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넘치는 디자이너들은 혹한의 추위일수록 다양한 소재의 변주를 통해 패션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그들이 이번 시즌 가장 주목한 것은 벨벳, 니트, 그리고 트위드다.

PROENZA SCHOULER

PROENZA SCHOULER

SMOOTH VELVET

패션에디터들이 화보 촬영을 할 때 가장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소재가 바로 벨벳이다. 직물의 표면에 연한 섬유털을 치밀하게 심어넣은 것이 벨벳의 특징인데, 이 점 때문에 조명을 흡수해 버려 의상의 디테일이 잘 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안으로 보면 특유의 광택으로 매우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번 시즌에도 귀족적인 장식주의가 힘을 과시하면서 벨벳이 다시 트렌드의 반열에 올랐다. 벨벳의 고급스러운 광택과 몸에 착 감기는 부드러운 점을 그대로 이용한 디자이너 브랜드로는 랄프 로렌과 펜디, 클로에,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들 수 있는데, 대부분보디 라인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고급스러운 이브닝 드레스 라인에 적용한 것이 특징. 한편, 혁신적인 번아웃 기법(벨벳의 표면을 레이저로 가공하여 독특한 무늬를 형성하게 만드는 것)은 이번 시즌 벨벳을 더욱 럭셔리한 소재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버버리 프로섬의 독특한 꽃무늬, 마치 카펫처럼 보이는 보테가 베네타의 이브닝 드레스, 색색의 벨벳 테이프를 격자로 엮어 그래픽적인 느낌을 부여한 크리스토퍼 케인의 컬렉션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벨벳을 가장 눈에 띄게 사용한 것은 패션의 혁명가, 미우치 아프라다! 다양한 번 아웃 기법으로 표현한 벨벳을 울, 니트 등의 소재와 섞어 표현한 프라다컬렉션은 이번 시즌 벨벳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명확하고도 고급스러운 대답이었다.

DECORATIVE KNIT

가을/겨울시즌이면 늘 패션의 필수 요소로 등장해 온 니트는 패션디자이너라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소재다. 털실의 종류나 컬러, 직조하는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느낌이나 디자이너들의 개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때문. 이번 시즌의 니트는 전반적으로 화려하며 다소 요란해 보일 정도로 펑키한 것이 특징이다. 니트를 시그너처로 내세우는 하우스는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패션 저널리스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미소니. 최근 미소니는 ‘스타일링 쇼’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과감한 스타일링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데, 이번 시즌에는 베이지와 금색, 파란색 계열로 색을 한정하는 대신 다양한 기법으로 화려한 무늬를 넣은 니트 아이템을 레이어링해 새로운 실루엣을 만들어냈다. 특히 커다란 터틀넥을 마치 후드처럼 연결한 느슨한 풀오버 위에 니트코트를 덧입는 스타일링은 이번 시즌 니트를 ‘어떻게’ 입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답변이었다. 70년대의 히피 무드를 표현한다이앤폰퍼스텐버그, 포멀한 아이템을 니트로 표현한 에트로, 러시안 무드를 표현한 겐조 등도 니트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한편 니트를 통해 쿠튀르적인 장식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음을 설파한 디자이너도 많다. 알렉산더 매퀸의 거대한 코르사주니트 드레스, 솜사탕 같은 연분홍 니트케이프를 선보인 샤넬, 모피와 니트를 믹스하여 럭셔리한 여류 비행사 스타일을 완성한 에르메스 컬렉션 등이 대표적인 예다.

URBAN TWEED

클래식한 트위드는 이번 시즌에 ‘도시적인 모던함’이라는 장식을 덧입었다. 트위드라는 소재가 영국에서 개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역사적인 배경으로 인해 브리티시 클래식, 스쿨걸룩, 또는 빈티지한 소재와 어우러져 전원풍의 스타일을 표현하는데 주로 쓰였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새로운 실루엣과 프로포션으로 성숙한 도시 여성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테일러링 아이템이 대거 등장했다. 트렌치 코트를 마치 남성복처럼 커다란 트위드코트로 변형한 버버리프로 섬, 미니 드레스와 재킷을 같은 소재로 통일하여 정숙한 숙녀의 느낌을 강조한 샤넬, 소매와 헴라인, 칼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커팅선을 날렵하게 재단한 칼 라거펠트, 트위드에 오리가 미 장식을 더한 쿠튀르적인 미니 드레스를 선보인 아크리스 등이트위드의 ‘도시적인 우아함’에 힘을 실었다. 한편 유행의 최전선에 있는 아이템인 라이딩 재킷을 트위드로 표현한 프로엔자 &스쿨러나 핫 핑크색 니트와 하운즈투스 무늬의 트위드 스커트를 매치한 DKNY 컬렉션 등은 트위드의 캐주얼한 응용법을 강조한 예. 트위드에 색이나 무늬를 넣는 경향은 이번 시즌 크게 줄어 대부분 검정, 하양, 회색 등의 모노톤으로 표현되는데, 다만 알렉산더 매퀸, 스텔라 매카트니, 아쿠아스큐텀 등의 컬렉션에서 볼 수 있듯 하운즈 투 스패턴만큼은 클래식한 트위드 수트에 주로 쓰이면서 가장 활용도 높다는 점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