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에디터들을 향해, 패션 에디터가 보내는 어떤 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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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패션의 이미지 메이커이자 트렌드세터, 그리고 취향 창조자. 디자이너나 셀레브러티의 시종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스타일리스트’의 위상을 재정립한 위대한 패션 에디터들을 향해, 패션 에디터가 보내는 어떤 연서.

to Alex White

부끄럽지만 전 의 패션 에디터가 되기 전에는 당신의 이름을 잘외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 당신 탓도 있어요. 당신은 ‘브리티시 패션인베이전(British Fashion Invasion)’, 즉 런던을 발판으로 활동하다가 뉴욕으로 이주해 패션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패션 피플을 대표하지만, 다른 스타일리스트와는 달리 전면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제가 나직한 성격의 당신을 인식하는 것은 오직 내면에 압축해두었던 판타지를 개방하는 패션비주얼을 통해서일 뿐입니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패션의 창조자라면 스타일리스트는 패션의 해석자이다’라는 명제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이라면 단연 미국 의 패션 디렉터인 당신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당신의 스타일링이 ‘21세기 하이엔드 패션의 교과서’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어떤 콘셉트의 비주얼 안에서도 우아함을 추구하기 때문이죠. 특유의 제한 없는 크리에이티브 덕분에 알렉산더 매퀸, 자일스 디컨 같은 디자이너의 극단적인 옷들을 화보에 종종 소개하지만 어디까지나 하이패션의 범주 안에서 표현하려 하는 점이 제게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기준점이기도 합니다. 아마, 당신은 편집장인 패트릭 매카시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데니스 프리드먼에게 크게 감사해야 할지도 몰라요. 지난 1993년 커다란 판형에 광택 나는 인쇄지로를 개편한 이래 당신의 빈틈없고 생생한 하이패션 비주얼은 더욱 빛이 나기시작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제가 감탄하는 건 여성을 매우 강하고 섹슈얼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당신의 모토입니다. 현실감이 없어 보일 정도로 판타스틱한 면은 여행이나 사람을 관찰하는 것, 특히 두 아이들에게서 영감을 많이 얻기 때문이라죠? 특히 최근 작업한 크루즈 룩 화보가 인상적이었는데, 가족끼리 수상 공원에 놀러갔을 때 아이들이 갖고 놀던 고무 소재 파워레인저 피규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서 많이 부러웠습니다. 이미 늦긴 했지만 저도 얼른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야 겠…죄송합니다. 요점이 좀 샜군요.
당신에게는 촬영 시안과 테스트 폴라로이드가 빽빽하게 붙은 스크랩 북 컬렉션이수십 권이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스크랩 북에 붙은 테스트 컷이 실제 잡지에 실린지면 구성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나는 레이아웃 작업을 항상 사진가와 함께한다. 우리는 촬영 시간만큼 공을 들여 배열을 생각하고, 아트 디렉터에게 건의하곤 한다. ”화보 컷의 효과적인 배열 문제로 늘 고민하는 제게 당신의 말은 좋은 힌트가 되었습니다. 다음에 뉴욕에서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크레이그 맥딘, 마리오 소렌티 등 세계적인 사진가의 초창기 작품은 물론 90년대 최고의 광고 캠페인의 제작 과정이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는 그 스크랩 북을 꼭 한 번보고 싶네요. 뿐만 아니라 광고와 쇼 스타일링 작업까지 활발하게 활동해서 패션 에디터의 영역을 넓히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패션 에디터’로서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프라다와 루이 비통 쇼 스타일링, 그리고 그 걸출한 무라카미 백 광고 비주얼까지, 당신의 작업은 늘 독특하면서도 고상했습니다. 에디터로서의 첫 촬영이 <하퍼스&퀸>이라는 잡지에서 ‘독자에게 옷을 세일해 드립니다’라는 칼럼이었다고 회상하며, 재능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기도 했죠? 하지만 전 다음 달 에 실린 당신의 화보를 보며 재능의 간극을 또 한번 느낄 것 같습니다. 돌려 말했지만, 당신의 스타일링과 비주얼 감각을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즐겁게 기다리겠습니다.

