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쉬운 말은 논리와 명분과, 5억 개쯤 되는 이유로 세계를 구획한다. 그리고 그 무가치한 벽을 단번에 무장해제시키는 것은 음악뿐이다. 자꾸만 이유를 캐묻고 그럴듯한 의미를 끌어들이려는 녹음기 쥔 사람에게, 그들은 한결같이‘좋으니까 한다’고 대답했다. 음악, 음악 하는 사람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타블로가 입은 프린트 티셔츠는 Ann Demeulemeester by Mue, 크림색 팬츠는Mvio, 목도리는 N. Hollywood by Mue, 검은색 니하이 부츠는 Ann Demeulemeester 제품. 안경은 본인의 것. 미쓰라진이 입은 하이 스탠드업 칼라 셔츠는 Chris. Christy, 회색 캐미시어 톱은 Marni by Boon the Shop, 검은색 레이어드 팬츠는 Ann Demeulemeester, 줄무늬 스니커즈는 General Idea by Bumsuk 제품. 투컷이 입은 흰색 프린트 티셔츠는 Dries Van Noten, 테일러드 베스트는 Ann Demeulemeester, 회색 모직 팬츠는Mvio, 흰색 스니커즈는 Lacoste 제품. 선글라스는 본인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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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묻지 말아요 – 에픽하이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나? 낯간지러운 건 못 참는 사람, 그래서 가식적으로 칭찬하면 심드렁한 사람, 재미없는 농담에 억지로 웃어주지 않는 사람, 그러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농담하는 사람, 아이러니와 부조리에 분노하는 사람, 그러나 바둑알 놓듯이 또박또박 내뱉는 단어 사이로 지독하게 예민한 마음이 느껴지는 사람. 그런 사람과 마주 앉으면 불편하다. 에픽하이와 마주 앉았을 때, 녹음기의 리듬보다 천천히, 그러나 곧게 말하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불편했다. 그러나 이건 진짜다, 라고 생각했다. 이 눈물 나게 시니컬한 세상에서 진짜와 마주 앉는 것은 얼마나 희귀한 일인가. 말하자면, 이것은 혀에 닿는 탄산처럼 청량감 있는 불편함이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마주 앉은 이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말, 말, 하면 할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거창해지는 말의 성찬을 뚫고, 그 어떤 진심에 가 닿기 위해서.

‘극악하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불황은, 언젠가부터 차라리 시대의 화두다. 2007년이 거의 끝나가지만 올해 출시된 앨범 중에서 판매고 10만 장 이상을 기록한 가요 음반은 SG워너비와 에픽하이, 단 두 팀뿐이다. 올 초 ‘Heart’ 와 ‘Brain’ 이라는 제목의 CD 두 장으로 구성된 에픽하이의 4집이 발매되었을 때, 묵직한 것은 CD의 무게만은 아니었다. 음악성, 혹은 대중성에도 채도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없이 어두웠던 에픽하이의 새 앨범은 ‘비대중적’ 인 것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적이지 않다는 꼬리표가 붙은 이 음반은 에픽하이의 전 앨범을 통틀어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예전 음반들과는 다르죠. 예전에는 순수하게 음악이 즐거워서 했다면, 4집을 만들기 전에는 우리가 살짝 미쳤던 것 같아요. 실질적으로 이상해졌어요. 어떤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존재에 대한 고민이나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괴로웠어요. 3집이 성공하기까지 고생을 많이 했고, 그래서 그 이후의 성공이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공허한 마음도 있었거든요. 4집은 혼란스럽고 적응할 수 없었던 감정에서 정상으로 돌아오려고 만든 음반인 셈이에요. 그래서 곡 수가 그렇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냥 무턱대고 계속 만들었으니까.”“비정상이니까 두 장이나 냈지.” 타블로의 이야기를 듣던 투컷이 불쑥 말했다. 방송을 하고 나서, 스케줄을 채우고 나서, 촬영을 마치고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가면 ‘그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잠도 자지 않고 계속 만들어댔다. 그러다 보니 결국 곡이 너무 많아져서4집을 두 장의 앨범으로 만들게 됐다. “설명할 길은 없어요. 우리가 어떤 의도가 있어서 곡을 만들고 앨범을 낸 건 아니니까. 그냥 음악을 하다 보니까 음반이 만들어지는, 그런 경우가 됐어요. 아마 누가 앨범을 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면 계속 곡만 만들고 있었을 거예요.” 앨범의 큰 성공은 그들에게도 뜻밖의 일이었다.

