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들판, 고독한 눈빛의 남자, 적막을 깨고 들려오는 날카로운 총성. 웨스턴 무비의 이 짜릿한 순간을 잊지 못하는 남자들이 그것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냈다. 그 어떤 모래 폭풍도, 시련도 황야의 무법자가 되어 질주하는 그들을 막을 순 없었다. 옛날 옛적, 만주 벌판엔 말과 오토바이를 타고 총질을 하던 거친 남자들이 있었다.

그의 말처럼 한국에서 서부 영화를 만든다는 건 미국에서 태권도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평범하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이상한 일에 더 가까울지 모르겠다. <달콤한 인생>을 끝내고 떠난 만주 여행이 김지운 감독을 이 이상하고 용감한 모험 속으로 이끌었다. 그는 탁 트인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무법자들을 상상했다. 그의 상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이라는 최고의 배우들과 한국 영화 사상 가장 큰 액수인 1백7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 300일 동안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대단한 로케이션으로 무장한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하 <놈,놈,놈>)은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는 영화였다. 1930년대의 만주를 배경으로 보물 지도 한 장을 놓고 세 명의 총잡이가 벌이는 사막의 대추격전. 간단한 줄거리만 겨우 알려졌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이 영화가 침체되어 있는 한국 영화계에 활기를 가져다 줄 신호탄으로 생각했다.김지운 감독은 말한다.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과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많이 기대하고, 걱정하고 있는 거다. 퀄리티 때문에 제작비가 초과되기도 했지만 어떤 부분에선 부족하기도 했다. 그걸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고생으로 메워줬다. 처음으로 흥행에 대해 기개를 품게 된 건 이 때문이다. 미안하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61회 칸 영화제에서 최초로 선보인 <놈,놈,놈>은 ‘5분 동안의 뜨거운 기립박수’라는 상투적 문구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통쾌한 액션 활극이다. 한국에서 개봉 될 버전과는 결말이 조금 다르다지만 유쾌한 느낌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영화를 보는 새로운 즐거움, 한 때 한국 영화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만주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다시 부활했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진심이었다. 중국 로케이션, 달리는 말, 주인공이 3명인 영화는 다시는 찍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김지운 감독은 고생이 너무 심해서 오히려 중국에 중독된 거 같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3명인 것도 하다 보니 재미있어서 다시 시도해볼까 싶다고도 말한다. “홍어 삼합을 먹을 때 ‘이런 거 다시는 먹지 말아야지’ 해놓고 슬며시 생각나고 그러지 않나. 스펙터클한 영화를 만들었을 때 감독이 느끼는 쾌감이 그런 거 같다. 감독으로서 느낄 수 있는 절망과쾌감을 모두 맛본 영화다.” 스크린에선 매캐한 화약 냄새와 함께 사람들의 땀 냄새가 진동을 했다. 새로운 도전과 열정의 냄새였다.

좋은 놈 , 정우성

“중국이라는 땅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고생을 하게 되고,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의 그림을 건져가는 곳” 이라는 김지운 감독의 소감은 과장이 아니다. 평생 살면서 할 수 있는 고생과 평생 살면서 볼 수 있는 웅장함의 교집합 같았던 <놈,놈,놈> 촬영 현장엔 정우성이 있었다. 이미 <무사>를 통해 중국 현지 적응 훈련을 진작에 마쳤던 그는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심하게 멋지다는 이유로 ‘좋은 놈’ 에 낙점되었다. ‘좋은 놈’ 은 ‘가장 멋지게’ 말을 타고 활약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송강호의 표현에 따르면 “내 집처럼 편하게” 중국 로케이션에 임했다는 정우성은 현상금 사냥꾼 ‘도원’ 을 연기했다. 말이 좋아서 ‘좋은 놈’ 이지 돈 되는 건 절대 놓치지 않는 지독한 남자다. ‘도원’ 은 시대 상황에 타협해나가는 캐릭터다. 영화를 보고 나면 세 캐릭터의 경계가 모호해질 텐데 내겐 그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또 누가 상상했겠나? 한국 웨스턴이라니. 고정관념을 깨는 거침없음이 즐거웠다. ”CG도, 스턴트도 없음을 표방한 덕분에 말 달리던 정우성은 몸고생을 좀 했다. 말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진 것을 모르고 계속촬영하다가, 자연적으로 부러진 뼈가 붙는 원시적 경험도 했을 정도였다. 이 모든 힘든 여정이 끝나고, 지금 현재 그의 바람은 이런 거다“. 내가 맡은 캐릭터가 인상에 남았으면 한다. 흥행 외에도 이 영화는 어떤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영화 하는 사람들이 그 가능성을 보고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입증 안 된 인물들, 눈먼 돈. 한국 영화에 잘못된 부분이 많이 있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은 늘 영화 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사뭇 진지하다가도 어느 순간 송강호 특유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사람들을 웃길 정도로 엉뚱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촬영 현장에선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몰입한다. 말 타는 자세 만큼이나 영화를 대하는 태도도 제대로다. 정우성은 그런 남자다.

