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리바이벌이 이번 시즌 패션의 전부는 아니다. 2009년 가을, 패션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 가지 키워드.

LE PARISIENNE

이번 시즌,80년대의 재해석과 함께 트렌드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파리지엔 시크’다. 강렬한 요소로 무장한 80년대 스타일에 비해 ‘파리다운 시크함’은 시각적으로 정의하기 모호한 면이 있어 크게 눈에 띄진 않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로만 따진다면 이 테마에 집중한 디자이너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번 시즌 파리지엔 시크는 크게 데 이룩과 나이트 룩으로 나눌 수 있다.

데이룩에서는 검은색과 흰색의 모노톤을 기본으로 포멀한 아이템과 캐주얼한 아이템을 섞어 스타일링하는 ‘좌안(la Rive Gauche)’ 스타일이 대세로, 하얀 블라우스와 검정 펜슬 스커트를 매치한 이브생로랑, 검정 재킷속에 흰 셔츠를 넣고 소매를 접어올린 이자벨 마랑, 가느다란 검정 서스펜더 팬츠 위로 느슨한 흰 블라우스를 덧입은 클로에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파리 특유의 부르주아적인 터치를 가미한 호사스러운 스타일은 팬시한 드레스를 위주로 한 나이트 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브로케이드나 오간자 실크처럼 최고급 소재 위에 쿠튀르적인 장식들 – 러플, 레이스보, 절묘한 드레이프-을 더한 나이트 룩은 검은색과 흰색 외에도 립스틱 레드, 프렌치 블루, 리치 골드 등의 톤과 어우러져 럭셔리함을 배가했다. 니나 리치와 샤넬, 루이비통 등 전형적인 프렌치 브랜드외에도 오스카드라렌타, 돌체 &가 바나, 록 산다 일린칙 등이 이 무드에 동참해 다른 도시에서도 마치 ‘파리컬렉션’을 관람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ELEGANT BIKER

가죽 재킷을 주요 아이템으로 하는 바이커 룩은 그간 아무리 명성 높은 패션하우스에서 만들었다 해도 ‘스트리트 패션’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게다가 특유의 터프함으로 인해 여성의 우아함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기대해도 좋다.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터프하기 짝이 없는 가죽이라는 아이템에 부드러운 여성성을 대폭 불어넣었다. 가죽을 위주로 한 바이커 룩이 엘레강스의 기치와 부합할 수 있었던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하나는 로에베 컬렉션에서 볼 수 있듯 여러 가공을 거쳐 실크만큼 보들보들한 가죽을 이용하여 주름과 러플 등을 표현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과거 바이커룩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었던 스터드와 버클 같은 하드한 요소를 제외시켰다는 것. 스텔라 매카트니와 니나 리치, 바바라 부이의 ‘메탈 장식하나 없는’ 바이커 재킷을 보면 이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마지막으로는 둥글고 부드러워진 어깨선과 가느다랗게 몸에 맞는 실루엣의 덕을 들 수 있다. 마치 포멀한 수트 재킷 같은 느낌을 주는 드리스 반 노튼의 악어가죽 재킷이나 격식있는 자리의 이브닝 드레스로도 손색없는 마이클 코어스의 가죽오프 숄더드레스의 우아함을 보라! 지난 시즌까지 바이커 룩을 스트리트로 전파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알렉산더 왕이나 피(Phi)의 안드레아 멜보스터드 역시 하드한 요소를 제거한 바이커룩을 제안하여 이 무드에 동참했다.

METALLIC CHIC

몇 시즌 전부터 실루엣과 색상만큼이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것이 바로 ‘질감’이다. 익히 다뤄온 소재의 한계를 넘고자 한 디자이너들은 갖가지가공을 통해 신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해당 시즌의 시그너처로 제안할 정도인데, 이번 시즌 제대로 빛을 본 것은 바로 메탈릭한 텍스처다. 상업적인 면을 고려해 가을/겨울시즌이면 늘어두운 컬러 팔레트가 유행의 반열에 오르게 마련이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한 가지 유행색을 골라내기 어려운 것도 메탈릭한 텍스처의 득세에 기인한다. 보통 메탈릭한 텍스처는 미래주의나 로큰롤 스타일에 주로 쓰여온 반면, 이번 시즌은 지극히 여성스러운 느낌뿐 아니라 극도로 절제된 미니멀리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에트로는 페이즐리 코트에 구릿빛의 하렘 팬츠를 매치해 오리엔탈 무드를 자극했고, 프로엔자 스쿨러는 검정과 금색의 리드미컬한 컬러 블록을 사용하여 보디컨셔스 실루엣을 만드는데 집중했으며, 돌체&가바나는 브로케이드 소재 위에 금빛 코팅을 한 소재로 볼륨감 있는 미니 드레스를 만들어 장식주의를 멋지게 표현했다. 메탈릭한 질감을 만드는 데에도 아예 메탈릭한원사로 소재를 직조한 것(캘빈 클라인)부터 반짝이는 시퀸이나 스팽글을 수놓은 것(안토니오베라르디, 스텔라 매카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말 그대로 이번 시즌은 ‘메탈릭 시크’의 원년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