● 영국 태생, 현재 뉴욕 거주
● 이탈리아 , 현재 패션 디렉터
● 버버리, 캘빈 클라인, 샤넬, 루이 비통, 프라다 등의 광고 캠페인 참여
● 2008년 가을/겨울 시즌 샤넬, 잭 포슨 컬렉션 스타일링

to Carine Roitfeld

기억하나요? 작년 가을 런던에서 인사를 건넸을 때, 를 본 적이 있다고해서 전 꽤 기뻤습니다. 세계 패션계에서 아마도 가장 맹렬하고도 시크한 여성이자 파리 <보그>의 편집장인 당신이 이야기했을 때 말이에요. 전 패션 에디터가 되기전부터 당신의 패션 비주얼을 익숙하게 봐왔고, 그 비주얼들이 갓 발표된 패션쇼를 그대로 복제한 ‘최신, 최신, 최신!’ 만을 외치는 것이 아니어서 더욱 감탄했던 사람입니다. 사라 무어와의 인터뷰에서 “때때로 난 공항 라운지에서 더욱 큰 영감을 얻는다. 실수도 좋다. 트레이닝 팬츠에 하이힐이나, 흰 셔츠 안에 까만 브래지어 같은 실수들 말이다”라고 한 말은 정말이지 트렌드에 치여 있던 제게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파리 컬렉션의 라거펠트 쇼 때 당신이 흰 블라우스 안에 검은색 레이스 브래지어를 입고 온 것도 범상치 않아 보였으니까요.“나는 훌륭한 패션 전문가가 아니다. 재단이 어떤지, 패션의 역사가 어떤지 줄줄 꿰고 있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든 패션 비주얼을 볼 때 독자로 하여금 ‘저 여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부여하는 것이다.”그렇습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은 패션계에서 몇 안 되는 ‘워너비’의 전형입니다. 대표적으로는 톰 포드의 구찌가 당신의 이미지에 기대었듯이 말이죠. 타이트한 무릎 길이 스커트, 하이힐, 앞머리를 가지런히 자른 당신의 룩은 톰 포드의 스타일리스트로 작업하면서 구찌의 아이콘이 되었고, 90년대 초 구찌를 파산에서 구원한 섹스&글래머 이미지의 원형이 되었죠. 그리고 2005년에는 블루밍 데일의 패션 디렉터인 칼만 루텐스타인이 ‘카린 로이필드’의 복제형 모델들을 대거 광고에 등장시키면서 당신의 스타일은 시공과 트렌드를 초월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과거 톰 포드와 그랬듯이, 지금은 리카르도 티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하니 지방시의 위상이 하늘을 찌를 날도 머지 않았겠군요. 아니, 이미 그렇게 되었지만요. 왜 카린 로이필드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프런트로와 행사에서 ‘패션 피플’로서의 당신을 주목하는 시선이 아닌, 패션 에디터로서의 당신을 떠올리며 갖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핵심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더군요. 국제적인 패션 수도이며 가장 기발한 판타지가 양산되는 파리를 대표하는 당신이지만, 그것을 통째로 삼키지 않기에 가능한 스타일링이 당신의 화보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지요. ‘소매를 어떻게 걷어올리는가, 혹은 샤넬 백을 들어야 할 시점을 아는 본능적 스타일이 파리라는 도시보다 내게는 중요하다’는 말은 좋은 힌트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두 자녀를 낳은 이후 콘데나스트 잡지의 유럽판 프리랜서로 일할 때의 전설같은 일화들을 얼마 전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글래머>에서 성인 모델들에게 아동용 라코스테 피케 셔츠를 입힌 화보가 나가자 미니 사이즈 셔츠가 크게 유행했다지요? 그리고 헬레나 크리스텐슨과 함께 한 페루촬영에서는 쿠튀르 드레스에 페루식 스웨터와 싸구려 젤리 슈즈를 신겼다지요. 그리고 구찌의 뮤즈로 이끌게 된 마리오 테스티노와의 촬영! 나디아 아우어만이 티셔츠를 미니스커트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는 컷에 구찌 로퍼를 신겼다는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었습니다. 반 나체의 케이트 모스의 머리에 뿔을 다는 식의 패션 비주얼은 솔직히 말해 패션 에디터로서의 제 취향과 100% 일치하지는 않습니다만, 당신은 언제까지나 그래줬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장에 임명된 후로도 촬영을 계속하는 정열도 변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가 되더라도, ‘무심한 듯 시크한’ 룩으로 치장하고 와서 프런트로를 선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촬영과 마감에 지치더라도 제게 패션 에디터를 지속하고픈 동기를 부여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것만은 100% 진심입니다.