얼마 전 TV 영화 <판타스틱 자살소동>에 출연한 타블로는 올해 부산영화제에 배우 자격으로 참석했다. “영화가, 반응이 꽤 좋대요. 전부터 연기에는 뜻이 없었는데, 영화에는 관심이 있었고요. ‘가수가 연기자 변신’ , ‘이젠 영화 배우로 불러주세요’ 같은 식이 되는 건 너무 싫어서 이런 규모가 작은 영화를 찾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아무래도 영화는 연기를 전문으로 하는 분이 더 잘하지 않을까요? 시나리오를 받아도 다른 배우가 나보다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면 안 할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경우도 굉장히 많았고요. 그중에는 상업적으로 아주 성공한 영화도 많은데, 그런 영화를 나중에 보면 ‘우와, 내가 안 해서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11월 말쯤에는 타블로가 따로 작업한 연주 음반도 나온다. 가만, 연주 음반이라고?“ <이터널 모닝(Eternal Morning)>이라는 타이틀이에요. 예전부터 같이 작업을 하던 ‘팬’ 이라는 친구와 공동 작업이죠. 다운템포의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순수 연주 음악은 아니고…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DJ 음악이라 해야 하나? 에픽하이로 발표할 순 없는, 가사가 없는 음악이죠. 피아노, 첼로, 콘트라베이스, 그런 진짜 악기와 가짜 악기의 소리를 섞었어요. 힙합 음악도 연주 음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 힙합으로 사람들이 ‘감상’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달까요. ”그렇다면 내친 김에 집필 활동은 어떨까? 얼마 전 MBC <일요일일요일밤에>의 ‘경제야 놀자’ 가 친히 그 가치를 검증해준 타블로의 학창시절 작품도 있지 않은가. “방송팀이 왔는데 집에 가치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작진이 고민고민하다가 학교 다닐 때 썼던 글을 감정해보자, 한 거예요. 그렇지만 개인적인 일, 가령 출판이나 솔로 앨범 발표보다 언제나 더 우선순위에 있는 건 에픽하이의 일이에요. 내 개인적인 일 때문에 에픽하이의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일을 진행하다가도 포기를 하고요. ”혼자 조금 다른 행보를 선택하나 싶던 타블로는, 그렇게 에픽하이의 경계 안에 서 있었다.

내년 초에는 에픽하이의 다섯 번째 앨범이 나온다. 생활처럼, 그러니까 거드름 부리지 않고 속속들이 진지하게 음악을 하는 이 사람들은 또 어떤 앨범을 들고 나타날까. ‘앨범의 방향’ 을 묻자 투컷이 불쑥 말했다. “북쪽.” 타블로가말했다. “북쪽은 안 되지. 남쪽.” 머리가 아파진다. 미쓰라진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아직 완성을 하지 않았으니 장담은 못해요. 그러나 너무 머리 아픈 건 하기 싫어요. 지난 앨범의 무거운 짐을 좀 덜어낸 듯한 음악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밖에 표현을 못하겠네요.” “만약에,” 타블로가 말했다. “우리가 10집까지 앨범을 내는 롱런 가수가 된다면, 이번 앨범은 ‘방학’ 정도가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다행이다. 아이들은 방학 때 더 쑥쑥자라니까.

