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의 싱글 맨, 니콜라스 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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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ea>의 카메라 앞에 선 니컬러스 홀트,혹은 짜릿하게 가속할 준비를 마친 스무 살의 엔진.

독특한디테일의회색 니트는 Emporio Armani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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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배우들에게 2차 성징은 종종 재앙처럼 닥친다. 대중은 무책임하고 변덕스러운 애견인 같은 집단이어서 꼬마 마법사의 가슴을 수북하게 덮은 털이나 국민 여동생의 눈가에 잡힌 옅은 주름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즉 적어도 쇼 비즈니스의 국경 안에서라면 눈을 즐겁게 해주지 못하는 성장은 퇴행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드물게나마 누군가는 재앙보다 최고 당첨금의 복권에 가까운 변화를 겪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제 막 10대 시절을 마무리한 영국 배우 니컬러스 홀트는 세월로부터 유독 친절한 대접을 받은 사람일 거다. 2002년 작 <어바웃 어 보이>에서 그가 연기한 마커스는 잭 니컬슨처럼 심술맞은 눈썹을 가진 수줍고 왜소한 소년이었다. 왕따 마커스가 초등학교 시절 내내 복수를 꿈꿨다면 그 내용이 TV쇼 <스킨스>와 흡사할지도 모르겠다. 5년새 190센티미터의 대리석처럼 자라난 홀트는이 과격한 틴에이저 드라마에서 여자와 남자 모두의 사랑을 받는 토니 스토넘으로 분해 조숙한 섹스 심벌의 이미지를 얻었다. 디자이너 톰 포드 역시 이 배우를 눈여겨본 수많은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싱글맨>으로 영화 연출에 도전한 그는 니컬러스 홀트에게 주인공 조지(콜린 퍼스)와 팽팽한 성적 긴장감을 나누는 대학생 케니 역할을 맡겼다. 포드가 완성한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화면 안에서 그 호리호리한 젊음은 합당한 퍼즐 조각처럼 보인다.
모두가 그의 외모에 감탄하지만 정작 이 영국 청년에겐 사람들의 열광이 여전히 남의 옷처럼 어색한 눈치다. 소녀들이 사랑하는 건 자신이 아닌 극중 캐릭터라 믿는 그는, 누군가로부터 섹시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외국어로 칭찬을 받은 것처럼 얼떨떨하게 기뻐한다. 물론 우리는 그 반짝거리는 젊음이 초여름보다도 짧게 지나가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시간이 앞으로도 이 배우의 이목구비에 꾸준히 친절을 베풀지는 장담 못할 일이다. 니컬러스 홀트의 가능성에 긴 기대를 품게 하는 건 근사한 콧날보다는 그가 지닌 연기자로서의 태도다. 거쳐온 캐릭터들을 두고 말들이 많은 이들에게 “게이를 연기한다고 게이가 되는 건 아니”라며 선선하게 응수하고, 자신을 동경하는 10대들을 위해선 “작품이 아닌 쇼 비즈니스에 둘러싸이는 건 건강하지 못한 일”이라 조언하는 젊은 배우라면 일단은 믿어볼 만할 거다.지금껏 보여준 것보다 미처 드러내지 못한 부분이 더 흥미로울 스무 살의 니컬러스 홀트와 <WKorea>가 마주 앉았다.

남색 크로커다일 패턴 재킷은 Giorgio Armani, 화이트 셔츠는 Paul Smith, 독특한 질감이 돋보이는 검정 팬츠는 Emporio Armani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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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많이 불편해한다고 들었는데 맞나? 어떤 이유 때문인가?
어, 사실이다. 인터뷰어는 어떤 대화를 나눌지 철저히 준비된 채 약속장소에 도착하지만 난 늘 무방비 상태다. 예상 밖의 질문을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는 일이 약간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미리 대답을 생각할 수 있다면 내 생각을 좀 더 조리 있게 밝힐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아서 아쉽다. 한편으론 인터뷰 영상이나 기사를 후에 다시 보게 되는 것이 두렵다. 굉장히 바보 같은 이야길 했다고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터뷰 외엔 또 어떤 것들이 당신을 불편하게 하나?
많은 사람들이 날 알아보는 것. 마켓처럼 북적대는 곳에 들를 때면 주위의 시선 때문에 좀 민망하다. 촬영장도 아닌데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 같고, 나 때문에 다른 이들이 불편해하진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