● 프랑스 태생, 현재 파리 거주
● 프랑스 <글래머>, 현재 파리 <보그> 편집장
● 구찌 광고 캠페인 참여

to Edward Enninful

의 패션 에디터인 제가 직함을 벗고 독자의 눈으로 돌아갔을 때, 가장 좋아하는 잡지를 말하라면 대번 부터 떠오릅니다. 맞습니다, 당신이 패션디렉터로 18년째 일하고 있는 그 지극히 ‘영국스러운’ 잡지 말이지요. 대학 시절블러, 쿨라 셰이커, 맨즈웨어 같은 90년대 모던한 영국 밴드의 팬이었던 저는 평상시의 공연이나 뮤직비디오에서는 볼 수 없는 ‘크레이지’한 스타일링으로 뮤지션들의 인터뷰 화보를 찍은 를 어렵게 사 모았고, 그 덕분에 당신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외우게 되었습니다. 비전문가의 눈에도 당신이 만들어낸 ‘크레이지’ 한의 비주얼은 그닥 비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재능의 산물이었지요. 마찬가지로 재능만 충만한 무일푼의 초보자 집단과 함께 꾸민 선정적인 표지들로 인해, 가 틈새 시장을 노린 스트리트 매거진에서 지금은 패션 산업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잡지로 성장하는 과정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유진슐레이만의 극적인 헤어 스타일링, 팻 맥그라스의 변칙적인 메이크업, 케이트 모스와 나오미 캠벨, 데본 아오키 같은 모델들을 진취적으로 포착해낸 크레이그 맥딘의 사진! 이 모든 것이 당신의 비전에서 출발했습니다. 고루한 영어를 구사하는 런던이 90년대 들어 패션 에너지를 폭발하게 된 건, 그러니까 ‘로’ 스타일에서 ‘하이’ 패션의 진원지로 패기 넘치게 전환하게 된 데에는 당신의 몫이 컸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런던에만, 에만 머물렀다면 저는 아마 당신의 이름을 곧 잊었을지도 모르겠어요. 1996년 를 세계적인 잡지로 만들기 위해서 파리에서패션 리포트를 하기로 결심한 것, 이탈리아 <보그> 편집장인 프랑카 소차니의 눈에 띈 것은 당신을 국제적인 패션 엘리트로 편입하는 데 큰도움이 되었죠. 특히 당신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크레이그 맥딘과 작업한 캘빈 클라인 진 캠페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캘빈 클라인 촬영을 마치고 한 말-“잡지 에디터로 일할 때는 내가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 있다. 하지만 광고에서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 자신만 기뻐서는 안 된다. 그 사실을 알기전까지는 진정한 스타일리스트라 할 수 없다.”-은 제게 있어서도 자칫 에디터와 사진가만의 판타지로 빠져들기 쉬운 함정을 늘 경계하게 해주곤 합니다. 이후 프랑카 소차니의 추천으로 스티븐 마이젤과 함께 한 이탈리아 <보그> 작업은,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에드워드 에닌풀만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준 기회였습니다. 타블로이드 파파라치 르포를 흉내 낸 ‘영 할리우드’ 화보, 그리고 모피와 이브닝가운을 입은 채 성형외과 수술을 받는 상류사회 여성의 모습을 그려낸 ‘메이크 오버 매드니스’ 화보, 모두가 앞 다투어 헬스 클럽으로 달려가는 ‘몸짱’ 열풍을 풍자한 ‘겟 유어 에너지’ 화보가 특히 생각나는군요. 패션을 그저 패션의 요소만이 아닌,사회적 다큐멘터리의 영역으로 대담하게 밀어붙인 혁신적인 내러티브는 패션비주얼을 구현하는 데 있어 ‘현실의 재현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제게 큰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신의 미학적 맥락은 패션을 현실적이고 동시대적인 배경에서풀어내는 데 있었고, 그것이 패션에 정통한 사람만이 아닌 일반 독자들이 보아도수긍할 수 있고, 게다가 유머러스한 터치까지 가미되어 있었죠. 그래요, 보통 저를 비롯한 패션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잊곤 합니다만, 패션은 심각하고어려운 게 아니잖아요? 예쁘고 즐겁고 신나야 하잖아요. 현재 패션 신에서 가장 유쾌한 스타일리스트로서 당신이 전해주는 메시지가, 그런 이유에서 더욱 반갑고소중합니다.
P. S.-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화보 작업에 열중하는 것도 좋습니다만, 가끔은 행사나 프런트로에도 좀 나타나세요. 프레스들을 향해 손도 흔들고 사진도 좀 찍어주시고요. 제대로