취하는 건 음악 – 하우스룰즈

수줍어하는 젊은 남자를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부츠에 끈이 아주 높은 데까지 달려 있네요?” “아, 이것은… 바지입니다.” 프로듀서 역할까지 하는 ‘서로’ 가 말했다. “따로 제작했어요.” 어쩐지 낮고 수줍은 목소리였다. 발목에서 허벅지가 끝나는 부분까지 X자로 끈이 교차된, 그리고 남은 끈은 사연 있는 여인의 머리카락처럼 발치로 휘돌아 물결치는 가죽 바지를 입은 사람이 낼 만한 목소리 같진 않았다. 마술사 같은 모자를 쓴 ‘서로’ , 머리를 뾰족하게 세우고 한쪽 어깨에 모피를 늘어뜨린‘영효’, 눈빛이 보이지 않는 짙은 선글라스가 굵게 꼰 레게 머리 아래 자리 잡은‘파코’. 보는 이를 압도하는 세 사람의 강렬한 외모 뒤로, 언뜻언뜻 수줍은 미소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왠지 웃음이 났다. 하우스룰즈의 음악은 사람을 취하게 한다. 그것은 한여름 날의 일본 맥주, 겨울밤의 와인보다는 초가을 저녁의 칵테일에 가깝다.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기계음과 노래 사이사이에서 토막토막 톡톡 터지는 가사는 이 칵테일이 핑크레이디나 마가리타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임을 짐작케 한다, 투명하면서도 짜릿한, 초현실적이면서도 청량한 맛, 그러니까… ‘모히또(Mojito)’ 말이다. 그러니 올해 발표한 하우스룰즈의 첫 번째 음반 <모히또>의 작명 센스는 무릎을 탁 칠 만큼 제대로가 아닌가. 가만히 눈을 감고 음악을 한 잔 들이켜면 그들의 블렌딩에 따라 이 쿠바 칵테일… 아니, 하우스 음악의 세계에 서서히 취하는 느낌이 든다. 글라스를 흔들 때마다 부딪치는 얼음 소리, 코를 어루만지는 민트 향, 청량감 있는 첫 모금. 삐삐밴드의 이윤정이 피처링에 참여한 ‘두잇!(Do IT!)’ 과 ‘쿠치타치’ 를 비롯해 가수 하늘이 함께 활동하는 ‘모히또’ , 힙합 그룹 ‘슈퍼스타’의 보컬 박남훈이 피처링한 ‘온마이 웨이(On My Way)’등 버카디, 민트, 라임주스, 흑설탕과도 같은 독특한 15개의 노래가 ‘모히또’ 라는 이름 아래 조화로운 맛을 낸다.

하우스룰즈는 국내 하우스 댄스의 1세대격인 파코와 영효, 작곡과 색소폰,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서로, 이 세 명으로 구성된 하우스 그룹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서로는SES, 보아, 박화요비, 디바, 크라운제이 등 국내 인기 가수들의 앨범에 작곡자 및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실력파 뮤지션이다.“ 내내 작업실에 처박혀서 작업하지는 않아요. 멤버들이 저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거든요. 함께 여행을 다녀오거나, 혹은 일상을 즐겁게 보내다가 떠오르는 것을 함께 작업해요. 비 오는 날 셋이 편하게 이야기하다가 문득 영감이 떠올라서 작업하기도 하고, 클럽에서 놀고 와서 내가 음악을 만들면 친구들은 뒤에서 춤추기도 하고, 그래요. 곡 작업을 하면서 아예 무대 위에서는 어떻게 할지까지도 같이 결정을 하죠. ”서태지, 지누션, 이정현, HOT 등의 백업댄서로 활동하기도 했던 퍼포머 영효는 하우스 댄스를 처음 보았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돼 2000년 국내 최초의 하우스 댄스 그룹 ‘둥가’ 를 결성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춤을 한다 하면 죄다 힙합 바지를 입었어요. 말하자면, 일정한 스타일이 있었다는 거죠. 그러다 우연히 외국 댄스 비디오에서 클럽에서 하우스 댄스를 추는 사람들을 봤어요.