사람들이 <싱글맨> 속 본인의 누드 신에 대해서만 물어본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정작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한 장면은 어떤 것이었나?
도입부다. 조지(콜린 퍼스)의 파트너 짐(매튜 구드)은 극중에서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 순간을 조지가 악몽으로 재차 경험하는 장면이 강렬했다. 톰 포드가 연출자로서 남은 러닝타임을 어떻게 이끌지 잘 보여준 신이라고 생각한다.

<싱글맨>은 어떤 이유로 택하게 된 작품인가?
우선 톰 포드가 감독이란 점이 흥미로웠다. 패션에 큰 관심이 없어서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는 그가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포드가 패션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디자이너란 사실을 전해 들은 뒤엔 그런 사람이 만들 영화가 몹시 궁금해졌다. 게다가 줄리앤 무어와 콜린 퍼스가 앞서 캐스팅됐다는 소식 역시 날 흥분시켰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배우들이니까.

이 영화는 톰 포드의 감독 데뷔작이다. 배우에게 그는 어떤 연출자인가? 다른 감독과의 작업과 견줄 때 특별히 다르게 느껴진 바가 있었나?
이미 패션 디자이너로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인 만큼 새로운 도전 역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데뷔작이란 사실이 믿기 어려울 만큼 톰 포드의 디렉팅은 훌륭했다. 굉장히 섬세할 뿐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침착하고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에 그를 감독으로서 신뢰하고 따를 수 있었다. 무척 다재다능한 올라운드 플레이어 같은 사람이다.

지금껏 휴 그랜트부터 가브리엘 번, 케네스 브래너, 콜린 퍼스 등 걸출한 선배들과 작품을 함께했다. 배우가 아닌 감독의 입장이 되어 지금껏 공연한 인물 중단 한 명을 캐스팅해야 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나?
한 명만 택하는 건 자신 없다. 각자가 굉장히 다른 색깔의 배우니까. 예를 들어 콜린 퍼스에게선 섬세한 감정 표현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고 본인이 감독이기도 한 케네스 브래너는 연출에 관한 아이디어를 많이 나누어주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작품과 역할의 성격을 먼저 분석한 뒤, 가장 적절한 배우에게 은밀하게 연락을 할 것 같다. 물론 그분들이 나 같은 감독과 일하고 싶어 할지 모르겠지만.

패션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적다고 앞서 이야기했다. 옷이나 구두를 사는 일은 마지못해 치르는 의무에 가깝나?
런던에서 차로 2시간 거리 밖의 작은 동네에서 지금껏 가족과 함께 산다. 유행에 밝은 환경이 아니라 나 역시 패션에는 무덤덤하게 지내왔다. 쇼핑을 썩 즐기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싫어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내겐 슈퍼마켓에 가서 필요한 식료품을 집어오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배우로서 차려입어야 할 경우가 종종 있을 거다. 수트는 잘 입지 않나?
톰 포드에게 수트 3벌을 선물로 받았다. 중요한 날, 혹은 특별한 장소에 갈 때 입곤 한다. 그 옷을 입으면 내 자신이 굉장히 멋진 사람이 된 것 같다.

지금껏 자신을 위해 구입한 가장 사치스러운 물건은 어떤 것이었나?
멀버리에서 구입한 가죽 재킷과 큼직한 가방. 굉장히 널찍해서 이것저것 쑤셔넣고 다닌다. 하지만 내 나이에 반드시 비싼 물건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스킨스>의 토니나 <싱글맨>의 케니는 조숙한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들이었다. 사람들이 당신을 ‘섹시하다’고 평가하는 데 이제는 익숙해졌나?
니컬러스 홀트가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아마도 <스킨스>의 토니를 겹쳐보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토니는 나와 굉장히 다른 인물이기 때문에 누군가 드라마에서 무척 섹시해 보이더라고 말해줘도 딱히 나에 관한 칭찬으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물론 그런 이야길 듣는 일이 결코 언짢은 건 아니다. 내게서 새로운 모습이 엿보인다는 뜻이니까. 이런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 하하.

