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중심에서 스타일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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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폰기 힐스와 오모테산도 힐스에 이어 도쿄에 덩치 큰 괴물이 나타났다. 거대하지만 잘생긴 이 초대형 복합빌딩에는 사무실과 쇼핑몰, 호텔과 레스토랑, 병원과 갤러리, 그리고 공원이 들어서 있다. 초호화판 심시티, 도시를 배경으로 꿀 수 있는 가장 스타일리시한 꿈, 미드타운을 읽는 19가지 키워드.

물결치는 파사드가 아름다운 국립 신미술관의 야경.

물결치는 파사드가 아름다운 국립 신미술관의 야경.

도시의 경쟁력
“미드타운은 건물이면서 그 자체가 소도시이기도하다. 여기선 안 되는 게 없다. 사람들이 쉬고, 쇼핑하고, 먹고, 놀고,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다 가능한 복합 기능의 공간이고, 공공을 위한 장소다.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도시의 경쟁력이 된다. 우리나라? 타워팰리스 같은 데를 생각해보자. 프라이빗한 공간이고 도시의 경쟁력과 아무 상관 없다. 당대의 건축가들이 참여한 결과물을 보는 것도 물론 흥미로운 일이다. 마스터플랜은 SOM에서 맡았으며, 준아오키의 리츠 칼튼 호텔, 안도 타다오의 21_21 디자인 사이트, 겐고 쿠마의 산토리 뮤지엄 등 당대의 일본 건축가들의 작업을 목격할수 있다.” – 하태석|건축가

숫자들
10만2천 평방미터 면적에 6개의 빌딩을 세우는데 3천7백억 엔이 들었다.54층인 메인 타워 높이는 248미터로 도쿄 도내에서 가장 높은 랜드마크다. 롯폰기 힐스보다 딱 10미터 높이 지은 건 좀 속보이는 일이지만 뭐, 이거야말로 숫자 놀음이니까.후지산까지 보이는 리츠칼튼 호텔 스위트룸은 1박에 2백10만 엔(1천7백만원 정도)이라고 한다.

롯폰기, 진화하다
“롯폰기 힐스와는 또 다른 대안이다. 복잡한 시가지에 돌연 나타난 아름다운 마천루, 안에 들어가면 역시 예상한 대로 모던한 디자인의 분위기다. 하지만 곳곳에 아주 세심하게 전통적인 일본 스타일이 스며 있어서 처음 오는 장소임에도 차분해진다. 정원은 롯폰기 힐스의 ‘모리공원’보다 공간 디자인적 시점으로 훨씬 압도적이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롯폰기 힐스가 이 동네 특유의 난잡함을 인터페이스로 재현한 것에 반해, 미드타운은 이 복잡성을 한층 더 긍정적인 콘텐츠로 업그레이드했다. 지역 그대로의 개성을 이어가면서, 컨셉추얼한 신명물로 태어났다고할까?” – 카사이고|광고 기획자

처음엔 그냥 걸었어
지하 연결 통로 말고 롯폰기 교차점 방향에서 길을 건너 미드타운에 도착하면, 시야가 갑자기 넓게 열리면서 감각이 좀 이상해지는 느낌에 빠지게 된다. 울타리가 없이 펼쳐진 녹지 위의 보도는, 획기적으로 폭이 넓어 옆 차도가 좁아 보일 지경이다. 빌딩의 압박과 돌진해오는 어깨들을 경계하며 걷다가 돌연 해방감을 경험하게 된다. 실하게 자라난 느티나무와 벚꽃나무 같은 거목은 녹지의 매력을 한층더 살려준다. 개발 제한에 묶여 있던 구 방위청 시대부터 자라온 약 140그루의 나무들이 토지의 기억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는 것이다. 조경을 맡은 랜드스케이프 디자인 회사 EDAW에 따르면 나무 한 그루에 한 명씩, 보존 담당자를 따로 두었다고 한다. 1 대 1 마크!

나무의 사용법
넓은 공원 안에 들어서 있으며 건물 외벽에 통유리를 많이 사용한 미드타운은, 도심 속의 대형 빌딩임에도 자연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오모테산도 힐스가 콘크리트를 주로 사용해 딱딱하고차가운 느낌이라면 미드타운은 유리와 스틸 프레임, 베이지 톤과 우드 컬러의 조합으로 한결 부드럽다. 건물 내부에 사용된 나무 자재들은 안정감과 따뜻한 기분을 주는데, 특히 산토리 미술관은 단정한오동나무 격자를 이용해서 일본의 전통적 창 디자인을 표현했다. 마루는 오래된 위스키통을 재료로했다니, 술 회사답다.

