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스타일이 대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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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스타일이 대세는 아니다. 하지만 실용주의적이고 간결한 현재의 패션 경향은 분명 90년대의 아메리칸 패션과 맞닿아 교감하고 있다. 지금 열리고 있는 두 개의 전시 <아메리카 여성>과 <아메리칸 하이 스타일>은 이를 뒷받침한다.

90년대 사람들이 모두 아메리칸 스타일에 열광할 때도 나는 그 매력을 잘 알지 못했다.오히려 시니컬하고 창의적인 유럽 스타일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최근 나는 또 다른 ‘미’에 눈뜨게 되었다. 바로‘성숙미’와‘건강미’다. 특히 비욘세, 할 베리, 크리스티 털링턴, 그리고 재키 케네디 등 미국 여자들이 지닌 ‘건강미’가 정말 아름답게 느껴진다.건강한 여자의 얼굴에선 그 내면에서부터 스며나오는 어떤 빛이 있다. 그녀들의 얼굴은 늘 반짝인다. 제아무리 섹시하고 세련되어도 건강함이라는 강력한 에너지를 이길수 있는 아름다움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이러한 매력에 눈뜨게 된 것은 나이가 들고가치관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의 패션 트렌드가 1990년대의 아메리칸미니멀리즘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지금, 뉴욕에서는 이러한 패션 경향에 맞춰 아주 시의적절한 전시가 열리고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아메리카 여성: 민족성을 입다(American Woman: Fashioning a National Identity)>전을, 그리고 브루클린 미술관에서는 이와 협업으로 <아메리칸 하이 스타일: 컬렉션을 입다(American High Style: Fashioning a National Collection)>전이 진행되고 있다. 우선 <아메리카 여성: 민족성을 입다>전은 미국 여성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점인 1890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국 패션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전시는 1890년 전형적인 타입의 미국여성 상속인으로부터 시작해 발랄한 깁슨 걸(Gibson)로 이어지는데 이들은 러플 장식의 화이트 셔츠에 롱스커트를 입고 테니스와 골프를 치고 있는 모습으로 전시되었다. 그것은 매우 모던했다“. 여성의 자유를 얻어내도록 한 가장 큰 원천 중 하나가 스포츠였다. 1895년의 셔츠 드레스와 사이클링 스커트는 여성들이 남성의 옷장에 눈을돌리기 시작한 첫 증거다”라고 큐레이터 앤드루 볼튼은 설명한다. 또 그는“ 깁슨 걸은 섬세하지만 어딘가 톰보이스러운 느낌이 있다. 실외 활동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면은 현재 미국의 스타일과도 연관이 깊다”고 말한다. 그 이후엔 자유와 해방의 신선하고 경박한 버전인, 여성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깬 애국자들과 페미니즘의 씨앗을 뿌린 참정권 운동가들이 등장한다. 이어 1920년 등장한 신여성들은 조금 더 편안한 옷을 입는데 이브닝웨어조차도 훨씬 심플해진다. 당시 인기를 끈 것이 바로 잔느 랑방의 파스텔 톤 드레스다.

1940년대 할리우드의 스크린 여신은 브루클린 미술관의 2만5천 점의 컬렉션을 통해보여준다“. 유럽에서 미국 스타일을 선망하는 풍조가 생겼고, 1890년 이후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해온 미국 여성들이 1940년대에 이르러서는 완성된 미국적 스타일을 보여줬다.” 앤드루 볼튼은 1940년대를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스크린의 여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전시관에서는 조앤 크로포드, 마를렌 디트리히,그레타 가르보, 리타 헤이워스의 영화가 상영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1세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디지털관에서는 세레나 윌리엄스부터 미셸 오바마까지 영향력 있는여성의 모습을 프로젝터를 통해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이 모든 역사는 아메리칸 아이콘이기도 한 새라 제시카 파커의 달콤한 목소리로 오디오를 통해 들을 수 있다.반면 브루클린 미술관의 <아메리칸의 하이 스타일:컬렉션을 입다>전은 큐레이터 장글리어 리더가 미국과 프랑스의 하이 패션을 다룬 전시. 초기 뉴욕 사교계의 모습부터 파킨, 워스, 두셋 등 파리 하우스의 패션 리더들, 또 그 당시 뜨기 시작한 미국 디자이너 찰스 제임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당시 영화제작자이자 연출가인 사무엘골드윈은 코코 샤넬에게 글로리아 스완슨, 이나 클레어 등을 위해 디자인해달라며 수백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었다. 그리하여 코코 샤넬은 할리우드로 왔지만 그녀의 의상은 너무나 섬세했고 그녀의 강인한 성격은 배우들의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미국 내의 디자이너들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전시에서는벨 에포크, 리타 리디그 등의 옷장에서 가져온 귀중한 의상들도 감상할 수 있다.모든 시기의 여성들이 모여서 지금의 아메리칸 스타일을 형성했다는 것을 강조하는,이 전시는 그저 패션이 아닌 미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갈라 파티에서 오프라 윈프리와 스폰서 갭의 디자이너 패트릭 로빈슨과 함께 호스트로 나선 안나 윈투어는 이 전시를 돌아본 후 이렇게 말했다“. 정말 모던하다. 신여성들이 요즘 시대의 드레스를 입고 있어도 될 법하다.”

우리는 이 두 거대한 전시를 통해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낼 수 있다. 비록 이전시는 거기까지 닿고 있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우선 이 전시에 등장한 여러 시대의인물을 통해 우리는 삶의 원형을 보여주는 현대의 인물들을 유추해낼 수 있는데 예를들면 예전의 상속녀들은 지금의 에이린 로더, 이반 카 트럼프고, 애국자는 미셸 오바마며, 당당한 깁슨 걸은 로렌 허튼과 할 베리 등이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계여신의 모습은 마릴린 먼로나 앤젤리나 졸리라고 보면 된다. 또 신흥 부유층을 위한 디자이너는 오스카 드 라 렌타, 신여성을 위한 디자이너는 랄프 로렌, 스포츠웨어와 실용주의를 위한 디자이너는 마이클 코어스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우리가 아메리칸패션의 변천사와 그 안에 숨겨진 정신과 정서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미국 패션이 대세이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파리는 여전히 패션의 중심으로 기능하고 있지만 파리와 밀라노, 그리고 뉴욕 패션을 장악한 실용주의와 미니멀리즘, 그리고 내면이 반영된 심플한 패션 트렌드는 아메리칸패션의 어떤 정신, 정서 등과 맞닿아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기에 이 전시는 더욱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또한 그래서 간결한 의상으로 건강한 내면이 외면으로 빛나게끔 했던 재키 케네디, 그레이스 켈리, 로렌 바콜, 줄리 앤 무어 등 미국 여자들이 지금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에디터
김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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