● 가나 태생, 영국에서 성장, 현재 뉴욕 거주
● 이탈리아 <보그>, , <베니티 페어> 등 프리랜스 에디터, 현재 패션 디렉터
● 랑방, 안나 수이, 캘빈 클라인, 꼼 데 가르송, 돌체&가바나 등 광고 캠페인 참여
● 아쿠아스큐텀, 돌체&가바나,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등 컬렉션 스타일링

to Camilla Nickerson

‘부치지 못한 편지’라는 한국식 표현을 당신이 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 편지가 그런 운명에 처할 뻔했습니다. 썼다, 지웠다를 여러 번 반복했으니까요. 마음은 태산 같은데 언어의 부족함으로 인해 표현되지 않는 탓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지금 패션 에디터로서의 당신을 누구보다 존경하고 흠모한다는 고백을 하는 참입니다. 당신의 비주얼 작업은 항상 충격을 줍니다. 어떤 의상을 어떤 모델에게 입히든 간에, 그 하위 텍스트는분명 정상적인 관례 너머에서 작용하죠. 의 시니어 패션 에디터인 당신의 말은 제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나의 반복되는 유일한 원칙은 ‘본적이 있다면, 하지 마라’ 는 것이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저도 제 직업이 옷을 팔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 점에서 시즌 컬렉션을화보 비주얼에 적용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보다, 오히려 패션 외부의 어떤 것을 패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당신의 작업을 존경합니다.“ 다른 스타일리스트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난 직접 조사한 이미지를 모아놓는 창고만 두 채가 있다. 화보 작업을 하기전에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컨트리뷰터들이 알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한다. ”세상에, 책상 하나도 제대로 못 치워서 각종 보도자료와 함께 일주일이 넘은 감자칩이 굴러다니게 놔두는 저는 당신의 그 철저한 준비와 남다른 미학적 접근이 놀랍기만 합니다. 의 화보로만 당신의 작업을 접한 독자들에게는 휘갈겨진 그래피티 배경에 페인트를 마구 칠한 모델이 등장하는 스티븐 마이젤과의 화보 작업이 좋은 예가되겠네요. 사진가와 아이디어를 논의한 후에 참고가 될 만한 각종 이미지를 수주에 걸쳐 모았다는 그 촬영 말이죠. 손으로 그려 얼룩이 튀는 스테판 스프라우스의 80년대 타이포그래피, 다이치 프로젝트에서 발견한 게릴라 거리 미술, 초현실주의와 미래주의 미술, 낸시 커나드의 초상 등. 그런 다음 세트 디자이너, 모델,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모두 소집하여 최종 미팅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당신의 화보를 ‘판타지’ 라고 표현합니다만, 아무리 완성된 화보가 그저 공상적이거나 환상적으로 보인다고 해도 그 안에는 아마도 오랜 노력을 통해 체득했을 카밀라 니커슨만의 지적인 고찰이 들어가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18세에 런던 스타일 잡지의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해, 영국과 이탈리아 <보그>를 거쳐 90년대에 뉴욕으로 이주한 다수의 ‘영국 출신 에디터’ 중 한 명이지만, 특정한 지역성을 띠기보다는 패션 비주얼을 예술적으로 접근하려는 그 독특한 시각이 당신을 세계적인 스타일리스트의 자리에 올려놓게 된 이유가 아닐까요. 특히 현대 미술과영화에 조예가 깊으며, 현대 사진의 주류가 된 디지털 실험 사진에 대해 많은 원조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영화 <언더 월드>에서 영감을 받아 스티븐 마이젤이 촬영한 누아르적 흑백 스토리 화보, 독일의 초현실주의자 막스 에른스트의 ‘아나토미 오브 더 브라이드’에서 영감을 얻어 닉 나이트와 함께 2005년 작업한 ‘얼터드 스테이트(alteredstate)’화보는 디지털 패션 사진의 획을 그은 작품이었습니다(그 화보의 한 장면은 두산 매거진의 회의실에 걸려 있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패션에 대한 당신의 변칙적 접근법이 빛을 발하는 것은 모던함에 대한 집착 때문일 겁니다. 90년대 후반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그리고 지난 2004년 이브 생 로랑과의 컨설팅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을 비롯해, 지금도 프란시스코 코스타나 스테파노 필라티 같은 당대의 걸출한 디자이너들이 당신의 크리에이티브에 크게 의지하는 것은 지적임, 우아함, 모던함 등 패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에 당신이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는 방증이죠.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패션 에디터라니, 정말 멋진 거잖아요? 그러니까, 더욱 어렵고 힘들게 몇 날 몇 밤을 고민하며 작업해주세요.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주세요. 에서 일하기에, 남들보다 먼저 당신의 작품을 보는 기쁨을 계속 누리길 바랍니다.