양복 입은 아저씨부터 하이힐 신은 아가씨, 가방 멘 학생까지 너무나 자유롭게 하우스 댄스를 즐기고 있더군요.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날 이후, 그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힙합 바지를 모두 갖다 버렸다. 그리고 영효가 주최하는 하우스 파티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세 사람은 ‘하우스룰즈’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벌써 5년이다. 음악과 무대 자체를 즐기는 그들의 무대는 ‘보여주기’ 보다는 ‘이렇게 함께 놀자고 손짓해 부르기’ 에 가깝다. 파티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놀아보라고 시범을 보이는 셈이다. “하우스에 갇혀 있을 생각은 없어요. 크게 보자면 일렉트로니카 음악이죠. 우리 음악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춤을 추고, 삶을 즐기기 위한 거예요. 그래서 가만히 앉아 음악을 감상하면 약간 심심할지도 모르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알겠나? 하우스룰즈의 노래 앞에서 ‘가만히 앉아 음악을 감상’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조용한 가족 –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상한 사람들이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약속 시간인 일요일 정오보다 20분 일찍 나타났다. 전날 밤의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공연에서 그들이 객석을 웰던으로 후끈 익혀놓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에디터는, 내심 오늘의 인터뷰이 세 사람이 30분쯤 지각하리라 기대하며 달달한 인스턴트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켜던 참이었다. 그런데 발자국 소리도 없이 차례차례 들어선 김민홍과 송은지와 요조는 촬영 스튜디오의 테이블 주변에 밑변이 유난히 긴 삼각형 모양으로 뚝 떨어져 앉아 각자의 이유로 조용했다. (그들이 내게 인사를 건넸나? 아마 그랬을텐데 웬일인지 기억에 남은 건 말없이 앉은 삐딱한 삼각형의 세 꼭짓점뿐이다.) 객원 보컬 ‘요조’ 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난 요조숙녀가 아니라구 글쎄’(마지막 띄어쓰기는 생략한 모양이다)라고 적힌 스티커를 촬영 스튜디오의 테이블에 붙이고 있었다. 송은지는 1000미터를 쉬지 않고 수영한 직후의 박태환처럼 말간 얼굴로 얕은 숨을 내쉬었다. 김민홍은 미소와 무표정 사이, 그렇지만 미소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에디터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경기불안! 청년실업!’ 이라 고함치면서, 붐비는 지하철에서 내 어깨에 부딪힌 사람에게 눈을 흘기면서, 성마른 종종걸음으로 바삐 걸어다니며 사는게 얼마나 웃기는 짓인가 싶다.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원래 노래를 만들고 기타를 연주하는 김민홍과 그가 만든 노래를 부르는 송은지의 팀이지만, 멜로디언을 기가 막히게 부는 객원 보컬 요조도 (물리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나) 한 식구다. 2004년에 발표한 그들의 첫 번째 음반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마음을 건드리는 노랫말과 담백한 멜로디로 낯선 질감의 정감을 빚어냈다. 