그 브랜드의 전혀 다른 매장
브랜드들은 쇼핑몰 갤러리아에 입점하기 위해 고유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보다 ‘미드타운’의 미감에 맞추어 숍을 포장했다. 일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생활용품 브랜드 MU JI는 슈퍼 포테이토의 스기모토 타카시가 인테리어를 맡아, 일본 어디의 무지루시료힌(무인양품)과도 다른 매장을 완성했다. 닳은 나무, 고철판 등 오래된 건축 재료를 소재로 하여 새로운 질감을 낸 것이 특징. 세븐 일레븐까지 목재로 마감할 정도라니, 미드타운은 눈도 높으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빛이 투과되면서 공간의 표정까지 바꾼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빛이 투과되면서 공간의 표정까지 바꾼다.

셀렉트 숍 RESTIR
“편집매장‘레스틸’은 핍쇼라도 열어야 할 것 같은 섹시한 공간이다. 어두운 조명, 검은색 인테리어 가운데 샤넬 2.55살롱처럼 만들어놓아 멋지다. 2층으로 올라가면 멀티숍이 나타나는데 컬렉션이 아주 좋았다. 멀티 콤플렉스 공간은 우리나라에도 있지만, 미드타운이 달랐던 점은 조경을 꼽고 싶다. 쇼핑몰에서 정원으로 바로 나가게 되어 있는데, 미로같은 복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볼거리를 따라 동선확보를 아주 잘해놨다. 미니멀한 취향에 절약을 잘하는 일본인들이라서인가. 전체적으로 쇼핑몰의 취향은 어덜트하다. 젊은애들은 하라주쿠나 시부야같은 동네에서 놀 테고, 여기는 서비스 레지던스인오크우드에 출장차 머무르고 있는 비즈니스맨이 내려와 셔츠와 가방, 사무용품까지 멋진 것으로 구입하기 좋은 느낌이랄까.” – 이보미|패션 디자이너

21_21 디자인 사이트
미드타운의 다른 건물들과 떨어져 자리한 21_21디자인 사이트는, 랜드스케이프를 방해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구조를 하고 있는 디자인 미술관이다. 1층에는 자연파 이태리식 요리를 맛볼수 있는 캐노비아노 카페가 있는데, 갤러리라는 표식이 전혀 없이 푸른 바탕에‘21_21’ 숫자만 써있어 카페만 흘끗 보고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고. 지하로 내려오면 비로소 두 군데의 전시 공간이 나타난다. 연동해서 사용할 수 있는 두 개의 갤러리 공간은 기획에 따라 연극무대로도, 콘서트 홀로도 변신한다. 디자인을 테마로 한 이 자유로운 공간을 받치는 것은 디렉터로 있는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그래픽 디자이너 사토타쿠, 제품 디자이너후카사와 나오토라는 세 사람의 묵직한 이름이다.4월 18일까지는 특별기획전으로 21_21 디자인사이트의 건축 과정을 보여준 전시 <안도 타다오2006년 악전고투>가 열렸으며, 4월 27일부터는 후카사와 나오토의 디렉션으로 ‘초콜릿’을 주제로한 온갖 디자인을 모은 첫기획전이 열리는 중이다.

안도 타다오
“21_21 디자인 사이트의 경지는 공공용지, 넓은 빈 땅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축복받은 주위 환경을 망가뜨리지 않고 디자인을 위한 시설로서도 그 존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한 결과, 면적의 8 0 %를 지하에 매설하기로 했습니다. 배후에 늘어선 히말라야삼나무에 잘 둘러싸인 듯 우두커니 있는 건축물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3년 남짓 소요된 21_21디자인 사이트 설계와 건축 작업에 대해 ‘격투와 같은 만들기였다’고 회고한다. 날개를 펼치고 낮게 포복하는 형태의 건물은, 여전히 강직하고 절제되어있지만, 고집스럽게 스퀘어를 선보여온 그간의 작업과 비교하면 한결 다이내믹하다.

공원에서 큐브 찾기
21_21에서는 미니밴을 개조한 푸드 숍과 갤러리 제품 가게를 건물 밖에 깜찍하게 세워놓았다. 각설탕 두 개를 붙여놓은 것처럼 생긴 닛산 큐브. 샌드위치를 사서 공원 벤치에서 앉아 먹어도 좋겠다.

SOME PLAN BY SOM
도쿄 미드타운의 마스터플랜을 담당한 건축가,SOM의 데이비드 차일즈는 설계에 앞서 일본의 전통 문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검증했다. 아이디어를얻은 것은 불교의 우주관인 수미산(고대 인도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의 구도였다고. 오래된 사찰 라이큐지의 돌 정원을 모티프로 미드타운 타워와 플라자의 구도를 잡았다.

