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스포티즘이 유행이라 한들, ‘운동복’ 과 ‘시크’ 는 좀처럼 어울릴 수 없는 평행선적인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텔라 매카트니는 아니라고 한다.

‘살인적인’ 런던 블랙 캡의 미터기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발바닥이 부르트는 한이 있어도 20파운드가 넘으면 내려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기사가 목적지인 웨스트 런던 스포츠 센터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철망과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길에는 가로등 불빛도, 인적도 거의 없었다. 영국패션협회(British Fashion Council)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런던 패션위크의 마지막 행사장으로 가는 길 치고는 적잖이 당황스럽다.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저벅저벅하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거리를 좁히더니 등 뒤 에서 말을 건다. “혹시, 아디다스 행사장에 가나요? 위치를 알면 같이 갈까요?” <헤럴트 트리뷴>의 수지 멘키스였다. 간단히 인사와 런던 패션위크에 대한 소감 같은 것을 나누다가 물었다.“ 스텔라 매카트니를 좋아하세요?” 수지는 이렇게 답했다. “스텔라는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매력적인 사람은 매력적인 옷을 만들죠.” 우문에 현답이다.
어둠 속에서 돔 모양의 거대한 스포츠 센터가 모습을 드러냈고 입장을 기다리며 길게 줄을 늘어선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피부가 살짝 아릴 정도의 찬바람이 불었지만 대부분은 간결한 실루엣의 미니 드레스나 테일러드 재킷 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다. 그제야 과연 스텔라 매카트니의 행사구나, 라는 현실감이 든다. 1997년, 클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데뷔한 스텔라 매카트니는 디자이너로서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고향인 런던에서 ‘아디다스 by 스텔라 매카트니’ 레이블의 쇼를 열기로 결정했다. 영국태생으로 영국적 감성을 유전자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말하자면 영국 패션의 ‘서러브레드’ 이지만 그간 한번도 런던에서 쇼를 연적이 없기에 이번 컬렉션은 런던 패션위크에도, 스텔라 자신에게도 큰 의미를 갖는 듯했다. 입구에서 명단을 확인한 홍보 담당자는 “패션쇼가 아니라 프레젠테이션이나 이벤트, 아니 그냥 파티라고 생각하고 즐겨주세요.” 라며 행사장 안으로 안내했다. 어둡고 좁은 통로를 지나자 마치 몇 차원을 뛰어넘은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커다란 홀 바닥에는 전부 푸릇하고 푹신한 잔디가 펼쳐져 있었는데 구역마다 전혀 다른 콘셉트의 ‘스포츠 월드’ 가 자리 잡았다. 샘물이 퐁퐁 솟아오르는 미니 풀장, 골프장의 드라이빙 레인지, 그림 같은 니스 해변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래사장. 아디다스 by 스텔라 매카트니의 내년 봄 신작 의상을 입은 모델들은 가볍게 운동을 즐기거나, 카메라에 포즈를 취해주거나,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디자이너의 옷을 부각시키기 위한 도구’ 가 아니라 여느 참석자와 마찬가지로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또한 행사장 전면에는 로니 스코트의 빅 밴드가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고 있고, 반대편에는 버거와 칵테일 등이 마련된 케이터링 바를 설치해두었다. 프런트로에서 날카로운 펜과 수첩을 무기 삼아 비평의 눈빛을 보내던 사람들도 아디다스와 스텔라 매카트니가 준비한 이 흥겨운 이벤트 앞에서는 스르르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흥겨운 재즈 넘버에 몸을 맡기면서 폴 매카트니나 피터 블레이크, 데보라 해리 같은 셀레브러티와 한 공간 안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자니 ‘컬렉션 취재고 뭐고, 인생 이런거지!’ 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 파티의 흥겨움에 가려 자칫 놓칠 뻔했지만, 스텔라 매카트니가 선보인 아디다스 스포츠 퍼포먼스 라인은 지극히 날카롭고도
영민했다. 일치할 수 없는 평행선상을 걷는 듯한 ‘운동복’ 과 ‘시크’ 라는 단어의 조합은 스텔라의 손을 거쳐 훌륭한 하모니를 자아냈다. 남성복의 실루엣, 전통적인 테일러링 방식에 여성스러운 디테일을 더하는 그녀의 시그너처는 스포츠웨어에서도 여전했다. 롤업 헴라인의 저지 쇼츠나, 광택감이 살아 있는 후드 셔츠, 투명한 아노락 점퍼는 아디다스 매장으로 팬들을 불러모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특히 주목받은 것은 이번 시즌에 처음 선보인 골프 라인으로 ‘골프 웨어’ 에 대한 편견(늙어 보인다, 촌스럽다, 결정적으로 안 예쁘다)을 완전히 없앨 만큼 놀라웠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도 일상에서 ‘친환경’ 을 실천할 만큼 시장이 성숙했다고 생각해요. 골프 웨어에 약간의 에지를 더하는 건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었죠” 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런던 패션위크의 마지막 행사는 빡빡한 스케줄이 주는 긴장감을 잠시 털어버리고 인생의 여유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스텔라에게도 스포츠웨어란 그런 존재인 듯했다. 즐겁고 풍성한 인생을 사는 여자를 위한 옷. 기록 단축을 위한 치열함보다 건강한 환경, 몸, 마음에 감사할 줄 아는 여자를 위한 옷. 매력적인 여자는 역시 스포츠웨어도 매력적으로 만든다.

거대한 실내 스포츠 센터의 내부는 스텔라 매카트니의 뜻의 따라 활력과 시크함이 넘치는 ‘스포티브 파티 월드’ 로 변했다. 아디다스의 스포츠 퍼포먼스 라인 중 하나인 아디다스 by 스텔라 매카트니는 요가, 조깅, 댄스 등의 라인을 갖추고 있는데 오는 봄/여름 시즌에는 새로이 골프 라인을 추가할 예정이다. 오거닉 100% 소재를 사용해 친환경을 강조한 부분도 역시 스텔라 매카트니답다는 평이다.