지난해 3월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월드 뮤직 그룹‘두번째 달’과 공동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2집 <입술이 달빛>을 발표했는데, 앨범은 한층 더 결이 고운 음악으로 빼곡했다. 특히 트로트와 민요의 구성진 가락에 소규모아카시아밴드만의 투명한 색을 덧입히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를 모티프로 삼은 ‘또 돌아보고’ 를 한 번 들어보길 바란다. 이들의 음악은 그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들의 성정을 숨기지 못했다. 천천히 흐르는 물, 나직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같은 음악. 아, 그래서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인가? “그렇게들 많이 오해하세요. 그런데 실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클래지콰이의 호란이 꿈에서 본 이름이에요. 식당에 갔는데 ‘소규모아카시아밴드’ 라는 손님이 예약 명단에 올라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름으로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나. 이건 뭔가 있다, 하늘이 점지한 이름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냉큼 가져다 썼죠. ”김민홍은 짙고 격렬한 B연필이 아니라 옅지만 곧은 H연필로 스케치한 사람같다. 웃을 때가 특히 그렇다. 그는 그렇게 웃으면서, 음악을 할 때 솔직해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대해 편안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감정 상태가 편안한 사람이 기쁜 노래를 부르면 정말 기쁘게, 슬픈 노래를 부르면 또 너무 슬프게 들리거든요. 그런데 슬픈 사람이 슬픈 노래를 부르면 구질구질하게 들리고, 기쁜 노래를 하면 억지스럽게 들리죠. 그러니 편안한 상태에 도달해서 노래하는 거, 그게 내 생각에는 한 단계 발전한 ‘음악 하는 자세’ 인 것 같아요.”요조는 맑지만 날카롭지 않은 미성으로 이야기하는데, 머릿속에 두고 오래 익힌 생각을 마침표처럼 꼭꼭 찍어가며, 또박또박 달변이다. “예전에는 귀까지만 가는 노래를 불렀어요. 그런데 이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귀를 지나 마음에 가 닿는 노래를 알게 됐어요. 그리고 내가 마음을 담아서 노래를 부르면 듣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이 간다는 것도 알았고요. 참 신기하죠? 딱 하나 있는 지구, 그중에서도 한국, 또 서울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 음악을 하게 되다니요.”그러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건 정말, 롯데월드보다도 훨씬 재밌지!”그러자 입을 꼭 다물고 있을 때조차 무언가를 조분조분 이야기하는 듯한 눈을 가진 송은지가 그 눈빛과 꼭 닮은 목소리로 ‘마음이 기쁠 때면 음악을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음악을 하고, 그러면서 자신도 변화하는 그 모든 과정에는 항상 음악이 있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틀 후, 그녀는 전화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게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덕분이지요.” 이 사람들, 다 큰 어른들이 ‘마음’ , ‘ 친구‘ , ‘사랑’ , ‘행복’ 같은 단어를 참 많이도 쓴다.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곱고 예쁜 말을 술술 하는데도 그게 하나도 간지럽게 들리지가 않는다. 정말이지, 이상한 사람들이다.