● 영국 태생, 뉴욕 거주
● 이탈리아 <보그>, 미국 <보그>, 현재 패션 시니어 에디터
●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이브 생 로랑 디자인 컨설팅 작업 참여
● 이브 생 로랑, 캘빈 클라인 등 패션쇼 스타일링
● 버버리, 이브 생 로랑 등 광고 스타일링

to Grace Coddington

솔직히 말해서, 저는 당신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레이스 코딩턴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 <보그>의 걸출한 패션 디렉터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특히 패션쇼에서의 당신을 보면 왜 도박판에서 ‘포커페이스’ 라는 말이 생겨났는지 수긍이 갈 정도입니다. 타오르는 붉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어두운 코트와 통이 좁은 팬츠를 입은 채, 옆 사람과 잡담 한 마디 나누지 않죠. 그리고 시선을 무대 위의 모델에게 고정시키고 가죽케이스의 노트 위에 펜을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쇼의 모든 윤곽이 당신의 노트에 고스란히 기록되지만 어떤 반응도 당신의 얼굴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쇼가 훌륭했나? 구제 불능이었나? 당신의 어시스턴트가 의상 협찬을 요청할까? 저는 가끔 당신의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가 피날레에서 박장대소를 하면 아, 이번 컬렉션은 대호평이겠구나, 라고 짐작합니다만 어휴, 도대체 당신 같은 포커페이스라면 아무런 실마리도 찾을 수 없는 겁니다.
1968년에 에디터 경력을 시작한 당신이라면 그럴 만도 하겠죠. “내게 패션쇼의 트렌드는 매우 따분하다. 도트와 스트라이프? 파카와 어번 스포츠? 내겐 지긋지긋한 것들이다” 라는 발언을 했다죠? 스타일리스트로서의 당신의 시선은 확실히 트렌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반 에디터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퓨처리즘이 패션계를 강타했을 때, 당신은 베르사유 로케이션에서 키어스틴 던스트에게 입힐 마리 앙투아네트의 드레스를 찾고 있었고, 모노크롬 컬러가 유행했던 2003년 봄/여름 시즌에는 나탈리아 보디아노바에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풍의 파란 드레스를 입혔죠. 두 화보 모두 저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한 스펙터클한 규모여서 신선한 충격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신이 스스로 표현하듯이, 이 시대 최고의 ‘내러티브 에디터’ 로 그레이스 코딩턴의 이름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스토리가 있는 생생한 시각적 상상력, 그리고 그것을 비주얼로 구현하는 재능. 당신의 영감이 반드시 패션일 필요는 없으며 ‘사람들이 보았으면 하고 희망하는 삶’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것은 에디터로서의 시각을 고민하는 제게 궁극적인 모토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엠버 발레타가 비닐을 덧씌운 소파에 앉아 있는 스토리 화보가 커뮤니케이션의 침해에 대한 당신의 불쾌감에서 촉발됐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당신은 스토리 텔러로서의 시각이 어디까지나 지극히 ‘패션’ 의 명제를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도 가르쳐주었습니다.당신이 자주 미국 <보그>를 통해 선보이는 미니멀한 배경에 의상만 부각시킨 화보처럼, 매우 명확하게 정의된 패션 사진을 보며 ‘의상을 볼 수 없다면, 그것은 범죄다’ 라는 당신의 격언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깁니다. 당신은 <그레이스:<보그>에서의 패션 30년>이라는 저서를 통해 70년대 이브 생 로랑의 통통함, 80년대 캘빈 클라인의 늘씬함, 90년대 마크 제이콥스의 그런지에 대한 호감을 표현했습니다. 트렌드란 따분하다고 말하지만, 당신이 좋아하는 패션은 패션의 본질을 관통하는 주류에 정확히 접목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저 아름다운 의상을 골라내고 매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진 속 깊은 곳까지 미치는 개성과 통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죠. 그것은1960~70년대에 영국 <보그>지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이후 캘빈 클라인에서 잠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광고나 쇼 스타일링에도 눈을 돌리지 않고 40년간 패션 에디터로 일해온 당신의 경력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사진 만들기에 온 인생을 바쳤고, 그러고서도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당신은 쌀쌀맞은 외모 너머에 너무나 뜨거운 것을 갖고 있나 봅니다. 참, 지난달 창간 기념호에 포스트 잇을 통해 의 3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해준 것도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성의 있게 축하메모를 써주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을 잘 모른다고, 차갑다고 오해해서 미안해요. 그렇게 뜨거운 열정을 가진 당신을.

