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란 차고 슬픈 호수를 마음에 지니는 것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끝이 없는 기다림이란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확실한 끝이 있는, 그리고 그 끝에 나를 기다리는 무언가가 있는 기다림은 뜨겁고 즐거운 호숫가를 만들 것이다. 3개월. 나만의 랄프 로렌 리키 백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뜨겁고 즐거운 시간.

3개월. 헤어진 연인을 잊기에도, 홧김에 자른 머리가 곱게 자라나기에도 짧은 시간이지만, 나만의 백을 주문하고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다. 5월 청담동의 랄프 로렌플래그십 스토어 오프닝을 기점으로 리키 백 메이드 투 오더서비스가 시작된다. 운이 좋으면 3개월을 2개월로 단축시킬 수도 있다. 모스크바, 런던, 밀라노, 뉴욕, 베벌리힐스, 시카고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서울에서 처음으로서비스가 실시되는 것. 이번 청담동 부티크 오프닝은 그 규모로도 이미 떠들썩한 뉴스 중의 하나이지만, 고객의 수요가 많아야만 가능한 메이드 투 오더 서비스가 서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패션도시로서 서울의 입지가 굳어지는 반증이기도 하다.2007년랄프로렌탄생40주년을 기념해 탄생한 리키 백의 모양을 두고 혹자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백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른다. 실눈을 뜨며 비교할 법한데자부 현상은 이 백이 안장 가방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19세기 후기의 쿠퍼 백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 하지만 완성된 디자인은 철저히 20세기 랄프 로렌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랄프 로렌의 아내 리키 로렌의 이름을 따 리키 백으로 명명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더 귀가 솔깃해진다. 미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랄프 로렌이 아내의 이름을 걸고 만든 백이라고 하니 가죽을 고르는 장인도, 가죽에 스티치를 꿰는 장인도, 주문 받은 로고를 새기는 장인도, 가방 표면에 태닝과 왁싱 작업으로 마무리하는 장인도 절대 한순간도 흐트러진 자세로 작업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리키로렌과 리키 백이라는 이름을 교차시키며 생기는 긴장감은 그들의 치밀한 장인 정신을 한껏 고무시킬 테니까. 이렇게 철저히 수작업으로 만드는 가방은 완성하는 데 10~12시간이 소요된다. 세계 각국의 최고 장인들이 모인 랄프 로렌의 이탈리아 공방은 이미 전 세계에서 몰려든 주문으로 분주하다.서울에서는 앨리게이터 가죽의 리키 백을 4가지 사이즈와 20가지앨리게이터 가죽의 컬러, 그리고 6가지 안감 가죽 중에서 고를 수 있다. 발랄하고 아담한 크기에서부터 시크한 오버사이즈까지 크기만으로도 색다른 이미지가 연출된다. 컬러는 그야말로 다양하다.앨리게이터 가죽을 이토록 화려한 컬러로 물들일 수 있는 것도 랄프 로렌 공방의 노하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클래식한 블랙과 브라운은 물론, 강렬한 오렌지 컬러, 눈부신 코발트 블루 컬러, 신비로운 퍼플 컬러 등 하나의 색상을 고르는 것부터가 망설임에 망설임을 이어지게 할 것이다. 가방을 열 때만 슬쩍슬쩍 보일 뿐, 걸어 잠그면 절대 보이지 않는 안감도 세심하게 고를 수 있다. 이쯤이면 마음에 들면 곧바로 손에 넣어야 하는 성격 급한 여인이라도 3개월이라는 인내의 시간을 참고 견뎌낼 충분한 이유가 되지않을까? 물론, 나의 취향과 컬러 감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남자가 곧바로 당신의 눈앞에 리키 백을 가져다준다면 설레는 기다림의 즐거운 마음은 포기하고도 남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