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꽃이 피고 새가 울듯, 패션의 봄 팔레트에 생생한 컬러가 자리 잡는 건 자연의 순리이다. 특히 이번 시즌, 주목을 강권하고 싶은 것은 채도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랑, 초록, 주황이다.

HUSSEIN CHALAYAN

HUSSEIN CHALAYAN

AQUA BLUE

이번 봄 / 여름 시즌 컬러의 경향은 뚜렷하게 유행하는 하나의 컬러는 없는 대신, 전반적으로 채도가 높아진 것이 특징이 다. 그리고 높아진 채 도로 한정할 때, 최대 수혜자는 바로 지중해의 쪽빛을 닮은 블루다. 지난 시즌 초록, 보라색 등 컬러 팔레트로 볼 때 가까이에 위치한 색들에 밀려 다소 주춤한 경향을 보인 블루는 단조로우면서도 신성해 보이는 뚜렷한 존재감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는데, 마치 2년 전 봄 / 여름 시즌 질샌더가 깨끗한 재단 위에 청명하게 사용한 인터내셔널 클라인즈 블루(IKB)를 연상시킨다.

이번 시즌의 포문을 연 뉴욕컬렉션 기간중 캘빈 클라인 쇼에서 온통 하얀 의상 사이로 구조적인 재단을 더욱 청명하게 살려준 이 컬러는 스포티브한 실루엣의 DKNY와 마이클 코어스는 물론 로 다테의 솜털 이 보송보송하게 살아 있는 니트 드레스에도 적용되어 그 활용도를 뽐냈다. 밀라노에서는 구찌의 프리다 지 아니니가 간 결한 수트에 블루를 써서 상업적인 진가를 증명하기도 했다. 유연하고 광택감이 풍부한 실크소재에 주로 쓰여 흐르는 듯 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도시를 막론하고 이번 시즌 블루 사용법의 극명한 공통점이다.

FLUORIDE GREEN

초록은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런 잔잔함 때문인지 임팩트를 중시하는 패션 에서만큼은 전면에 나서 본 적이 거의 없는 비운의 컬러이다. 초록을 인상적으로 사용하는 건 늘 마르니나 로베르토 카발리 정도였으니. 하지만 이번 봄/여름은 늘 패션의 뒤안길에서 침묵하던 그린이 1980년대의 재해석이라는 특수 상황과 결합하여 트렌드의 첨병으로 거론되는 기념비적인 시즌으로 기억될 만하다. 하지만 그린이라는 단어 앞에 ‘일렉트릭’ 혹 은 ‘애시드’, 좀더 쉽게 말하면 ‘형광’이라는 단어를 덧붙여야 한다.

론칭 20주년을 맞은 DKNY는 브랜드 특유의 활동적 인 분위기를 오버사이즈의 나일론 점퍼를 통해 보여주었고, 늘 그린에 관대했던 로베르토 카발리는 보태니컬 프린트의 시폰드레스 혹은 보디컨셔스 스타일의 미니 드레스 등 상반된 실루엣을 통해 애시드한 그린의 매력을 과시했다. 마르니 는 늘 그랬듯 그래픽적인 보색효과를 통해 별다른 장식 없이 그린의 제맛을 느낄 수 있게 영민한 배치를 선보였고, 페라 가모와 셀린은 고급스러운 패러슈트 실크와 오간 자소재에 적용하여, 형광색그린이 단지 1980년대의 산물만이 아님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VOLUPTUOUS ORANGE

태양의 열기를 가득 머금은 캘리포니아의 농장을 연상시키는 생기 넘치는 오렌지색은 사용 빈도수만 놓고 보자면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의 러브콜을 가장 뜨겁게 받은 색일 것이다. 비비드 한 원색이 다채롭게 사용되었다고는 하지만 다른 색 들이 다소 넓은 스펙트럼을 갖는데 비해 – 일례로 핑크만 해도 누드 핑크, 파스텔 핑크, 피치 핑크, 핫핑크까지 그 범위가 아주 넓다-오렌지는 더함도 모자람도 없이, 말 그대로 잘 익은 과일의 색 그대로를 표현한채도 100%의 주황색으로 표현 되고 있다.

특히 핫서 머시즌의 해변가에서 파워를 더 할 이 컬러는 타미 힐피거의 랩드레스나 웅가로의원 숄더미니 드레스처럼 별다른 컬러를 더하지 않은 깔끔한 스타일링이 제격이다. 만약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밤의 드레스업을 위해서도 오렌지를 고집해야겠다면, 소피아코코 살라키나랑방 컬렉션에 등장한 드레이핑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한 무릎길이 오렌 지색 드레스들을 눈여겨볼 것. 오렌지를 약간의 다른 색과 섞어 강렬한 컬러 블록을 제시한 경우도 있는데, 바이올렛과 함 께 사용한 드리스 반 노튼, 검정과 시퀸 장식을 함께 사용한 루이비통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는 색감이나 소재의 오묘한 배치를 통해 에스닉, 아프리칸 등의 독특한 무드를 더하는 장치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