나쁜 놈, 이병헌

서글서글하고 젠틀한 이 남자가 천하에 둘도 없는 나쁜 놈이 되어 나타났다. 퇴폐적 록 스타를 연상시키는 스모키한 눈매와 냉소적인 말투,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는 강한 자존심의 소유자 ‘창이’ 는 이병헌에게 큰 도전이었다. 마적 두목 ‘창이’ 는 목표를 위해 살인도 저지르고 무서울 만큼 잔인하고 때로는 야비하기까지 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여심을 사로잡던 촉촉한 눈망울을 지우고 광기와 비열함을 채워 넣었다. “사실 제대로 된 악역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결정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가 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막상 모든 게 끝나고 보니 한바탕 잘 놀았다 싶을 만큼 즐겁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모세혈관이 뜨겁게 달궈지는 걸 느낄 정도로 그에게 ‘창이’ 는 짜릿했다.

이병헌이 “세 캐릭터 다 나쁜 놈이지만 제일 나쁜 놈은 김지운 감독님” 이라고 고백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송강호가 기겁했던 ‘말’ 이 그에게도 엄청난 숙제였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으로 말을 배웠지만 곧장 지평선이 보이는 사막을 바람처럼 질주해야만 했다. 그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살 떨리는 경험이었다. 게다가 기차를 정면으로 세우는 장면에서는 스턴트 없이 달리는 기차와 마주하기도 했다. 너무 오래돼 브레이크가 밟힐지의문이었던 기차 앞에서 그는 속으로 ‘오늘도 무사히!’ 를 외쳤다. 그래도 다 지나고 보니 그에겐 다시는 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이 영화는 완전한 오락물이다. 관객들이 신나게 영화를 보고,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도 신이 났다는 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내가 정말 좋은 작품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가 이병헌의 모든 것은 아니란 걸, 그는 멋지게 증명해 보이고 있는 중이다.

이상한 놈, 송강호

황야에서 송강호가 말을 타고 쌍권총을 휘두른다.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에 이어서 김지운 감독이 송강호와 세 번째 작품을 같이해야겠다고결심했을 때 떠올린 장면이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 속에서 말을 타는 송강호를 볼 수가 없다. “임수정도 타는 말을 왜 못 타냐(그녀는 영화 <각설탕>에서 기수로 나왔다.)”고 김지운 감독이 핀잔을 줘도, 말을 무서워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말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황야를 질주한다. 극중에서 송강호는 보물 지도를 최초로 손에 거머쥔 정체불명의 이상한 놈, ‘태구’ 를 연기한다. 그리고 아마 사람들이 그에게서 기대하는 것 이상을 보여줄 거다. 이번 작품을 함께한 모든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송강호는 훌륭한 배우 이전에 훌륭한 인간이라고. 밥 먹을 때마다 모래 폭풍이 불어닥치는 어려운 촬영 환경에서 그는 든든한 형님이자, 쉬는 시간마다 팀을 짜서 축구 시합을 주관하던 구단주였으며, ‘칭따오’ 를 비롯한 각종 술을 쟁여놓은 인심 좋은 사장님이었다. 송강호는 말한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보고 고생하겠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10개월을 꼬박 이 작품에 올인했다. 우리 세 놈뿐 아니라 작은 역할로 출연하는 다른 배우들도 다 잘됐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오랫 동안 한국 영화계의 흥망성쇠를 지켜봐온 송강호는 이 영화 한 편에 걸고 있는 기대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놈,놈,놈>에 700만 이상의 관객이 들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난 그게 관객 숫자라기보다 한국 영화의 잃어버린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본질과 상관없는 선택들로 한국 영화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순수하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찾아준다면, 이 영화에 참여한 우리뿐 아니라 한국 영화계의 축복이 되지 않을까?” 송강호 같은 좋은 배우가 있다는 것도 한국 영화계의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