부드러운 돌과 설치 미술들
조각가 야스다 칸의 설치미술 작품이 플라자의 지하에서 손님을 맞는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카라라의 채석장에서 공수한 대리석으로 만든 돌 조각은아기 피부 같은 감촉 때문에‘만지는 조각’으로 유명하다. 갤러리아 곳곳에 젊은 작가들의 소품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전망 좋은 방
근사한 건물을 찾아가 확인하는 것도 일이지만, 건물 안에 들어가 내다보는 풍경 또한 놓치기 아깝다. 갤러리아 3층의 IDEE 카페가 조망이 좋으며, 산토리 미술관의 다실 ‘겐쵸안’에서는 일몰을 꼭 볼 것.

흐르는 물의 표정
3층 높이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갤러리아의 트리 샤워는 수직으로 장관을 이룰 뿐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청량감을 준다. 가든 게이트 가까이에서 듣는 분수의 물 소리는 롯폰기 거리의 떠들썩함으로부터 분리해주는 워터 펜스와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갤러리아의 중정에는 대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일본 전통지 소재르 조명에 활용하여 은은한 효과를 주었다.

갤러리아의 중정에는 대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일본 전통지 소재르 조명에 활용하여 은은한 효과를 주었다.

일본 종이와 대나무
건물 곳곳에 사용된 대나무 모티프, 그리고 전통 종이 소재가 일본 고유의 이미지를 부각한다. 산토리미술관 4층 로비에 있는‘빛의 벽’은 전통지의 투과성을 살려 온화한 빛으로 넘치며, 갤러리아 내부에서도 전통지를 모던하게 사용하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를 형상화한 가로등, 대나무 집성목 소재로 깐 마룻바닥은 눈에 잘 안 띈다 치고, 아예 노골적으로 대나무가 건물 곳곳에 심어져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대나무 울타리가 쳐진 산토리미술관 다실에서 대나무 벤치에 앉아 쉬는 건 최고의대나무 활용법이다.

제대로 된 서점은 없다
“요즘의 도쿄는 관광도시 같다. 그것도 일본인을 위한. 골든 위크에 외국에 나가는 사람 수가 지난해보다 줄어든 데는 미드타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 가장 핫한 관광지 느낌이지만 인근에사는 사람들은 강아지도 산책시키고, 동네 주부들끼리 모여 수다도 떨고, 24시간 슈퍼에서 장도 보는 등 아주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모습도 보인다. 산토리 미술관이나 숍들이 상당히 연령대가 있는 취향이라, 나이 든 분들의 새로운 취미 공간이 생겼다는 기분도 든다. 할아버지들이 낡은 구식 카메라를 메고, 할머니 손 잡고 나오시는데 참 보기 좋다. 우리나라 코엑스몰 같은 데는 어린애들 판이지 않나.한 가지 의아한 점은 온갖 걸 다 갖춘 이 미드타운에 제대로 된 서점이 없다는 거다(츠타야가 있긴 하지만 겨우 구색 맞추는 정도의 수준이다). 그랬다면 갤러리 ‘아트 트라이앵글’처럼 롯폰기 힐스의 츠타야, 아오야마 북센터와 더불어 ‘서점 트라이앵글’이 볼 만했을 텐데!” – 오연경|유학생

이 숍의 쿠키를 먹고 말겠어
미드타운 안에서 줄을 선 사람들을 발견한다면 십중팔구 일본에서 유명한 디저트 전문점 앞일 가능성이 높다. 전통화과자점토라야, 슈크림 전문점타카토라, 양과자점 토시 요로이즈카, 파티셰리 사다 하루 아오키의 케이크숍 등.

ARTAND CULTURE
“롯폰기 힐스나 미드타운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건 부동산 시장 경기 활성화를 위해 국가에서 개발 제한을 풀었기 때문이다. 도시가 시민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뒷산 공원이 전부는 아니다. 예술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도심 속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어야 한다. 미드타운은 국가와 기업에서 함께 도심 속에 만들어낸 훌륭한 이벤트 스페이스의 예다.후지필름의 포토 갤러리, 맥주와 위스키 만드는 산토리의 미술관 등 커머셜한 건물과 함께 기업에서문화 시설을 배려한 예가 바람직하다. 국가에서 규제를 풀어주는 동시에 공공성 있게 만드는 플레이가 필요하다. 서울시에서도 정책적인 계획과 함께 공공성 있는 사업을 이끌어내서 이런 컨셉트의 개발을 적용할수 있을 것이다.” – 민경식|건축가

국립 신미술관과 아트 트라이앵글
미드타운(의 산토리 미술관과 21_21 디자인 사이트)은 롯폰기 힐스에 있는 모리 뮤지엄, 그리고 1월에 개관한‘국립신미술관’과3각형의 구도를 이룬다 해서‘아트 트라이앵글’로 불린다. 파도처럼 물결치는 거대한 유리 파사드가 인상적이다. 정면 입구의 안쪽에는 거대한 원뿔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구조물이 있는데, 이곳의 2층과 3층 공간이 신기하게도 레스토랑이다. 매주 화요일에는 닫는다.

에디터
황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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