10대 시절의 니컬러스 홀트가 대담한 토니 스토넘과는 달랐다는 걸 익히 알고 있다. 본인의 실제 모습과 가장 가깝다고 느낀 배역은 무엇이었나?
나와 닮았다고 생각한 캐릭터는 없다. <스킨스>의 토니처럼 극단적인 10대를 보내지도, <타이탄>의 유세비오스처럼 전쟁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니까. 평상시의 나는 대단히 느긋한 성격이다. 하고 싶지 않은 건 절대 하지 않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도 즐긴다. 이게 나에 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이 아닐까 싶다.

10여년 전만 해도 순탄하게 성장하는 아역 스타가 드물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당신이나 다코타 패닝처럼 반가운 예외가 많아진 느낌이다. 그간 배우로 일하면서 어떻게 나이 어린 마약중독자나 전과자가 되는 걸 피할 수 있었나?
가족과 친구들이 큰 의지가 됐다. 앞서 말했듯 런던 시내가 아닌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일과 일상을 적절히 분리할 수 있었다. 유명해진 뒤에도 꼬마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은 날 예전과 똑같이 대한다. 유혹에 심각하게 흔들린 적은 없다. 타고난 성격도 도움이 됐을 테고 촬영장 밖에선 줄곧 평범한 소년 니컬러스 홀트로 지내왔기 때문일 거다. 큰 도시에서 살았다면 사정이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차기작 계획이 궁금하다. <매드맥스> 4편에 해당하는 <퓨리 로드(Fury Road)> 출연은 확정된 것인가?
그렇다. 조지 밀러 감독이 다시 한번 시리즈에 복귀해 만드는 작품이고 난 눅스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다음 주부터 영화 촬영을 위해 1년 가까이 호주에 머물 계획이다. 처음 가보는 나라라 무척 설렌다. 수상 스포츠가 대중화되어 있다고 해서 촬영 틈틈이 시도해볼 생각이다.

처음 니컬러스 홀트란 배우를 알린 <어바웃어 보이>가 개봉한 지 8년이 지났다. 만약 지금의 당신이 촬영장에서 대기 중이던 당시의 12살짜리 소년 니컬러스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 같나?
솔직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지난 8년간 변화가 많았기 때문에 12살 무렵의 내가 어떤 소년이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우선은 열심히 일하라고 조언하겠다. 그러곤 꽤 오랫동안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다.

검은 라인이 감각적인 화이트 셔츠는 Dior Homme, 캐시미어 소재의 검정 팬츠는 Louis Vuitton, 가죽 소재의 검정 슈즈는 Dior Homme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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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소재의 버건디 컬러 니트는 Rag & Bone, 화이트 셔츠는 Emporio Armani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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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하게 빛나는 재킷은 Lanvin, 화이트 셔츠는 Richard James, 캐시미어 소재의 검정 팬츠는 Louis Vuitton, 갈색 레이스업 앵클부츠는 Kenzo Homme 제품. 롱코트는 니컬러스 홀트 본인의 것.

은은하게 빛나는 재킷은 Lanvin, 화이트 셔츠는 Richard James, 캐시미어 소재의 검정 팬츠는 Louis Vuitton, 갈색 레이스업 앵클부츠는 Kenzo Homme 제품. 롱코트는 니컬러스 홀트 본인의 것.

에디터
김석원, 최진우
포토그래퍼
Paul Farrel
스탭
Tomihiro Kono, Alex Babsky
기타
포토그래퍼 어시스턴트: Mike McCartney, Simon Tang, James Kemenoe/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Shin Eun Kyung, Kim Yun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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