치는 무릎 길이에 벨트로 허리선을 조여 레이디라이크 스타일을 강조했다. 한편, 니트와 다른 소재를 믹스하는 경향도 거세다. 높은 허리선의 트라페즈 코트에 가죽 칼라를 덧댄 프라다, 하얀 니트 코트에 소매만 검정 가죽으로 처리한 분더킨트, 모헤어 슬리브리스 코트 위에 마치 니트로 만든 짧은 베스트를 덧입은 듯한 느낌을 주는 프링글 오브 스코틀랜드, 앞 여밈선과 소매 끝단에 밍크 퍼를 덧댄 D&G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