우린 원래 이래 – 다이나믹 듀오

여기, 눈앞에 아주 귀하고 근사한 선물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선물하는 사람이 포장에 서툴러서, 화려한 공단 리본이나 그럴싸한 포장 박스 같은 걸로 기교를 부리진 않았지만 가을 비에 선물이 망가질까 봐 외투 안에 품고 당신에게 달려왔다. 가쁜 숨을 내쉬며, 선물을 주게 돼서 못내 기쁘다는 표정으로 그는 선물을 내민다. 그런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나는 안다. 다이나믹 듀오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 꼭 그랬으니까. 도통 포장할 줄을 모르는 두 남자는 어색해도 웃고 우스워도 웃으면서 머릿속에 든 생각을 차근차근 말했는데, 그 담담한 진실 앞에서 듣는 이는 도리 없이 쩔쩔맸다. “음악요? 그냥 하는 건데. 그냥 한다는 걸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옳거니. “제 입에서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는데 왜 홍시 맛이 나느냐고 물으시면…(이하생략)”하는 장금이에게 감탄하던 수랏간 상궁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개코는 혼잣말처럼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멋있게 얘기하죠?” 이미 멋있는걸요. 그러나 쑥스러워서 말하진 못했다.

그러나 세 번째 앨범 <인라이튼드(Enlightened)>는 이 두 남자가 아주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매번 숨 가쁘게 할 말이 많은 것도 아마 그 때문이겠지. 그들이 직접 쓴 길고 긴 가사에는 거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속 깊은 생각이 녹아 있다. 어쩌면 철학이란 가장 평범한 것을 곰곰히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쓰는 이력서’는 다이나믹 듀오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방향성을 6하 원칙에 맞춰 들려준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는 자신 바깥의 세상도 아우른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에서는 혼전 임신을 이야기한다. ‘살인자의 몽타쥬’ 는 범죄와 윤리,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그들의 견해다. “고심해서 쓴 가사를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아무것도 아닌, 간단한 메시지인데 그걸 맛깔스럽게 표현을 하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 두 가지 사이에서 늘 힘들죠. 메시지도 전하고 싶고, 음악적으로도 듣기 좋게 만들고 싶은 마음.” 그들은 ‘제일 평범한 게 제일 멋있는 것이고, 제일 멋있는 건 제일 평범한 것’ 이라는 누군가의 잠언을 신봉한다. “글을 보면, 어려운 표현을 많이 쓰는 사람이 있고 쉬운 단어로 쓰면서도 같은 내용을 완벽하게 전달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우리는 후자를 더 높게 평가해요. 그래서 가사를 쓰거나 음악을 할 때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쓰면서 감정을 잘 표현하고 싶죠. 그래서 점점 더 뜬구름 잡는 것처럼 힘든 거고.” 그들은 틈틈이 생각해놓은 아이디어를 부려놓고, 때로는 욕심을 내고, 실망하고, 조언과 격려를 달게 받아가며 노래를 만든다. 만족했다가 의기소침했다가, 청하고 거절당하고, 그러나 더 훌륭한 대안을 찾아내고, 한숨을 쉬며 고민하다가 술술 써내고, 그렇게 매번 음반을 만든다. “다른 친구들과 교류해서 새롭고 의외의 결과물이 나오는 게 재미있어요. 곡에 어울리는 피처링도, 누가 생각나면 부담 없이 전화해보고, 거절당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요. 기분 나빴다가도 새처럼 금방 잊어버리고는, 다음에 또 전화해요. 곡이 잘 나오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우리 목소리로 앨범을 꽉 채워야 한다거나 유명한 사람을 섭외해서 홍보에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요.”

2000년 3인조 CB MASS로 데뷔해 세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2004년 개코와 최자 두 사람이 ‘다이나믹’ 하게 뭉치면서 지금의 팀이 됐다. “솔직히 CB MASS로 활동할 때는 방송하는게 무서웠어요. ‘CB MASS는 내 친구’ 라고 노래하면서도 미안했어요. 우리는 ‘내 친구’ 라고 외치지만 상대방은 우리랑 친구하기 싫은 듯한 표정이었거든요. (웃음) 순위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나오면 그때가 아이돌 그룹의 여성 팬들이 화장실 가는 시간이 됐죠. 만약에 진행요원이 못 나가게 하면 자기들끼리 떠들고 얘기하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고요. 우리는 우리 음악에 자부심이 있는데, 노래를 알리려면 방송에 나가야 했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방송을 타는 게 재미있어요. 꼬마들까지 힙합 음악을 좋아하고, 추임새도 다 알아서 따라 부르고 하니까요. 예전과 지금은 천지차이죠. ”그렇다면 앞으로의 다이나믹 듀오는?“ 우리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때그때 우리가 좋은 걸 할 생각이에요. 그 순간에 좋은 거, 하고 싶은 걸로… 노래를 부르건 춤을 추건, 우리가 하면 그게 힙합 음악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편하게 하는 걸 사람들도 좋아하는 것 같고요. 어느 날 우리가 무대 위에 팬티만 입고 올라가도, 사람들은 ‘원래 이런 애들’이라고 생각해줄 것 같은 거죠. 하고 싶은 대로 막 해도 사람들이 그 자체를 좋아해준다는 게 고맙지요. 동네 형, 옆 고시원에 사는 형 같나 봐요. 고시원에서 7년째 고시 준비하는데, 진짜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매번 아깝게 떨어지는 형들 있잖아요? 이번엔 진짜 저 형들 잘돼야 하는데, 하면서 빌어주고 싶은 형들. 그런 느낌인가 봐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