● 영국태생, 뉴욕거주
● 영국 <보그>, 현재 미국 <보그> 패션 디렉터
● 캘빈 클라인 이터니티 캠페인에 디자인 디렉터로 참여

to Melanie Ward

아주 가끔, 저는 눈을 감고 당신이 패션 에디터 초년생이었을 때 진행한 화보 촬영 현장을 떠올리곤 합니다. 1989년의 어느 아침, 당신은 절친한 친구이자 사진가인 코니 데이와 이제 막 열다섯이 된 비쩍마른 소녀를 차에 태우고 해변으로 갔죠. 당신은 케이트 모스라는 이름의 소녀에게 데이지 꽃을 꺾어만든 목걸이를 걸어주고, 5달러짜리 인디안 깃털 머리 장식을 씌워주었습니다. 소녀는 주근깨와 덧니를 내보이며 깔깔거리고, 코니 데이는 내키는 대로 흑백 필름을 넣은 카메라를 몇 컷 눌렀습니다.1989년, 를 통해 발표되어 이젠 패션계의 전설이 된 그 사진은 날것 그대로였습니다. “난 언제나 패션 화보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다”는 당신의 의도는 가끔은 당신의 작업을 패션 비주얼이 아닌 사회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게 하기도 했습니다. 닉 나이트의 어시스턴트였던 데이비드 심즈와 유대를 맺으며 만든 비주얼들이 특히 그랬습니다. 쇼핑하러 돌아다니는 십대들을 촬영하거나, 노부인들에게 루이 비통 옷을 입혀서 촬영한 와 의 작업들 말이에요. 불완전한 것에서 패션 비주얼의 영감을 얻는 당신의 방식은 지금까지도 제게는 불편하고 낯선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헬무트 랭과 캘빈 클라인이 당신의 이력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쇼 스타일링과 광고 캠페인 스타일링을 요청한 것은 패션계가 다소 이질적인 요소를 포용하기 시작한 90년대 시대적 흐름의 결과일 것입니다. 당신은 그 작업을 통해 즉흥적 스타일링뿐만 아니라 패션디자인의 재능도 눈떠가기 시작했죠. 스키니 진이 존재하지 않던 90년대 중반, 캘빈 클라인의 남성용 진의 허리띠를 잘라내고 뒷면을 스테이플러로 고정해 레깅스처럼 만든 거나, 런던의 한 교복 매장에서 찾은 검은색의 통 좁은 남성팬츠를 제안해서 헬무트 랭의 시그너처 아이템으로 만든 이야기를 듣자면, 패션에디터로서의 책무란 제가 막연히 느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깊고 넓은 세계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최고이며 완벽한 모든 것에 일침을 가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번지르르한 기성 패션의 겉멋에 반기를 든 당신이 결국 미니멀리즘의 주창자로서 뉴욕 패션계의 정점에 자리 잡은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리즈 틸버리즈의 눈에 띄어 지난 95년 <하퍼스 바자>의 패션 에디터가 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신인이었던 코니 데이, 나이젤 샤프란, 데이비드 심즈, 크레이그 맥딘 등 당신과 어울렸던 반(反) 패션 무리들은 성인이 되었고 런던식의 패션 리얼리즘은 이제 당신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하이패션의 한 기준이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우아함의 새로운 정의가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시대는 변했지만 당신의 비전은 변함없이 ‘모던한 것이 무엇인가, 편하고 쉬운 옷차림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라고 했던가요? 저로서는 20년 전, 초보 에디터인 당신이 만든 패션 비주얼의 그 감흥이 변질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경쟁지의 에디터입니다만, 진심으로 당신을 응원하겠습니다.

● 영국태생, 뉴욕거주
● <하퍼스 바자> 시니어 패션 에디터
● 캘빈 클라인, 헬무트 랭 광고 캠페인 참여

에디터
패션 디렉터 / 최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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